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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69

줄줄이 유물 이야기-김유신에게 버림받은 말 그리고 안장 천관녀 : 아니, 이 밤중에 어인일로... 김유신 : (술에서 깸) 여기가 어디지? 잉? 이노무 말이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게야?? 에잇! 댕강...! 천관녀 : 꺄!! 김유신 : 잘있으시오. 다신 오지 않겠소! 천관녀 : 흑흑ㅜㅜ 매정한 사람... ㅜㅜ 안장은 가져가세요! (분리수거 귀찮단 말이에요!) 말 : 다음 생은 멍청한 말로 태어나길... 경주 천관사지 / 팔각삼층석탑 황량한 들판에 탑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주에 있는 천관사지에는 이러한 매정한 청년 김유신과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그려진 천관녀,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말의 이야기가 전해 온다. 사료를 보면 '김유신은 말의 목을 베고 안장을 버리고 갔다.' 라고 쓰여 있다. 굳이 굳이 안장을 버리고 갔다는 것을 적어준 걸 .. 2020. 2. 4.
고부조高浮彫의 기념물 원원사지遠源寺址 석탑 이 경주 외동읍 모화리 원원사지遠源寺址는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채, 몇몇 답사 애호가나 불교미술 전공자들에게만 익숙할 뿐이다. 원원사지를 논할 때 두 이름을 뺄 수 없다. 1. 김유신 그가 발원자다. 그가 사재를 털어서 만든 사찰이 원원사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제5권 신주神呪 제6 명랑신인明朗神印에 이렇게 말했다. 또 신라 서울 동남쪽 20여 리에 원원사遠源寺가 있는데, 세상에는 이렇게 전한다. “안혜(安惠) 등 네 대덕大德이 김유신金庾信·김의원金義元·김술종金述宗 등과 함께 발원하여 창건했다. 네 대덕의 유골은 모두 절 동쪽 봉우리에 묻었다. 그래서 사령산四靈山 조사암祖師嵓이라 한다.” 그런즉 네 대덕은 모두 신라시대 고승이다. 2. 노세 우시조能勢丑三 일본 고건축학도로 1930년대 폐허가 된.. 2019. 9. 24.
"나는 김유신인가?" 백제를 멸한 신라가 곧이어 당과 연합해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이때 역할 분담이 이뤄졌으니, 실제 군사공격은 당군이 감당하고, 신라군은 군량을 보급하는 일이었다. 이 보급부대 총사령관이 김유신이었다. 이 보급대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자세치 않다. 다만, 당시 정세를 볼 적에 지금의 서울 정도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한다. 옮길 군량은 쌀 4천 섬에 조租 2만 2천2백5십 섬이었다. 보통 이처럼 막대한 군량은 산이 많은 한반도 사정상 육상 수송보다는 해상 수송을 선택해야했겠지만, 이게 여의치 아니했는지 육상을 뚫었다. 파주 임진강 라인을 도하한 듯한데, 암튼 고구려 국경에 진입한 신라군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겨울이라 눈이 섞인 바람이 쳤으니, 오죽하겠는가? 적군이 저항하는 데다, 날씨 지형 .. 2019. 9. 21.
김유신, 태대각간에서 흥무대왕으로 이 무덤이 김유신묘인가 아닌가는 논란이 적지 않다. 그것은 차치하고 내가 주목하는 대목은 조선후기, 아마도 영조연간이던가? 그때 세운 묘표墓表에 이 무덤을 일러 '新羅太大角干金庾信墓(신라 태대각간 김유신묘)'라고 했다는 점이다. 왜 흥무대왕릉興武大王陵이라 하지 않았을까? 이미 김유신은 그 시기를 확정하긴 곤란하나, 신라말기에 흥무대왕에 추봉된 이래 줄곧 흥무대왕이었으며, 특히 김해김씨 종문宗門에서는 더 그랬다. 그럼에도 대각간 김유신묘라고 한다. 이 점이 수상쩍기만 하다. 김유신이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된 시기는 언제인가? 내가 일전에 이를 정리한 적이 있으니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 흥덕왕代(826~836)삼국유사 : 경명왕代(917~924)삼국사절요 : 경명왕 7년(923)동국통감 : 흥덕왕 10.. 2019. 5. 30.
김유신의 入山修道와 그의 龍華香徒 Kim Yushin's Entering the Mountain and His Yonghwahyangdo(龍華香徒) 韓國古代史探究= Sogang journal of early Korean history v.13, 2013년, pp.99 - 138 김유신의 입산수도入山修道와 그의 용화향도龍華香徒 Kim Yushin's Entering the Mountains and His Yonghwahyangdo(龍華香徒) AbstractKim, Tae-Shik Many mystical conducts are recorded for Kim Yushin (595~673), who played the most important role in achieving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by defeating Baekje and Goguryeo as the commander-in-chief of t.. 2019. 5. 7.
진천의 김유신 태실(忠淸北道鎭川郡金庾信胎室) 내가 현지 사정에 어두워 막상 태실까지 등반했지만, 하산해서 그 정확한 위치를 제대로 표시했는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화살표 표시한 지점이 아마도 진천鎭川 김유신金庾信 태실胎室 위치일 것이다. 만뢰산萬賴山(해발 611.7m)에서 뻗어내린 태령산胎靈山(해발 421m)이라는 능선 중에서도 사방을 조망하기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한다. 이 태실은 여러 모로 우리한테 익숙한 조선시대의 그것과는 양식이 판이하지만, 그 위치만큼은 판박이다. 이 김유신 태실은 이미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도 기록된 것이니, 적어도 기록으로 남은 한반도 현존 최고最古 태실 흔적이다. 중국에서는 전한시대 중기 무덤인 마왕퇴 한묘漢墓 출토 문자자료 중 이른바 《태산서胎産書》에 이미 태실이 보이거니와, 중국에서 태를 묻는 이른바 안태安胎은 .. 2019.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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