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주인공인 사극이 유행이다. 최근 성황리에 막을 내렸던 ‘밤에 피는 꽃’이나 ‘연인’과 같은 퓨전 사극들은 드라마의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인물을 이전과 다르게 여성을 내세웠다.
퓨전 사극이 아니더라도 ‘옷소매 붉은 끝동’과 같이 기록을 토대로 한 사극 역시 궁녀로서의 덕임을 내세웠다. 이들의 공통점은 여성, 그리고 정확히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려낸 것이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 서사’에서 이어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기존 사극에서 다루지 않았던 다른 새로운 소재에 대한 갈망일 수도 있겠다.
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여성의 이야기라도, 굳이 현실에서 규제에 얽매이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사극에서 주체적인 여성들이 등장하는 이유일 지도 모른다.
한양 인구의 반을 차지했던 여성들
기존과 다른 소재라 하였지만, 엄연히 여성은 조선시대에 남성들과 함께 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이다. 한양에 대략 30만 명이 살았다고 하는데, 여성은 이 중 반 정도를 차지했다고 한다.
기록에 이름 한 줄 남기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이지만, 엄연히 여성들도 ‘한양 사람’으로 한양의 공간 속에서 생활했다.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공간을 보기 위해서는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블로그에 글을 썼는데, 이것은 한양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한양이라는 공간은 작지만 생각보다 공간에 따라 기능이 나뉘어져 있었다. 사람들도 이러한 규칙과 당시 관습에 따라 나뉘어져 살았다. 여성도 다름 아니었다.
몇 년 전, 박물관에서 열린 ‘한양 여성, 문밖을 나서다’라는 전시도 이 같은 눈으로 여성을 바라본 전시다.
크게 왕비와 궐 안팎의 궁녀, 나름 경제적 역할을 했던 상인을 성 안의 여성들로, 도성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무녀를 통해 여성들의 역할을 보여주고, 한양의 공간도 소개했다. 부제는 ‘일하는 여성’이었다.
왕비의 직임도 ‘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인가 싶긴 했는데, 왕도 일하는 것이라면 왕비도 일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듯 했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그 사람들이 살았던 공간의 숨겨진 이야기를 살려내는 것과 같다. 남자들만 있을 것 같은 한양의 시전에 여성들이 주인이었던 ‘여인전’이라는 점포도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대부분 여성들이 썼던 장신구 같은 것을 팔았던 곳이니, 이곳의 손님들도 여성들이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한양의 풍경이 다르게 그려진다.
대다수의 여성이 혼자만 살았던 것은 아니니, 당연히 여성들과 함께 살았던 남성들도 구획된 공간에 따라 생활했다. 이때의 구획이라는 것은 당연히 선으로 그어지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생각에서 비롯된 이념적인 것이다.
공간의 질서
지금의 우리는 이를 차별과 구별이라 하지만, 옛날 사람들의 눈으로 본다면 ‘관계’에 의한 것이다. 한양은 왕이 다스리는 도시였고 따라서 질서에 따라 움직여야했다.
이 질서는 왕과 백성들의 관계에 의해,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양의 공간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생각했던 질서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서울의 공간과 한양의 공간이 갖는 차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여성들이 과연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은 ‘조선시대 여성들은 그때의 질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로, ‘이 질서는 어떻게 구현되었을까’로 이어진다.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사람도 현실을 살아가는 자들이니, 경제적 여건이나 지리적인 조건 등과 같이 제약 사항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그때의 규칙들과 엮어져 만들어지는 하모니라는 것이 참으로 재미지다. 박물관이 전해주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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