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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휴경-화전의 종식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한국 신석기시대. 처음 단계에 휴경-화전으로 시작된 잡곡농경은, 그 후 어떤 변화를 거쳤을지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화전민 촌락에는 농경의 방식이 두 가지가 있다는데, 첫째는 화전하지 않고 경작 관리하는 땅과 화전하는 땅을 함께 가지고 있는 화전민. 이 경우에는 비화전 경작지에 거주지가 건설되고 화전하는 땅에는 가끔 올라가 보게 된다. 둘째는 비화전 경작지 없이 오로지 화전만 하는 경우인데이 경우에는 화전을 따라 옮겨다니지 않으면 안된다. 대개 한번 불을 지르고 농사를 지으면 4-5년 후에는 옮겨야 했다 하므로 신석기시대 화전민도 4-5 년 간격으로 옮겨다니며 휴경-화전을 반복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최초의 단계는 순화전민의 단계였을 것이고, .. 2024. 9. 4.
화전민과 매우 비슷했을 한반도 초기농경민 일전에 김단장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한반도 신석기시대, 초기 잡곡농경민은 농경의 최초 단계는 화전 비스무리 했을 것이다. 화전의 특징이 무엇인가? 주기적으로 옮겨 다닌다는 것이다. 시비하지 않고 토지를 단기간에 비옥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은 불을 지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땅에서 지력이 소모되면 다시 새로운 곳으로 옮겨 불을 질러 그곳에서 경작한다. 물론 주거지도 함께 옮기게 될 것이다. 이런 양식의 농경이라 해도, 농경은 농경이다. 화전민은 여가시간에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농경민이다. 여가시간에 야생동물을 잡으러 다닐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주거지와 농경지는 정기적으로 순회하는 방식으로 몇개의 거점을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이었을 것 같다. 방향도 없이 정처없이 불지르고 다니.. 2024. 9. 4.
국보순회전, 의도 불순하기 짝이 없는 현대판 조선물산공진회 국가에 의한 일방하는 수탈, 그에 기초하는 지역 죽이기를 일삼던 국가가 근자 개발한 지역 살리기 정책으로 국보순회전이라는 요망한 괴물이 있으니 혹자는 안 하는 것보다야 백배 낫고, 그래도 이런 변화가 무의미하지는 않다 하겠지만 천만에! 이 썩어빠진 정신자세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지들이 뭔데 우는 아이 젖 한 번 물리는 심정으로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 해서 저 따위 국보순회를 한단 말인가? 그 순회하는 국보 내역 본 적 있는가? 모조리 국가가 지역에서 강탈한 지역 문물이다. 그렇게 강탈해간 문화재를 지들이 꽁꽁 쟁여두고선 이젠 지역으로 돌려달라는 아우성에는 각종 이유 달아 내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는 국가라는 놈이 이거라도 먹고 떨어져라 해서 내어놓은 미봉책이 저 국보순회라는 것이다. 저 떡고물 하나 받아먹겠.. 2024. 9. 4.
국가폭력으로 다뤄야 하는 우리안의 약탈문화재 누누이 지적하지만 국가를 빛내게 하기 위해 지역이 일방으로 희생할 수는 없다. 사람, 특히 외국인 내왕이 상대로 많은 서울에 있어야 하고 서울에 있어야 해당 유산 안전성을 더 담보하며 더구나 그리하지 아니하면 국가가 보여줄 컬렉션이 없어 지역문화재는 서울에 있어야, 국가가 관리하고 독점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지역 반환을 반대하는 이 논리는 국가폭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는 명백히 국가폭력이다. 저 일방하는 국가폭력 논리는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보다 저 국가폭력이 일방적인 국가의 군림과 그에 기반한 지역 지배, 더 나아가 지역 낙후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전체를 위해 개인이 일방으로 희생할 수는 없다. 이 믿음 혹은 계약은 상호 대등이며 상호존중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그 전체는 언제나 그 개.. 2024. 9. 4.
틀림없이 있었을 한국 신석기시대 휴경 지력을 보강하는 방법이 미진하던 시대에는 콩과 식물을 재배하여 연작을 시도하기도 했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아 틀림없이 정기적으로 휴경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생각해보자.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경작지를 여러 곳에 확보해 두고 정기적으로 돌아가며 휴경해야 하는 바람에 일정 순서대로 경작지를 순회하며 농사를 짓고 있었다면이는 "정착농경"인가 아닌가?  위는 유럽 중세의 장원으로 정기적으로 돌아가며 휴경하는 시스템을 보여준 것이다. 신석기시대에는 시비를 했을 리는 없고, 백프로 돌아가며 휴경했을 것이다. 휴경하는 경작지는 쉬게 놔두고 경작하는 땅 근처로 옮겨다니며 농사를 지었다면이것은 정착 농경인가 아닌가? 2024. 9. 4.
말만 많이 들은 그랜드 캐니언 Grand Canyon 콜로라도 강이 감돌아 흐르는 미국 그랜드 캐년Grand Canyon이라 한다.  그래 그랜드 캐니언이건 캐년이건, 하도 말은 많이 들었지만 내 눈으로 보질 못했으니 언제나 궁금하기는 하다.  언제 마주할 날 있을 지 모르겠고, 그런 날이 오면 저 풍경이 포토샵 거친 그것인지 아닌지 확인할 날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한다.  인생은 유한이라, 그 유한에서 무한을 향해 아둥바둥 달려갈 뿐이다. 2024. 9. 3.
이집트에선 사관은 가부좌? 이것 말고도 이런 자세를 한 고대 이집트 서기관, 곧 사관史官이 꽤 알려져 있는데 형식화했는지 꼭 이런 가부좌한 모습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저긴 겨울도 없는지 맨날맨날 저리 벌개 벗은 상태다. 부처님도 아니고. 저 가부좌한 자세로 글을 적어내려간 것인지 모르겠다. 저 분은 저 서기관 중에서도 유명세가 가장 높다. 앉은 자세라 해서 Seated Scribe 또는 Squatting Scribe이라 부른다. 우리네 명명법으로 치면 서기관 좌상 정도가 될 터이다. 앉아 일하는 서기관 모습을 형상화했다 한다. 1850년 사카라의 세라피움 Serapeum of Saqqara으로 이어지는 스핑크스들의 골목 alley of sphinxes 북쪽 사카라Saqqara에서 발견됐다. 시기는 제5왕조 기원전 2450~2325.. 2024. 9. 3.
또 하나의 문화재 국가폭력, 지방은 짜가로 만족해라! 앞서 1995년 갈항사지 석탑 반환 운동이 실패했으며, 그에 대한 국가(중앙정부), 더 구체로는 국립중앙박물관애 내세운 어처구니 없는 반대 논리를 보았다. 한데 김천 지역에서의 저 석탑 반환 운동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다. 2003년에도 이 지역 사회단체들이 연대 서명해서 국가에 대해 같은 요구를 하고 나섰다. 물론 이번에도 역시 국가는 반대했다. 그렇다면 이때는 국가, 곧 국립중앙박물관은 어떤 논리를 내세웠을까? 첫째 국가소유자산이기 때문에 반환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해 주인이 우리인데 감히 주인도 아닌 너희가? 이런 반대 논리였다. 둘째, 대신 그 대안으로 복제품을 제작해 원 소재지에다가 전시하는 방안이 있을 수가 있다. 꼭 이에 기반한 것은 아니지만, 근자 개관한 김천시립박물관에는 저 갈.. 2024. 9. 3.
국가를 빛내기 위해 갈항사 석탑 반환을 거부한 국가! 국가가 무단 점탈한 갈항사 석탑을 돌려달라는 요구는 현재 주어진 문서로 보건대 1995년에 이미 있었다.다만 당시는 여러 여건상 이 운동이 제대로 활기를 띠지 못하고 무엇보다 국가가 반대하자 이내 무산하고 말았다.그렇다면 국가는 왜 이런 반환요구를 묵살했는가?그 이유를 보면 기가 찬 대목이 발견된다.당시 김천지역 갈항사 석탑 반환 요구에 대한 1995년 12월 1일자 반환불가 공식 답변이다.불가 사유는 이렇다.1) 석탑 보존상태가 위험하여 점검 및 관리를 위해 보존과학실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 관리하는 것이 최상책이다.2) 국보급 국가유산을 아무런 감시인이 없는 갈항사 폐사지에 이전하여 놓을 경우 전문절도단의 절취의 대상이 된다.3)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함으로써 국내외 관람객이 보다 쉽게 한국 .. 2024. 9. 3.
마침내 서광을 비추는 갈항사지 석탑 반환운동 오늘, 그러니깐 2024년 9월 3일 화요일 오전 10시 김천시립박물관 강당에서는 국보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김천 이전 추진위원회 발족식이 있었다. 이는 글자 그대로 김천 오봉리 금오산 기슭 제자리를 떠난 지난 백년간 타향을 떠도는 갈항사지 쌍탑을 제자리에 옮겨 놓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는 자리다. 김천시가 주도하는 모양새지만 그 발단은 이 지역 출신 송언석 국회의원이 방아쇠를 당겼고 민관 협의체라는 성격을 띤다. 이는 저 쌍탑을 강탈 점유 중인 국가, 더 구체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립대구박물관으로 옮기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촉발됐다. 갈항사지는 현장은 금오산 기슭에, 탑은 서울 용산에, 그 복장 유물은 대구박물관이 보관하는 세 갈래 이산 생활을 하는 기이한 유산이다. 앞으로 저 석탑은 물론이고.. 2024. 9. 3.
산나물을 어떻게 볼것인가 산나물, 산채는 한국에서 현재 유독 많이 발달하고 남아 있는데, 당연한 일이지만 20세기 이전에도 지금처럼 산채가 건강식이었을 리가 없다. 오히려 이 산채는 부족한 경작채소의 양을 보완하는 수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채소 경작. 조선시대까지도 경작 면적 그다지 넓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지금도 배추농사 생산 과잉이면 갈아 엎는데 썩기 쉬운 채소를 엄청나게 많이 지었다가 그걸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채소농사를 대규모로 짓는 곳은 서울 주변 등 대도시 일각이고 대부분의 시골 농촌에선 텃밭 수준이었을 것이라 본다. 따라서, 심는 채소의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도 모자라면 산채로 보충했을 것이라 본다. 왜 한국에는 산나물이 이렇게 발달했을까? 사찰음식의 유습인가? 필자가 보기엔 그것이 아니고.. 2024. 9. 3.
페니키아 향수 유리병 이런 야시꾸리 유리 제품 지중해 쪽에선 비교적 드물지 않게 만난다. 딱 봐도 개똥폼 냈다.​ ​이 분들은 기원전 5-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름과 향수를 담고 있던 알라바스트론 유리 용기들 alabastron glass vessels이시다. ​이런 유리는 지중해 동부 지역(페니키아 또는 로도스 작업장으로 추정된다)에서 만들었다. 이탈리아 페라라Ferrara 소재 페라라 국립 고고학 박물관 National Archeological Museum of Ferrara 소장 2024. 9. 3.
로마의 농가월령가, 9월은 포도 수확철 9월 셉템버September다. 본래 로마 달력에서 9월은 7월이었다. 그 September 뿌리인 라틴어 septem은 seven 이었다. 영어 단어 seven은 셉템에서 유래한다. 그렇다고 본래 7월이 훗날 9월이 되었다 해서 두 달이 실제로 밀린 것은 아니었다. 7월 셉템버와 9월 셉템버는 같은 기간을 지칭했다. 어찌된 일일까? 이는 1년 시작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로마 책력으로는 가장 오래됐다 하는 로물루스 달력에서는 지금의 3월이 1년 시작이었다. 그러니 이에서 출발하는 7번째 달 셉템버가 지금의 9월이다. 3월 새해 시작은 기원전 451년 무렵에 책력이 변경하고 1월에 첫해가 되면서 9월이 된다. 다만 책력 변경 이후에는 달 명칭을 바꿔야 했지만, 바꾸기 귀찮다해서인지 그대로 갖고.. 2024. 9. 3.
뺑끼칠 파르테논 신전과 고려시대 철불 저런 시도가 많이 있는데, 그렇다 해서 저 파르테논 신전이 한창 흥기하던 그 무렵에 위와 같거나 엇비슷한 모습이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와 같은 시도가 의미가 있는 까닭은 지금은 온통 다 뺑끼칠 벗겨져 앙상한 맨바닥만 드러낸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는 그 한 가지만은 확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들이라고 그냥 맨 얼굴로 놔뒀겠는가? 사람이 갖은 치장 화장 다해서 뽀대를 내고 싶어하듯이 건물 역시 마찬가지라 컬러풀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제 세밀히 관찰하면 저 뺑끼칠 흔적이 더러 남아있다. 우리가 철불鐵佛이라 일컫는 고려시대 불상도 그렇다. 그것이 시커먼 철불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황금이 다 벗겨졌기 때문이거나 둘째 아예 만들면서 돈이 모자라 혹은 부도나서 칠할 황금 뺑끼를 구하기.. 2024. 9. 2.
1920년에야 여성참정권을 실현한 미국, 그리고 대한민국 1919년 현재 미국이 여성 참정권을 언제 획득했는지를 주별로 보여주는 지도다. 보다시피 그 완성은 1920년이다.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은 70년 기나긴 투쟁 역사를 지닌다. 그것이 마침내 19번째 수정헌법을 통해 달성된 시점이 1920년이다. 더 놀라운 점은 한국의 경우다. 한국은 이 민주주의 노정이 아주 특이해서 1948년 정부수립과 더불어 처음으로 참정권에 기반한 민주정을 실시하고, 그 첫 민주정에서 곧바로 여성 참정권을 보장했다. 미국과 비교하면 불과 28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진영별로 1948년을 건국절로 봐야 하는지 정부수립 시점으로 봐야 하는지 논란이 되거니와, 이처럼 웃기는 논쟁 없다. 무슨 얼어죽을 건국이 따로 있고 정부수립이 따로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 헌법에서 1919년.. 2024. 9. 2.
지나개나 건축의 독창성, 미케네 아가멤논 무덤 아트레우스Atreus의 보물 혹은 아가멤논 무덤 Tomb of Agamemnon 이라 알려진 고대 그리스 무덤이다. 미케네Mycenae에 있으며 만든 시점은 대략 기원전 1300~1250년 무렵으로 본다.   이 벌집 모양 기념물은 흔히 말하기를 미케네 문명 건축 독창성과 정교함을 보여준다 하는데 뭐 그렇지 아니한 문화권 기념비가 어디 있겠는가?  같은 무덤인데 횡혈식 석실분이라면 산통 깨는 아가멤논 무덤 2024. 9. 2.
일본동물고고학회: 동물고고학 https://www.zooarch.net/latest/ 最新の学会誌|日本動物考古学会『動物考古学』第41号 (2024.3)  3,000円 論文 鹿又喜隆・鹿納晴尚・イワノワ ダリア 「X 線 CT を用いた動物形土製品の内部構造の解析による製作法と儀礼行為の復元」 高橋健・風間智裕www.zooarch.net 일본동물고고학회의 기관지로 1년에 한번 나온다. 일본어, 영어 양쪽 모두로 투고 가능하다. 2024. 9. 2.
크리스탈 눈을 박은 이집트 고양이 카이로 이집션뮤지엄 소장 중왕국시대 고양이 모양 용기다. 이집트 중왕국 제12왕조 초기(기원전 1990~1900년)에 제작된 고양이 모양 용기vessel다. 이집트산 설화석고alabaster로 만든 이 고양이는 아름답게 조각했으며, 구리로 안감을 댄 암석 크리스탈 눈은 이 작품에 섬뜩한 현실감을 선사한다. 고양이는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 중요하고 존경받는 역할을 했다. 그들은 높은 평가를 받고 신성한 동물로 간주되었다. 그들은 애완동물로 사육되었으며 악령과 해충vermin을 막는 수호자로도 여겨졌다. 고양이는 가정, 다산, 보호 여신인 바스테트Bastet (Bast라고도 알려짐) 여신과 연관되어 있다. 바스테트는 종종 암사자 머리나 집고양이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고양이는 고왕국 말기에 그림과 부조에 처음 .. 2024. 9. 2.
고고식물학 학술지 링크 https://link.springer.com/journal/334 2024. 9. 2.
[잡곡 재배 이야기] 새 지난 자리에 들쥐가? 잡초 천국 by 신소희    당근 밭에 풀뽑는데 밭에 들고양이들이 색별로 돌아다닌다. 아침부터 만난 애들이 대여섯 마리는 되는듯.뭐지?하는데 땃쥐 하나가 뽈뽈 내 옆으로 지나간다.쥐나  들고양이들, 내 존재에 대한 경계없다.  나는 그들에게  그냥 밭에 일부일 뿐인가?  그러다 문득,걔들이 나를 지나쳐 간 곳이 가르키는 방향이 늦은수수랑 조랑 기장을 심은 곳이라는 게 떠올랐다.(자연이  움직이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ㅜㅜ)한 일주만에 조심은 밭에 갔더니, 젠장..조가 이길 줄 알았더니 풀이 완승이다.  내가 심은 조는 가지치기도 얼마 안하고, 키도 작은데다, 시집을 늦게 보내 보통의 조보다 키가 많이 작은데, 일반적인 수수나 기장 기준으로 풀뽑기를 일찍 끝냈더니 문제가 된거다.키 작은 조가 익으니 이삭이 허릴 숙이고.. 2024. 9. 2.
삐까번쩍한 서안시西安市 하가촌何家村 당대唐代 문물 1970년, 섬서성陕西省 서안시西安市 하가촌何家村에서 당나라 시대 교장窖藏 시설 하나가 발견되었다. 이에서는 각종 금제품과 은제품, 옥기와 보석, 약재, 동전 등 각종 문물 1천여 점이 포함된 도자기 그릇陶翁 2점과 은제 항아리银罐 1점이 발굴됐다. 개중 금은 제품은 265점이다. 이 보물은 초기 당나라부터 중후기까지 다양한 훌륭한 제품들이 포함되어 있다.이들 유물은 섬서역사박물관 한 코너를 따로 마련해 전시 중이었는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이들 유물은 동서양 교류를 말해주는 증거라 해서 대서특필하며 한국에서 틈만 나면 곶감 빼먹듯이 하나씩 써먹는다.   In 1970, a Tang Dynasty cache was discovered in Hejia Village, Xi'an, Shaanxi Pr.. 2024.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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