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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고원에서 찾았다는 초기청자 벽돌가마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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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군 도통리 청자가마터에서 초기 벽돌가마 확인
최영수 / 2022-10-05 14:55:18
"초기 청자 생산의 중심지로 추정…추가 발굴 필요"

진안군 도통리 청자가마터에서 초기 벽돌가마 확인

(진안=연합뉴스) 최영수 기자 = 전북 진안군은 성수면 중평마을 도통리 청자가마터에서 청자 생산을 위한 초기 벽돌가마를 확인했다고 5일 밝혔다.고려 시대인 10∼11세기 초기 청자 생산지인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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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도 토대가 된 진안군 보도자료 원문을 첨부한다.

아이고....조사지역 상황봐라. 트렌치 중앙쯤에서 벽돌가마라고 하는 그 비름빡 흔적이 보인다.



진안군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터에서 벽돌가마 추가 확인
= 우리나라 벽돌가마 중 2기 이상 확인된 두 번째 유적으로
초기 청자 생산의 중심지일 것으로 추정 =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의 허가를 받아 진안군(군수 전춘성)과 국립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소장 곽장근)가 실시한 2022년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터 *시굴조사에서 *벽돌가마가 추가로 확인됐다.

* 시굴조사(試掘調査) : 전체 면적의 10% 미만으로 굴착하여 유적의 존재를 확인하는 고고학적 조사
* 벽돌가마(塼築窯) : 벽돌을 이용하여 축조된 청자 생산 가마로 진흙가마보다 먼저 등장하였다. 청자의 발생지인 중국에서 주로 축조되던 가마이기 때문에 청자 제작 기술이 중국으로부터 이입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

중앙지점 시뻘건 부분이 벽돌가마 벽체라는 흔적이다.




진안군 성수면 중평마을 내 위치한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터는 청자 생산과 관련된 퇴적구 위에 마을이 조성돼 있어 마을 전체가 유적에 해당한다.

육안으로 관찰되는 퇴적구를 기준으로 유적은 크게 동쪽 구역과 서쪽구역으로 나뉜다. 지난 2013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5차례의 (시)발굴조사는 민가 및 도로의 조성이 적은 서쪽 구역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발굴조사를 통해 벽돌가마 1기와 진흙가마 2기가 조사됐다.

학술자문위 한 컷이라는데 조사단이 지은 죄도 없는데 왜 매양 조사단원이 저리 공손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 지역 가마라면 독식하는 털보 한 모라고 있는데 그 양반이 아니네? 군산대랑은 사이가 안 좋은가? 누군가?



1호 가마에 해당하는 길이 43m의 벽돌가마 내부에 진흙가마인 2호 가마가 동일한 길이로 조성돼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의 변천 과정을 명확히 보여준다.

1호 벽돌가마는 호남지역에서 처음 조사된 벽돌가마로 우리나라 초기 청자의 이입 및 전파 과정, 생산 체계 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가마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9년 9월 2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로 지정됐다.


* 퇴적구(堆積丘) : 청자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이 쌓여 형성된 언덕이다.
* 진흙가마(土築窯) : 진흙 또는 갑발 등으로 축조된 청자생산 가마로 벽돌가마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술자문위라 하는데..



이번에 진행된 시굴조사는 유적의 범위를 명확히 파악하고 청자 생산 관련 시설의 존재를 추가로 파악하기 위해 진행됐다.

조사 대상구역은 기존에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동쪽 구역 내 민가와 경작지이며 사적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와는 약 90m 이격 되어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민가의 앞마당에서 또 다른 벽돌가마가 추가로 확인됐다. 드러난 벽체는 벽돌가마의 왼쪽 벽체에 해당하며, 길이 30㎝, 너비 15㎝, 두께 8㎝ 내외의 벽돌로 축조됐다.

가마 내부는 조업 과정에서 발생한 고온으로 인해 강하게 소결(燒結)됐다.

극히 일부만 노출돼 벽돌벽체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으나 기존에 조사된 1호 벽돌가마의 규모에 비춰보면 청자를 넣고 구웠던 가마의 일부분인 번조실(燔造室)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굴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벽돌가마의 운영과 관련된 벽돌 편을 비롯하여 선해무리굽 완(碗) 편 등이 수습됐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벽돌가마는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 일원과, 시흥 방산동, 용인 서리, 고창 반암리 등에서 확인됐으나, 2기 이상이 확인된 유적은 고창과 진안이 유일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전문가 의견에 따르면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일원은 초기 청자 생산의 중심지이자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고 있다.

비름빡




이번 조사결과로 지난 9월 29일 개최된 학술자문위원회의에서는 벽돌가마의 구조 및 성격 등을 밝히기 위한 추가 발굴조사가 추진돼야 하며, 문화재 지정구역의 확대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추가 조사가 이뤄진다면 진안 도통리 중평 청자 요지의 성격과 운영 시기를 비롯해 국내 청자의 도입 과정을 분명히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전춘성 진안군수는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진안 도통리 중평 청자 가마터의 보호와 향후 조사를 위해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벽돌이랑 해무리굽청자


이걸 보면 완전한 벽돌가마가 이전에 같은 데서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발견됐다가 이번에 추가 조사를 통해 또 하나의 벽돌가마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추가 벽돌가마가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 흔적 중 일부가 드러났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추가로 확인된 데가 벽돌가마 일부라는 사실을 어떻게 추측했는가다.

이번 조사에서는 가마 벽체가 모습을 드러냈단다. 구체로는 벽돌가마 왼쪽 벽체에 해당한다 하는데, 이 왼쪽 오른쪽이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가마 앞쪽에서 바라보는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모르겠다. 암튼 비름빡 일부가 나왔다는 사실만 확인하자.

그 벽체를 아마도 뽀순 모양인데 그에 쓴 벽돌이 길이 30㎝에 너비 15㎝, 두께 8㎝ 안팎이랜다.

기존에 확인됐으며 1호 벽돌가마라는 이름이 붙은 이전 가마에 비춰 보면 이번에 드러난 2호 벽돌가마 흔적은 번조실燔造室, 그러니깐 청자를 넣어 놓고 굽던 데로 보인댄다.

이 정도 조사성과라면 보통 보도자료를 내지 않는데, 그럼에도 낸 이유는 저 보도자료 말미에 보인다.

추가 조사가 이뤄진다면 진안 도통리 중평 청자 요지의 성격과 운영 시기를 비롯해 국내 청자의 도입 과정을 분명히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문화재청더러 추가 조사비 달라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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