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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혼동하는 king과 kingship, 내 아들이어야 하는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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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보다 훨씬 시간 격차가 지는 시간을 무대로 삼는 역사, 흔히 고대사나 상고사라로 일컫는 무대를 궁구하는 가장 큰 이유로 현재의 상대화를 꼽는다.

우리가 철석 같이 절대선이라 믿는 지금의 도덕은 시대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허무하게 무너지는 일을 너무도 자주 경험하니 내가 한국사에서 흔히 드는 예화가 근친상간이다.


계보



고모 이모 조카 그리고 애미 애비 중 한 쪽이 다른 친형제자매와도 결혼이나 성적 접촉은 흔했다.
아니 장려했다.

저에서 말한 내 아들이어야 하는 논제 역시 똑같아 권력 지위 재산 따위의 제반 일체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내 자식, 특히나 아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지금의 신념 혹은 도덕도 한국사를 볼진댄 적어도 고려시대 이전엔 결코 성립할 수 없다.

정실에게서 적통 왕자를 두지 못한 고려왕이 후계자 문제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볼 수 없다.

나에게 아들이 없으면, 심지어 아들이 있어도 덜떨어지거나 어리거나 하면 왕건의 후손이나 다른 선왕의 후손 중에서 적당한 이를 지목해 왕위를 물려주고는 죽어버렸다.

이런 사정은 신라 역시 마찬가지라, 상고기 중고기에 이런 모습이 특히나 더 두더러진다.

소지왕은 적통 왕자가 없자 재종 동생 지증에게 왕위를 주었고 법흥 역시 왕자가 없어 조카이자 외손자인 진흥에게 왕위를 물러주었으며, 그의 아들 진지는 폐위되자 조카 진평에게 갔다.


계보



모름지기 내 아들이어야만 하는가?

결코 아니었다.

문제는 그 시대를 공부하는 자들이 내 아들이어야 한다는 도덕으로 중무장을 하고 그런 도덕을 그 시대에 투영하면서 각종 참사를 빚는다는 점이다.

아버지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후계구도 확립을 중앙집권권력의 징표가 되는양 생각해서 이런 지금의 도덕에 따라 그 시대를 결단하니, 이에서 참사가 빚어지지 않겠는가?

왜 신라시대 중고기엔 지금 왕의 동부동모 형제들이 갈문왕이라 해서 왕에 버금하는 권력 혹은 지위 혹은 명성을 지녔겠는가?

이를 압도적 신라사 연구자들이 권력 분산의 관점에서 접근해 왕은 탁부의 대표자, 갈문왕은 사탁부의 대표자 하는 식의 관점을 표출한다.

하지만 이는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라, 왕과 왕권을 혼동하는 대표적 보기다.

King과 kingship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자들이니 새삼 일러 무엇하리오?

소위 부체제설은 이를 혼동한 대표적인 한국사의 참사현장이다.

King와 kingship은 번갯불과 반딧불이다.

갈문왕은 king이 아니라 kingship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내 아들이어야 한다는 이 도덕을 깨부시지 않으면 아니된다.

나한테 적통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통념 자체를 분쇄해야 한다.

(2016.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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