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 방목 이야기를 했지만
모든 사족이 과거에 붙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아무리 잘 나간 집안도 문과 등제는 매우 드물며
소과 급제자나 무과급제
그것도 없으면 음서로라도 관직을 얻어 사족으로 명맥을 유지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매우 선택된 이들만 검증 가능한 방목에 이름이 나올 가능성이 없다면
남아 있는 문서를 총동원해서 검증하는 방법이 있겠다.
우선 고려시대는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이 아니면 살필 방법이 없다.
고려시대의 조상에 대해 기술한 족보의 내용은 사실상 검증할 방법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매우 떨어진다.
특히 고려사 등 당시 기록에 전혀 이름이 나오지 않거나
사족으로 살았을 주변 정황이 없는데도 근사한 관직을 적어 놓는경우는 높은 확률로 후대의 가필로 본다.
특히 여말선초에 입신한 집안 대부분은 고려시대에 향리층이었기 때문에
조상을 호장 등 지방관직으로 적어 놓은 경우는 신뢰도가 높게 보지만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는 중앙관직을 줄줄이 적어 놓은 경우
이는 신뢰도가 낮다고 생각한다.
물론 주변 정황상 반드시 이를 부정할 수 없는 경우도 있긴 한데
그런 정황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고려시대의 관직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조선전기의 경우 좀 잘나가던 집안 사람은 상당수가 안동권씨 성화보, 문화유씨 가정보에 나온다.
이 두 족보는 분량이 방대하고 당시 혼맥으로 연결된 거대한 사족 집단 70프로 정도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 학계의 평인 만큼
실제로 여기에는 상당수의 사족의 이름이 계보와 함께 확인 가능하며,
당시 사족으로서 어느정도 인정받는다 싶은 사람들은 이 두 족보에 거의 부계 계보와 함께 이름이 나온다.
또다른 신뢰성 높은 자료는 왕족의 족보를 추려 놓은 선원록이다.
선원록은 부계 자손 뿐 아니라 출가한 집안의 족보와 사위들까지 꼼꼼히 적어놓았고,
의심스러운 부분은 남의 집안 족보까지 평을 달아 놓을 정도로 당시에도 검증이 강하게 이루어진 기록이다.
특히 선원록에는 왕의 후손까지 4대는 서자는 서자라고 정확히 달아 놓았다.
어차피 서자라도 사족으로 자립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으므로
서자는 서자라고 확실히 적어 놓는것이다.
선원록에 이렇게 명확히 적혀 있던 서자라는 기록은,
사족으로 독립해 나간 후부터는 오히려 선원록 기록보다도 소략하게 바뀐다.
일반 사족들 족보에는 서자라는 기록이 생략되거나 빠지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이것은 왕족의 후손들 족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종친 4대 이후 그 아래로는 일반 사족들 족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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