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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임나사현任那四縣의 위치" 관전법 (1)

by 초야잠필 2022.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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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보는 임나사현의 위치. 김태식-고대왕권의 성장과 한일관계에서 전재


최근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 관련 주장을 보면 양측 입장이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는데 가장 두드러진 데가 임나사현任那四縣의 위치가 아닐까 한다.

먼저 한국 측에서는 대략 전남북 동부지역을 임나사현으로 보는 듯하다.

위 그림은 김태식 교수 (김 단장님 동명이인) 께서 주장하시는 글인데 최근 이 일대에서 가야계 문물이 많이 나와 이 보고를 임나사현과 연결해 이해하기도 아는 것으로 안다.

충분히 근거가 있는 주장이라고 보고, 대개 한국 학자들은 거의 전남북 동부지역을 주목하는 듯하다.

임나사현이란 일본서기에 나오는 기사와 관련된 것으로 계체천황 6년 (512년), 백제의 요청에 의해 왜가 할양했다는 한반도 남부의 4현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최근 교과서에 어떻게 실려 있냐하면,



이렇게 실려있다.

유의해서 보셔야 할 부분은 상다리, 하다리, 모루다. 기문과 다사보다 이 세 지명을 서쪽으로 크게 빼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서쪽으로 상다리, 하다리, 모루를 옮겨 버리면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



바로 영산강 유역 전방후원분이 일본이 512년에 할양했다는 임나사현에 포함되어, 서기 6세기 전반까지 이 지역 전방후원분은 일본 통제 하에 있는 임나사현으로 들어오게 된다.

일본에서 임나사현을 전남북 동부 일대가 아니라 전남북 전 지역으로 설정하는 까닭은 영산강 일대 전방후원분을 이 안에 포함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일본은 왜 이렇게 포함시키고 싶어하는가? 임나사현이라는 것이 일본서기 주장에 따르면 백제에 할양되기 전에는 왜의 통제하에 있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512년 이전 영산강 유역을 임나사현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전방후원분이 왜의 통제 하에 축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나사현의 위치란 영산강 유역 전방후원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부분에 있어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부분이며 최근 일본은 임나사현 일부를 영산강 유역에까지 넓혀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는 말송보화末松保和가 처음 "임나흥망사"를 쓸 때만 해도 저 위치가 아니었다고 기억하는데 최근 들어 저 주장이 보다 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임나사현이 전남북 동부일대냐, 아니면 전남북 전체를 포괄하느냐에 따라 한국고대사 전체의 그림이 달라질 지경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무튼 임나사현의 위치라는 것이 최근 고대한일관계사에 있어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점.

우선 먼저 이야기 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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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사현任那四縣의 위치" 관전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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