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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한국사에 교치설을 주물한 이기백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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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치설僑置說 그 난무 문제는 차치하고, 중국사에서나, 그것도 위진남북조시대에 등장하는 이른바 교치설僑置說, 곧 땅 덩어리 비행기 타고 날아다니기가 느닷없이 한국사에 등장해 유령처럼 배회하기도 하니, 

이 신종 코리언 버전 땅귀신은 놀랍게도 고고학과 결합해 새로운 괴물을 주물鑄物하게 되는데, 그것이 장수왕에 의한 한강 유역 점령설이 그것이다. 

이는 간단히 요약하면 고구려가 장수왕 시대에 백제 응징을 내세우며 475년 단행한 백제 정벌 결과, 지금의 한강 유역, 말할 것도 없이 강남 땅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고분군이 포진한 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그 왕 개로는 아차산 아래서 목을 베어 버린 다음 

그곳에 주둔군을 두어 551년 백제와 신라에 의한 대대적인 한강 유역 수복 전쟁 혹은 정복전이 있을 때까지 물경 대략 80년 간이나 고구려가 영역 지배를 관철했다는 것이 요지라, 

이것이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것임은 내 누누이 말했거니와,

이런 괴물은 무엇보다 이 일대는 잠깐 고구려에 쑥대밭이 되었지, 그네가 철군한 다음에는 여전히 백제 지배 하에 있었다는 삼국사기 증언을 모조리 부정해야 곤혹이 있음이라, 

실제 두계 이병도는 같은 이는 이럴 수가 없다며, 삼국사기 관련 논급을 두찬杜撰, 간단히 말해 꿈결 잠꼬대 같은 소리라 일축하고 말았으며,

직후 이기백은 저 요술방망이 같은 두찬설을 확대하여 이르기를 

백제가 한강 유역을 상실하고 남쪽으로 쫓겨내려오면서 한성을 비롯한 한강 유역 일대 지명들을 잊을 수가 없어 그대로 가져 내려왔으니, 어디까지?

천안까지 가져 내려와서는 그 천안 직산 일대를 한성 혹은 위례성이라 칭하게 되었으니, 그리하여 직산이 위례성이라는 전설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말 같은 소릴 해야 선생 대접이라도 할 것 아닌가? 

두찬이니 땅덩어리 공중부양이니 하는 망발을 일삼은 저들을 내가 어찌 선생 대접을 하겠는가? 

저 따위 망발을 서슴고도 엄격한 실증사학 운위한 그들을 나는 용서할 수 없다. 

그건 그렇고 저 따위 망발이 고고학계 일부를 파고 들었으니, 저 따위 망발을 기초로 고구려가 475년 전쟁으로 곧바로 그곳을 영역 지배했다는 증거가 관철된다는 헛소리가 넘쳐난다. 

이런 놈들을 내가 어찌 동료 대접을 하겠는가?

헛소리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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