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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조선5

요녕성 호로도에서 재림한 맨마지막 단계 비파형 동검, 어찌 볼 것인가? 차순철 선생이 소개한 자료인데, 저 금병청동단검金柄靑銅短劍, 곧 자루는 금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청동으로 제작한 칼은 저 책자에 의하면 金柄青铜短剑 Bronze Dagger with a Gold Handle and Anfractuous Blade 战国 Warring Statcs Period 长31.8、柄宽14.4厘米 建昌东大杖子墓地11号墓出土 辽宁省文物考古研究所藏 이라 소개하거니와, 이른바 비파형동검이라, 저짝에서는 곡인청동단검曲刃青铜短剑이라 흔히 부르는 것이니와, 저 책자 이전 저들이 소개한 자료를 보면 감금 곡인 청동 단검 嵌金曲刃青铜短剑 이라 했던 것을 저리 새로 용어를 저리 정립했는지는 모르겠다. 암튼, 전국시대 유물이라 소개했으니, 기원전 403~기원전 221년 무렵 유물로 봤으며, 길이 31.8.. 2024. 7. 4.
선우씨鮮于氏 이야기 (4): 낙랑태수 선우사鮮于嗣 앞에서 중국 선우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한국에도 선우씨는 있다. 이 두 선우씨 사이에는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는 기록 외에는 접점이 없을까? 만약 있다면 두 선우씨 사이의 접점으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무엇일까? 필자가 알기로 한국과 중국에서 나오는 선우씨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중국 삼국시대 기록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보면. 桓靈之末 韓濊彊盛 郡縣不能制 民多流入韓國. 建安中 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 爲帶方郡. 遣公孫模·張敞等 收集遺民 興兵伐韓濊. 舊民稍出. 是後倭韓遂屬帶方. 景初中 明帝密遣帶方太守劉昕·樂浪太守鮮于嗣 越海定二郡 諸韓國臣智 加賜邑君印綬 其次與邑長. 其俗好衣幘 下戶詣郡朝謁 皆假衣幘 自服印綬衣幘 千有餘人. 部從事吳林 以樂浪本統韓國 分割辰韓八國 以與樂浪. 吏譯轉有異同. 臣.. 2023. 1. 20.
선우씨鮮于氏 이야기 (2)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선우씨란 원래 중국의 토성으로 전한대부터 계속 내려온, 기자와는 무관한 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중국 후한대에는 선우황鮮于璜 이라는 이가 있다. 서기 125년에 죽은 후한의 관료다. 이 사람의 무덤 빗돌이 중국 하북성, 그 중에서도 하필이면 옛 중산국 자리에서 발견된 바 있다. 그 내용을 보면, 讳璜,字伯谦,其先祖出于殷箕子之苗裔,汉胶东相之醇曜 라 하여 그 선조는 은나라 기자에서 나왔다고 떡 적혀 있는 것이다. 书法聚焦 | 每日经典欣赏——《鲜于璜碑》_悲夫 《鲜于璜碑》书风方整朴厚,笔法方圆结合,在存世汉碑中,与晚于它的《张迁碑》同属方笔一派而有别具特色。 【14】无振柜,亦古晏臧之次矣,当遂功祚,穷爵永年,意乎不造,早世 【17】 www.sohu.com 아래는 그 묘비명의 전문이다... 2023. 1. 18.
선우씨鮮于氏 이야기 (1) 우리나라에는 선우씨가 있다. 기자의 후손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기자를 모신 평양 숭인전의 전감으로 대대 봉사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선우씨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중국에도 있다. 그런데 중국 쪽에서는 자국의 선우씨는 모두 조선에서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周武王灭商纣以后,放出箕子,并向他请教如何才能得到商民的拥护。箕子认为应当施行仁政,用安抚的手段来争取民心。周武王听了很高兴,要封箕子为官,但是箕子不愿做周王朝的臣子,就出走到辽东,建立了朝鲜国,史称“箕子朝鲜”。在朝鲜史籍《朝鲜史略》中记载:“周武王克商,箕子率中国人五千入朝鲜”。在朝鲜史籍《海东绎史》中引《三才图会》也记载:“箕子率五千人入朝鲜”。在朝鲜文献《朝鲜鲜于氏奇氏谱谍》中亦记载:“武王克殷,箕子耻臣周,走之朝鲜,殷民从之者五千人。” 据历史记载,箕子朝.. 2023. 1. 17.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5편 기자조선과 백제, 그 괴이한 조우 “미륵사 석탑은 백성의 고혈 짜낸 죄악” 注) 이는 문화유산신문 기고문으로 기사입력시간은 2016년03월09일 13시55분이다. 《삼국유사》는 승려 일연이 대부분 찬술한 가운데 그 일부는 그의 제자 무극(無極)이라는 승려가 보충했다는 주장이 이제는 적어도 학계에서는 대세를 이룬다.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도 군데군데 있다. 특히 그 맨 앞에 붙은 가야를 포함한 네 나라 왕들과 후삼국 왕들의 계보인 왕력(王曆)이 그 이하 본문과는 어떤 관계인지는 적지 않은 논란이 있다. 지금 살피고자 하는 백제 무왕(武王) 역시 그러하다. 이곳 왕력 편에서는 백제 제30대 왕인 그를 일러 “무강(武康)이라고도 하는데 헌병(獻丙)이라고도 한다. 혹은 어릴 때 이름을 일로사덕(一耆篩德)이라고도 한다. 경신년(600)에 즉위해 41년을 다스렸다”고 했다... 2018.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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