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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25

가을 고향에서 봄날처럼 포근한 날 아지매 셋이서 팥을 고르고 검은콩을 손질하며 무슨 가루를 갈무리한다. 가루는 언뜻 실체가 들어오지 아니해서 물으니 도토리란다. 대뜸 보더니만 머리가 우째 그리 허얘여 하기에 나도 벌써 쉰넷이라오. 옛날 같음 뒷짐 지고 다닐 때요 했더니 그래 말이라. 우리 늙어가는 생각만 했네. 옛날 꼬맹이 때 생각만 했어 하고 같이 껄껄 웃고 만다. 시리도록 푸른하늘로 반홍시 전홍시 알알이 박혔으니 이젠 딸 사람도 없으니 요샌 까치들도 먹을 게 지천이라선가 홍시는 쳐다도 안본다. 이런 가을날 들녘은 아지랑이가 필 듯 싶다. 2020. 11. 8.
서울사람일 수 없는 김천사람 이 꼴 못 보고 먼저 가신 선배님들은 꿈인가 생신가 했으리라. 김천에 이런 고층 마천루라니? 중2 때 나는 첨으로 서울 구경을 했다. 그때 시내버스란 걸 타고는 광화문을 돌았는데 열라리 높은 빌딩들이 신기했다. 그때 김천에 높은 건물이래 봐야 지금은 외곽으로 옮긴 부곡동 감옥소 담장 뿐이었다. 그런 김천에 이젠 제법 그럴싸한 고층 빌딩이 것도 무리 군집을 이루어 떼로 들어섰다. 김천구미역 역전이다. 혁신도시라는 이름의 신시가지. 그런 까닭에 구심과는 분리한 삶을 사는 외지인 마을이다. 허허벌판이었다. 과수원이었고 논밭이었다. 그런 땅이 상전이 벽해했다. 뭐 글타고 이쪽을 기반으로 삼는 사람들이 나 김천 사람이오 하겠는가? 반백 인생 중 대략 35년을 터잡은 서울이지만 나는 한 번도 나가 서울 사람이라 생.. 2020. 7. 19.
고향 한 때는 탈출하지 못하면 숨막혀 죽을 것만 같았던 데다. 버리고 지우고 씻어버려야 할 곳이었다. 2020. 5. 9.
고향서 쫓겨난 예수, 불알친구는 대빵이 될 수가 없는 법 권위dignity는 신비神秘와 미지未知를 자양분으로 삼는다. 내가 저 친구한테 군림하려면 저 친구는 나를 잘 몰라야 한다. 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저 친구는 몰라야 한다. 반면 군주는 자기가 부리는 사람의 구석구석을 훤히 꿰뚤어야 한다. 일전에 나는 이리 썼다. 이를 유감없이 증언하는 인물이 실은 한 제국을 일으킨 유방과 기독교라는 제국을 일으킨 예수인데, 전자는 집권 이후 그 자신을 너무 잘 아는 친구들을 싸그리 죽여버림으로써 비밀을 유지하려 한 반면, 용한 무당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후자는 고향에서도 신이함을 행하려 했다가 통하지 않으니 쫓겨나고 말았다는 점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오늘은 오야붕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 처절한 보기로 예수를 들기로 한다. 고향 나사렛에서 평범한 목수 아들로 살.. 2020. 4. 19.
두고 온 고향 다시 서울이다. 어쩌다 서울이 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고향이라고 유별날 것은 없다. 평범한 산촌일 뿐이다. 어케 하면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 고민한 나날로 젊은 시절을 점철한다. 먹을 게 없어 떠났을 수도 있고 출세를 위해 떠났을 수도 있다. 금의환향은 내 꿈에 없었으므로 출세는 지향했으되 환향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해본다. 그러기엔 고향은 너무나 보잘 것 없었다. 이젠 좀 형편도 나아져 기울어져가는 집도 손봤고 똥물 튀던 화장실도 곤쳤으며 이젠 언제나 뜨신 물로 뜨신 데서 암때나 샤워도 한다. 두고 온 고향 두고 온 마담 두고 온 표고 두고 온 것 천지라 그래도 두고 온 것 중엔 그래도 그래도 노모만큼 밟히는 이 있으랴. 이젠 반백이 훌쩍 넘은 아들이 좋아한다고 노모는 호박죽을 만들더라. 이리 써놓고 .. 2019. 10. 20.
추자에서 노모까지..또 한번의 귀향 추자 수확철이라 추자 땄냐니 동생이 추잣물 물든 손바닥 펼쳐 보인다. 추자의 최대 적은 청솔모. 올겐 청솔모 공격에 살아남았냐니 청솔모가 올겐 없는데 추자나무 병이 심하단다. 그래서인지 추자나무 이파리 벌레먹은 흔적뿐이라. 요새 계속 비라, 오늘도 추적추적, 내리는 폼새와 산능성이로 걸친 먹구름 보니 쉬 그칠 비가 아니다. 가뜩이나 빗물 머금어 무거운 해바라긴 대가릴 푹 숙였고 처마 밑엔 씨받는 도레이 널부러졌다. 산마다 구름옷 비누거품맹키로 뭉쳐 저 구름 다 빼내려면 뒷굼치 각질 벗겨질 때까정 질겅질겅 밟아얄듯 싶다. 마당 한켠엔 팅팅탱탱 불은 가지 대롱대롱 폼새 보니 씨받이용이라 좀 있음 배 갈라 씨뺄 듯 싶다. 광엔 들에서 따고 뽑아다 놓은 마늘이며 메밀이며 고추가 고루고루라 개중 근대 달아 팔아버.. 2019.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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