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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유공소호有孔小壺, 쳐박아둔지 십년, 독파에 삼십분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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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자가 2011년 11월, 직후 받아서는 서가에 쳐박아두었다가 각중에 땡겨서 통독하는데 볼 거 없다.

딱 30분 걸렸다.

더는 볼 것도 없고, 더 알아야 할 것도 없다.

한국고고학이 하는 일이야 매양 같아서 저런 그릇이 언제 어디서 어떤 양태로 출현해 성행하다가 언제쯤 사라지는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한반도에선 오세기 무렵 고창이며 영산강유역 가야유역에 등장 성행하며 일본에선 더 광범위하고 현재까지는 발생시점도 빠른 듯해서 일본열도 영향일 수도 있다.

기타 뭐 정치세력하고 연결하기도 하는데 이건 한국고고학 미친 짓이라 어케 토기랑 정치권력을 연결한단 말인가?

기타 제작기법이 어떠하고 잡다스레 유형분류해서 수십가지로 농구며 도질이니 와질이니 하는 씨잘데기 없는 이야기뿐이라

과연 저와 같은 것들을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점은 기능인데, 그 중요한 대목은 정작 흘려버리거나 한국고고학 전가의 보물, 곧 제기祭器라는 편한 말로 퉁치거나 주전자 일종으로 액체를 담갔다고 지나고 만다.




왜 구멍을 양쪽에다, 것도 몸통 한복판에 뜷었겠는가?

저런 그릇은 말할 것도 없이 액체를 담아 보관하거나 휴대하기 위함인데 그 구멍은 그 실용성의 훼손이다.

다시 말해 구멍은 그런 그릇 기능을 없앴다는 뜻이다. 성 불구로 만든 것이니 한 무제 유철이 대들어 신경질 난다고 사마 천 짬지를 잘라낸 일과 같다.

이것이 바로 훼기毁器다. 보통 훼기가 명기明器에서 일어나고 주로 주둥이나 받침 같은 데를 깨뜨리는 데 반해 이 친구들은 아예 제작할 때 그 의미로 구멍을 뚫었을 뿐이다.

저런 구멍토기가 대체로 꼬딱지 만하고 거의가 무덤에서 출토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조선시대 명기가 왜 코딱지 만한가? 그건 실제 산 사람이 사용하는 것과는 다름을 표시하기 위함이지 별 뜻 없다.

혹자는 일본열도 출토품 중에 저 구멍에서 나무마개가 발견된 점을 근거로, 또 간혹 무덤이 아닌 주거지에서 발견되는 점을 근거로 실생활 주전자였다고 주장하나 다 개소리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놈의 고고학은 한두개 근거를 일반화해서 대서 특필하는 악습이 있는데 그건 변용에 지나지 않는다.

왜 마개가 있는가? 그것이 이것이 명기요 훼기임을 역설하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아닌가 말이다.




주거지? 그럼 조선시대 서울 사대문 발굴하면 명기 없니? 쌔고 쌨다. 심지어 묘지명까지 나온다. 무덤에 쓰려다가 어쩌다 처분하지 못하고 남았을 뿐이다.

저것이 제기라고? 무덤이 사당인데 그에 쓴 물건이 제기 아니면 무슨 개뼉다귀란 말인가?

뭐 서울 풍납동 우물에서 나온 게 영산강 유역 유입품?

택도 없는 소리로 혹세무민하지 마라.

명기다. 훼기다!

그래 풍납에서 사람들이 할 일 없다고 고작 저 코딱지만한 그릇을 영산강에서 공납했겠니?

말이 되는 소리는 해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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