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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후기
산림과 붕당정치에 대한 장황한 설명
벼슬을 줬다는데 마다하고 낙향했다는 사족의 이야기
그리고 그 후손들의 장렬한 설명때문에
우리는 조선시대 중후기가 마치 지방의 사족들의 연합체가 나라를 이끌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일언이폐지하고 써본다.
조선시대 문과 합격자
조선시대 진사 입격자의
40프로가 한성부 거주자였다.
근기지역도 아니고
한성부가 거주지였다는 말이다.
양반 고을 하면 반드시 나오는 A 시의 경우
문과 합격자가 전체 인구의 1프로를 간신히 넘는다.
또 다른 K시의 경우 1프로도 안된다.
조선시대 중후기 내내 향촌 사족들이 주도하다가
경화사족이 출현하여 그 중심이 서울 인근으로 몰리기 시작했다는 인식은
그래서 잘 못된것이다.
20세기 이후 지방의 사족들은 그대로 향촌에 남아 목소리를 높였고
서울 살던 조선시대 내내 잘나가던 사족들은 서울의 팽창, 종가의 해체로 목소리를 높일 기회가 줄어들어
이런 착시를 낳았을 뿐
조선시대 내내 서울의 정치적 경제적 힘은 압도적이었고
이 곳 사는 사족들이 사실상 다 해먹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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