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서얼 차별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유교 때문에 서얼 차별이 나왔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유교의 교조 중 종법에는 적서 구분이 엄중하니
완전히 틀린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지만,
서얼 차별 자체는 유교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고,
개인의 신분을 결정하는 데 부계와 모계 계보 모두가 영향을 미치던 시대 유습이 유교의 옷을 입은 것이다.

예를 들어 보면,
우리나라에서 사족으로 성공하려면
부계는 물론, 모계도 제대로 된 사족이어야지,
이 모계가 평민이거나 천민이면 아무리 잘난 아버지 자식이라도
반쪽 혹은 반반쪽 사족이나 심하면 노비로 편제되었으니,
이는 모계 신분이 개인에게 영향을 주던 유습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조선후기에 성립한 부계 계보의 경우에,
딸은 사위 이름까지만 적고 더 적지 않는데 반해
어머니는 외조부, 외증조부까지 적게 되니,
이렇게 외가 3대조까지 추려 족보에 적는 유습 역시
조선전기 이전부터 내려온 계보관의 반영이다.
조선전기의 이러한 계보관념에서 조선후기 부계계보로 바뀌게 되면서,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온갖 신분의 사람이 같은 조상의 후손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데,
이렇게 신분이 낮은 이들이 신분이 높은 이들과 하나의 족보 안에 묶이게 된 것은
어마어마하게 큰 사건이자, 신분이 낮은 이들에게는 크나큰 기회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건대, 조선 전기의 족보와 같은 구조면,
그 족보에는 신분 낮은 이들이 끼어들기 어렵지만,
조선 후기 부계 족보가 완성되면서
비로소 신분 낮은 이들이 족보에 끼어드는 것은 물론,
아예 자손이 아닌 이들이 속임수로 족보에 슬쩍 끼어들 여지가 생긴 것도,
부계 계보는 위로는 대단한 벌족부터
아래로는 향촌 중인,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름을 올릴 기회가 주어지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신분이 낮은 이가 우리는 이 문중의 지손이요, 선대를 잊었다가 지금 다시 들어가고자 합니다.
이렇게 들이밀면 아니라는 것을 입증 할 방법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대개는 족보에 그 주장하는 바를 상세히 적고,
후대의 질정을 기대한다고 써놓지만,
다들 알다시피 후대의 질정이란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이어서,
그다음 족보에는 그렇게 끼어든 이들은 모두 그 집안 자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후기의 족보를 전기의 족보에 비해
어머니 쪽을 떼버리고 가부장제를 강화하는 족보라고 일종의 유교적 퇴행이라고들 보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고 조선후기 족보야 말로 신분이 낮은 자들과 높은 자들을 같은 조상의 후손이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게 한,
얼굴도 한 번 못본 이들을 같은 족보안에 묶을 수 있게 한,
족보사에서 보면 대단한 진보요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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