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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천문학에 빠져 허우적 댄 나날들(1) 저 소행성 이름은 세종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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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계에서 과거 연합통신이라 일컫던 연합뉴스는 상점으로 치면 백화점 같은 곳이라, 이런 데 수습으로 시작한 기자(이 경우는 펜대 기자를 말한다)는 공식 같은 코스가 있어, 사츠마와리라 일컫는 경찰기자를 보통 거치기 마련이다.

이걸 피하려면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만, 느닷없이 부산지사로 유배 아닌 유배 같은 쫓김을 당한 상태로 입사한 나는 그 부산 생활 1년을 경찰기자를 하고는 서울 본사로 와서는 체육부를 거쳐 사회부로 가서 그에서 2년을 보내고는 98년 12월 문화부 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만 2년에 지나지 않는 사회부 생활 중 1년 반은 사츠마와리를 하고 나머지 6개월은 시교육위원회와 기상청을 잠깐 맡았다가 문화부로 튀어버린다. 튀었다 했지만, 그 내막이야 자세히 내가 알 처지는 아니었지만 회사랑 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 아니었겠냐 생각하거니와, 나로선 어차피 사회부는 스쳐가는 곳이라 생각했고, 회사 특히 사회부야 나 같은 놈이 맘에 들었겠는가? 어차피 저 자식 나가줬음 하는데, 나간다 손을 발라당 드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요새는 어찌되는지 알 수가 없는데, 경찰기자는 지역별 경찰서 2~4개씩을 하나로 묶어 이를 라인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으니, 나는 종로라인이라 해서 경찰서로는 종로 종암 성북 세 경찰서인가를 관장하는 데를 맡았다가 후반기에는 마포라인이라 마포 서대문 은평경찰서를 관할하는 데를 담당했다.

나일성 선생


이 마포라인은 서울대가 있는 관악라인과 더불어 연세대와 이화여대 서강대(홍익대는 당시 그리 비중이 크지는 않았다) 가 포진한 까닭에 대표적인 대학라인으로 꼽혀 사건사고보다는 대학 쪽 뉴스가 비중이 압도적으로 컸다.

나로서는 이 마포라인이 상대로 익숙할 수밖에 없으니, 아마 그런 사정을 고려해 저리 배정했을 것이다.

대학 쪽 소식은 입시를 중심으로 하는 대학행정과 해당 대학 연구소나 교수들 연구성과를 다루는 두 부문으로 크게 나눌 수 있으니, 나는 그때도 압도적 후자 성향이라, 문제는 연구소 교수라 해도 어디에서 뭘 하는지 알아내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이 대학사회는 생각보단 자율성이 졸라 적고 무엇보다 그 연구라는 게 오늘 코인 넣어 내일 나오는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또 그 분야가 천차만별이라, 기자로서는 관심 분야를 스스로 개척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 부문에서도 나는 그때 불만이 없지는 않아 천편일률이라 이걸 깨고 싶은 욕망은 있었다. 문제는 무엇으로 타개할 것인가였으니, 그때 내가 착목한 데가 실은 천문학이었다. 이쪽을 좀 뚫어볼까 했으니, 그건 무엇보다 연세대에 당시 나일성 교수라는 분이 재직한 까닭이었다.

그 직전 종로라인, 그러니깐 고려대가 있는 그 라인에서 이 부문에서 나는 주로 언어학 부문에서 조금 재미를 봤다고 생각하거니와, 이쪽과 관련한 논급은 서너번 이곳저곳에서 말한 적은 있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정리해 볼까 한다.

암튼 내가 나일성 선생을 주목한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양반 뭐랄까 암튼 좀 독특한 양반이라 괴짜로 분류할 수도 있겠거니와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교양필수였던가 선택이었던가 그짝에서 이 양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으니 그런 까닭에 나는 그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하도 까마득해 그런 그를 어찌하여 내가 찾아갔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덮어놓고 그의 연구실로 쳐들어갔으니 그렇다고 갓 그쪽에 배치된 내가 무슨 취재할 소재가 있어 찾아갔겠는가? 덮어놓고 인사나 해 놓을 겸 찾아뵈었던 것이니,

당시에도 이미 노인이었던 이런 양반들은 거개 패턴이 있어 기자를 애써 피하는 모습을 연출했지만 실상 이런 분들일수록 대단한 프레스 프렌들리라, 언론을 요리할 줄 아는 노익장 그 화신이었다.

기자 만날 시간이 없다거나 무슨 일이요 라고 묻곤 하는데 이건 실상은 저 기자가 믿을 만한 놈인가? 상대해도 될 만한 놈인가에 대한 첫 시험대라 보아 대과가 없다.

소행성


이런 데야 내가 나름 자신이 있었으니, 그가 천문학 중에서도 고천문학이 부전공임을 익히 알았으니, 천상열차분야지도며 하는 이야기들을 뇌까리며 짐짓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기뤠기랑은 급이 다름을 각인하는 데는 자신 있었으니, 그가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어쭈? 제법 아는 체 하네?" 이런 느낌을 주지 않았을까 한다.

기억에 이 양반은 주특기가 본인이 내가 이런 성과가 있으니 이거 써보시오 하고 던지는, 그러니깐 먼저 말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일단 안면은 터 놓고 가끔씩 전화해서는 무슨 일 없냐 확인하는 정도였다고 기억하는데,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교유에서, 아마 첫 번째 만남에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소행성 세종 얘기를 꺼냈다고 기억한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일본 학자가 새로운 소행성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에다가 '세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잉? 이기 무신 소리?

나는 그 소식을 써달라 해서 그런 말을 그가 꺼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속내야 모를 일이라, 아무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저 이야기가 나왔다고 기억한다.

아무튼 이 정도는 뉴스감이 된다고 판단해 그에게 이런저런 보강자료들을 요청하고는 관련 기사를 작성 송고했으니 그것이 아래 기사다.

1998.03.03 19:48:00
<화제> 세종대왕 이름딴 소행성 탄생

(서울=연합) 金台植기자=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우리나라 이름의 소행성이 처음으로 탄생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4일 羅逸星 연세대 명예교수(천문우주학전공)에 따르면 국제천문연맹(IAU) 소행성 분과위원회는 지난해말 세종대왕 탄신 6백주년을 맞아 일본인 천문학자 와타나베(渡邊和郞)씨가 발견한 `QV1'이라는 소행성에 '(7365) SEJONG'이라는 이름을 붙여 세계 천문학계에 공포했다는 것.

지금까지 발견돼 이름이 붙은 소행성은 7천여개에 이르지만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은 하나도 없으며 더욱이 우리나라 이름이 채택된 경우도 없었다고 羅교수는 말했다.

지난 96년 발견된 이 소행성이 '세종'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세종대왕에 대해 누구보다 조예가 깊은 동경천문대 기치로 후루카와(高川麒一郞) 교수가 이 소행성 발견자인 와타나베씨에게 강력히 추천해 이뤄졌다.

羅교수는 "세종대왕 탄신 6백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에 새로 발견된 소행성이 '세종'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세종대왕이 자연과학사에 남긴 업적이 세계천문학계에서도 인정받았음을 의미하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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