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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Archaeological Ruins of Liangzhu City / 良渚古城遗址 / 량주고성유지

옥종玉琮. Jade Cong. 양저문화를 대표하는 양식이다.



중국 장강長江 문명을 대표하는 후기 신석기시대 유적 중 하나로 절강성 항주에 위치하는 량주고성유지良渚古城遗址(양저고성유지)가 Archaeological Ruins of Liangzhu City(량주시 고고학유적)라는 이름으로 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내 세대 세계사를 배울 적에는 흔히 양저문화良渚文化라고 익힌 이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 바로 량주고성유지라는 곳이다. 량주良渚는 그것이 자리한 지명이요, 고성古城이란 성터라는 뜻이며, 유지遗址란 우리의 유적遺跡에 해당하는 말로써, historcal site에 대한 옮김이다. 따라서 량주 고성 유지란 양주라는 지역에 소재하는 성터 중심 고고학 유적이라는 뜻이다. 중국어 본래 명칭에 견주어 Archaeological Ruins of Liangzhu City라는 영어 명칭이 이곳이 고고학 발굴을 통해 드러난 과거의 흔적임을 더 명징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양주고성



이 유적을 등재하면서 세계유산센터가 제공하는 영문판과 중국어판 브리핑은 다음과 같다. 


Archaeological Ruins of Liangzhu City

Located in the Yangtze River Basin on the south-eastern coast of the country, the archaeological ruins of Liangzhu (about 3300-2300 BCE) reveal an early regional state with a unified belief system based on rice cultivation in Late Neolithic China. The property is composed of four areas – the Area of Yaoshan Site, the Area of High-dam at the Mouth of the Valley, the Area of Low-dam on the Plain and the Area of City Site. These ruins are an outstanding example of early urban civilization expressed in earthen monuments, urban planning, a water conservation system and a social hierarchy expressed in differentiated burials in cemeteries within the property.





良渚古城遗址

位于中国东南沿海长江三角洲的良渚古城遗址(约公元前3300-2300年)向人们展示了新石器时代晚期一个以稻作农业为支撑、具有统一信仰的早期区域性国家。该遗址由4个部分组成:瑶山遗址区、谷口高坝区、平原低坝区和城址区。通过大型土质建筑、城市规划、水利系统以及不同墓葬形式所体现的社会等级制度,这些遗址成为早期城市文明的杰出范例。


이곳이 대표하는 량주문화는 그 세계적 명성에 견주어 국내에서는 홀시받는 느낌이 적지 않으니, 선사고고학 전공자들한테는 그런 대로 관심지역이기는 하나, 그렇다 해서 유별나거나 특출난 관심을 표출한 국내 고고학 연구성과는 내가 거의 만나지 못했다. 


이런 무관심은 내 생각도 그렇거니와, 한국신석기 전공 국내 지인도 그리 말하는데, 중국신석기문화와 한국신선기문화간 너무나 이질적인 까닭으로 본다. 내가 지켜본 한국고고학은 형식분류 치중과 더불어 너무나 교류중심주의에 함몰했으니, 이른바 비교사적인 관점에서 특정 유물 혹은 특정 유적을 고리로 삼아 어떤 문화가 어디에서 유래했느니, 혹은 그런 문화가 일본 열도 어디로 전파됐느니 하는 교류에만 혈안이 되다시피 했으니, 그런 점에서 두 지역 너무나 대별하는 신석기문화 차이는 비교조차도 불가능하니, 자연스럽게 중국 신석기문화에 대한 무관심으로 연결되는 게 아닌가 한다. 


옥착玉鐲 Jade Bracelet. 浙江余杭山遺址墓出土 Unearthed from Tombs at Yaoshan Site



전업적 고고학 연구자가 아닌 그냥 그것을 즐기는 나로서는 이른바 세계사 교과서에 오를 만한 중국 신석기문화 현장은 대략이나마 훑었으며, 그 과정에서 이번에 세계유산에 등재한 양저문화 복판도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북쪽으로는 홍산문화를 필두로 남쪽으로 숭택문화니 양저문화니 하는 곳을 싸질러 다녔고, 중원에서는 용산문화니 반파유적이니 하는 데를 방황했다. 


지금은 대략 옥기를 보고는 아, 홍산문화요, 이건 용산문화며, 이것은 또 양저문화 소산이라는 것 정도는 변별하게 되었거니와, 저 양저문화에서 내가 놀란 점 중 하나가, 기원전 3천년전 저 신석기후기 문화가 풍납토성보다 더 규모가 큰 평지성을 구축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압도적인 규모에 기겁하고 말았으며, 더불어 중국 신선기가 언제나 그렇듯이, 그 화려찬란한 옥기문화에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량주인. 비단옷을 입었다.



양저문화는 고교시절 세계사 수업시간 이래, 죽 옥종玉琮이라 해서, 사각형 실린더형 옥기가 대표하거니와, 비단 그것만이 아니라 옥기로 안 만든 것이 없었으니, 도대체 기원전 3천년 전 신석기시대에 이런 문화를 구축한 주인공은 어떤 집단이었는지 못내 궁금했더랬다. 


저 시대는 아무리 유구한 중국역사라 해도, 그네들 흔적을 전하는 기록이 없다. 그럴 만한 후대 기록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런 전승이 꼭 신석기시대 그들의 편린이라 추정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비단 그뿐이랴. 양저문화보다 다시 천년 이천년을 더 거슬러내려오는 사천 삼성퇴문화 역시 그것을 구축한 집단 혹은 사람들에 대한 그 어떤 흔적도 보이질 않는다. 


중국 신석기문화



이번에 등재한 양저고성유지는 명칭이 시사하듯이 양저문화시대에 구축한 성곽을 중심으로 하는 일대 주변 유적군을 합칭한다. 그것이 자리한 지점은 장강, 곧 양자강 하류이며, 내가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평지다. 그 문화발전 단계로서 an early regional state, 곧 지역성 짙은 국가 단계로 거론하거니와, 실제 그들이 남긴 성곽이라든가 고분, 더불어 그 유물들을 일별할 때, 그네가 인류학에서 말하는 국가 단계에 도달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네들은 쌀농사에 기반한 후기 신석기Late Neolithic에 속한다. 


량주고성 성벽 기저부



이번에 등재한 유적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뉜다 하니, Area of Yaoshan Site, Area of High-dam at the Mouth of the Valley, Area of Low-dam on the Plain, 그리고 Area of City Site가 그것이라 한다. 이들 복합군은 초기 도시문명과, 도시계획, 수리관리시스템, 그리고 무덤에서 집중적으로 확인한 엄격한 신분제를 보여주는 뛰어난 증거로 평가된다고 한다. 


이 양저유적은 이로 보아, 내가 다녀온 그때보다 세계유산 등재에 맞추어 정비가 상당부분 더 진행되었을 것으로 짐작되거니와, 실제 이곳에서 교수생활을 하는 어느 지인 전언에 의하면, 항주 시내에서 곧장 가는 지하철까지 개통했다고 한다. 하긴 내가 아는 중국이란 너무나 급격한 속도로 변화를 겪으니, 그때랑 지금이랑 또 왕창 모습이 바뀌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목조우물. 신석기시대임을 감안하고 나무 가공 상태를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