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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

조선시대 중 후기 종친에 대한 과소평가

by 신동훈 識 2026.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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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기술을 보면, 

조선후기 사회에서 종친과 그 후손에 대한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사회를 사림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 

붕당정치로 정국을 설명하고 사회를 이들 사족들이 끌고 간것으로 보기 때문인데, 

이는 하나는 맞지만 하나는 틀린 이야기이다. 

조선 후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 왕조의 국성 집안에 대한 정확한 평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조선전기 왕족과 종친에서 갈려 나온 집안들은 대개 4대까지는 국가의 관리하에 적자는 물론 서자도 보호받으며 성장하며

4대가 지나가면서 일반 사족으로 나오지만 여전히 선원록에서 관리되는 후손은 딸은 6대, 아들 쪽은 무려 9대를 적었다. 

이처럼 국가가 그 후손의 족보를 엄정히 관리하기 때문에 이들의 혼인 내력을 보면

다른 사족과 비교하자면 종친 4대까지는 어머니 쪽이 천민이라도 일반 유력 사족의 적자와 결혼 할 정도이며 

4대가 지나서도 다른 집안과 비교하면 적어도 한단계는 높은 것 같으니, 

조선후기에 국성의 집안들이 빠르게 성장한 것은 바로 일반 사족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우대 받은 이러한 상황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중-후기의 한국사회 분석을 위해서는

사족들의 붕당정치도 중요하겠지만, 

지배계층의 최 정상을 분점하고 성장한 이들 종친과 그 후손에 대한 사회 경제적 분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 붕당정치 소위 말하는 지방 사족의 힘과 영향력은 많이 과장되어 있는 바, 

조선 중 후기의 대과 급제자의 출신을 보면 이는 자명하여, 

그 대부분이 서울과 근기지역 출신으로, 

향촌의 사족들은 그 당시에도 적어도 사회경제적 영향력에 있어서는 이류였던 상황이 바뀐적이 없다. 

사족들의 자기 집안에 대한 자존심과 

실제로 그 자존심에 걸맞는 사회 경제적 힘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점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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