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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환단고기는 위서가 아니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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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僞書란 무엇인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이 항목 설명을 보면

「1」가짜 편지.
「2」=위본(僞本).
「3」=위조문서.
「4」남의 필적을 흉내 내어 씀.

이라 하니, 우리가 논하고자 하는 위서는 이 중에서도 2번 위본을 말한다.

그리하여 같은 사전에서 위본을 보니

위조하여 만든 책. ≒위서01(僞書)「2」.

라고 설명한다.

이 기준대로라면 환단고기는 위서인가?

단언한다.

위서가 아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위서인지 아닌지 판별은 실로 애매하다.

시중에 유통하는 환단고기를 보면, 그 범례를 의하면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계연수가 1911년에 『삼성기(三聖紀)』·『단군세기(檀君世紀)』·『북부여기(北夫餘紀)』·『태백일사(太白逸史)』 등 각기 다른 4권의 책을 하나로 묶은 다음 이기(李沂)의 감수를 받고 묘향산 단굴암에서 필사한 뒤 인쇄한 것이라고 한다.

한데 계연수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0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계연수는 다음 경신년(1980)에 『환단고기』를 세상에 공개하라는 말을 제자인 이유립(李裕岦)에게 남겼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이것이 1980년 무렵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이상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환단고기 설명에 의한다)

환단고기는 위서인가?

이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층위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그 편저자인 계연수 주체의 시각이다.

계연수는 환단고기를 역사의 사실 혹은 진실을 전하는 사서라고 규정한 적이 없다.

다시 말해 그것을 가짜의 역사서로 지어냈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진짜 역사임을 주장하면서,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는 책을 설사 계연수가 썼다 해서 그것이 위서라는 근거는 하늘에 있는가 땅에 있는가?

둘째, 이유립 주체의 시각이다.
이는 아무리 봐도 나는 위서로 규정해야 할 듯 싶다.

왜냐하면 이에서 비롯되어, 그의 손을 타고 나온 환단고기는 역사적 사실을 담은 기록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단고기가 정말로 1911년 계연수가 필사하고, 그것을 1980년에 공개한 것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계연수에게 환단고기는 위서가 아니었다.
그런 환단고기는 1980년 이후에 비로소 위서의 대열에 들어선다.

환단고기는 1911년에 필사되었건, 혹은 1980년 무렵에 조작되어 나왔건, 그 텍스트는 시종일관 내셔널리즘으로 일관한다.

환단고기는 20세기 한국 내셔널리즘의 자양분 없이는 결코 태어날 수 없는 책이다.

그것이 담은 내용 역시 이 20세기 내셔널리즘이 강력히, 그리고 곳곳에 투영된 것이기에, 그것이 묘사한 내용은 설혹 그 전 시대 무엇인가를 참조했다고 하더라도, 그 전체의 대부분은 20세기를 살다 간 사람이 쓴 것임은 하늘이 두쪽 나도 변할 수 없다.

나는 오래전부터 환단고기를 위서가 아니라 20세기 한국 내셔널리즘의 맥락에서 그것을 '텍스트' 혹은 그 증거물 중 하나로 채택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이만큼 20세기 한국내셔널리즘을 적나라히 담은 텍스트 찾기가 힘들다.

그것이 위서이니 아니니 하는 논쟁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그것이 진짜다 가짜니 하는 역사학은 가장 저급한 수준의 역사학이다.

개돼지도 3년만 훈련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개돼지 역사학을 해야겠는가?

나는 그것을 과감히 20세기 한국내셔널리즘의 텍스트로 간주해야 한다고 믿는다.

(2017.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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