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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한을 이끌었던 명재상 제갈량이 아직 남양 땅에서 밭갈던 시절, 초당에서 낮잠을 자다 깨어 이런 시를 지었다 한다.
초당에서 낮잠을 푹 잤더니
창 밖에 해가 뉘엿뉘엿하네
큰 꿈 누가 먼저 깨우리오
평생 나 스스로만 알리니
그가 낮잠자던 초당, 유비, 관우, 자~ㅇ비가 곧 찾아올 초당이다. 그 안에서 꾸었던 큰 꿈은 과연 천하를 3분하는 것뿐이었을까.
그로부터 천 몇백년 뒤, 한 한국인이 붓을 들어 제갈량의 시를 적었다. 퍽 활달한 필치로 거침없이 글자를 잇고 있다.
이 글씨를 적은 이는 금리 조병교趙秉敎(1862-1941)라는 사람이다. 군수, 관찰사 서리 등을 역임한 중견 관료였는데, 글씨에 재주가 있어 함경도 함흥역 현판을 썼다고 한다.
그의 손자가 한국 현대 무용계에 큰 영향을 끼친 조택원趙澤元(1907-1976)이다.
***
이상 국립중앙박물관 강민경 선생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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