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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잔인한 4월을 보낸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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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리 잔인했느냐 물으니 유별나게 그러한 일도 없다. 그렇다고 4월을 저리 꼽은 그 시인도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리 말하지는 않은 듯하며 괜히 폼 내본다 해서 비꼰 데 지나지 않을 것이다. 왜? 만물이 싹튼다는 그런 달을 한번쯤 비틀어줘야 남들이 쳐다라도 보지 않겠는가?
 

 
꽃만 해도 그런 4월에도 무수히 피었다가 그보다 많은 숫자가 졌으니, 하필 그 달에 누군가 무엇을 획득했다면 무주지 점령이 아닐진댄 또 그건 누군가한테는 쓰라린 패배 아니었겠는가? 

반세기 이상 헤아리는 성상에 한 달은 한 줌에 지나지 않을진댄 2023년 양력 4월은 왜 그리 길기만 했는지, 여전히 8시간 남은 이 달이 지긋지긋하기만 하다. 

부여잡은 것들을 놓아야 했기에 더 지리했을 수도 있으리라. 그 부여잡음이 허탈일 수도 있고, 집착일 수도 있으며, 관성일 수도 있겠다.

그 부여잡음을 놓는 과정이 어찌 한창 불거진 뾰루지가 터지는 일만 같겠는가? 재치기야 하고 나면 시원하지만, 하기까지 그 간질간질함에 환장할 뿐이다. 
 

 
말은 뱉어버림으로써 시원할 순 있지만, 그것이 또 다른 분란을 부르고, 말은 아껴서 여백을 주나 그 때문에 복장터지는 일이 되기도 한다.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라, 오직 그 하고 않음이 초래하는 결과야 훗날이 말을 해주리로대, 그것으로 무수한 오해를 낳고 그때문에 무수한 분노와 회한 원망이 싹트는 빌미가 된다. 

나로서는 나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를 절제할 수밖에 없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이런저런 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다 애꿎은 계절 탓이라 돌려본다. 이것이 다 4월이기 때문이었노라고 퉁쳐 둔다. 

왜? 4월은 내가 그리 원망하는데도 그런 나를 원망하지 않으니깐 이 얼마나 편한가?

부디 여름 문턱, 그 비린내 나기 시작하는 다음달이면, 그 아픔이 설욕이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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