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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베를린, 쪽도 못쓰는 이태리 독일 프로축구 수도 승강제를 근간으로 하는 각국 프로축구에 영원한 강자는 있을 수는 없다. 각국 프로축구는 또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하니, 연고권이 있어 그 지역을 기반으로 삼는다. 유럽 프로축구의 경우 흔히 스페인 프미메라리가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독일 분데스리가, 이탈리아 세리아A, 그리고 프랑스 리그앙을 5대 1부 리그라 하거니와, 보통은 수도를 프랜차이즈 시티로 삼는 클럽이 해당 리그만 아니라 그들을 통합한 챔피언스리그도 독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무래도 돈과 사람이 수도 중심으로 몰리고 그런 까닭에 축구 또한 비즈니스라 수도권 중심으로 투자가 밀집하기 마련인 까닭이다. 한데 특이하게도 독일과 이태리는 전통적으로 수도 기반 클럽이 맥을 추지 못한다. 독일은 이게 좀 묘해서 언제나 뮌헨 기반 바이에른 뮌헨이 절대.. 2024. 1. 17.
백제와 신라 동시대 무덤 모식 물론 시기를 확정해야 하니 왕릉급 기준으로 백제가 저런 식으로 변모한 것은 확실히 475년 웅진 천도 이후이며 망할 때까지 저 골간을 유지했다. 다시 말해 저 기간 동안 백제는 산 구릉에다 기본으로 묘광을 파고 들어가서 그 안에다가 시신을 매장했다. 이 경우 산 혹은 구릉 자체가 봉분이라 봉분을 크게 만들지는 않아 높이라 해 봐야 일미터 남짓하다. 동시대 신라는 왕청 나게 달라 지증왕 때까지는 평야에 쓰다가 법흥왕 이후는 경주 분지를 탈출하면서 입지조건은 백제랑 비슷해져 구릉으로 이동한다. 다만 외곽으로 가기는 해도 일부는 여전히 평지를 고수하기도 한다. 문제는 본능. 신라는 결코 기슭으로 가도 우람한 봉분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산더미만한 봉분을 쌓아 이곳이 무덤임을 표식했다. 동시대 가야는 조금 .. 2024. 1. 17.
[대물大物 이야기] 거근巨根의 창시자 노애嫪毐 (2) 도로아미타불 될 뻔한 여불위 진秦 소왕昭王은 재위 50년에 왕기王齮라는 사람을 사령관으로 삼아 조趙나라 서울 한단邯鄲을 포위 공격했다. 이에 다급해진 조나라에서는 진나라 인질로 한단에서 생활하던 자조子楚를 죽여 복수하고자 했다. 더 다급해진 쪽은 여불위였다. 공들인 노력이 하루아침에 거품이 될 것을 우려한 그는 다시금 뇌물을 동원해서 조나라 관리들을 구워 삶아 겨우 자초를 탈출케 하고는 진나라로 도망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자초나 그의 후견인 여불위한테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특히 여불위의 경우는 하마터면 개털될 뻔한 투자를 톡톡히 본전 뽑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단에 남은 자초의 처자식까지 안전을 보장케 하는 데 성공하고 자초와 함께 진나라로 들어간 여불위는 마침내 자초를 태자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 대목을 사기 여불위.. 2024. 1. 17.
국립민속박물관장, 중앙박물관 낙하산은 안 된다(2018) 어제(2018. 6. 29) 문화체육관광부 인사 중 국장급 전보에서는 박물관 학예직 인사 이동이 있었으니, 국립전주박물관 김승희 관장이 국립광주박물관장으로 가고,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이 중앙박물관 산하 국립전주박물관장으로 이동했다. 이번 학예직 고공단 인사는 송의정 국립광주박물관장이 퇴임함에 따른 후속조치라는 성격과 더불어 다른 측면도 있으니, 다름 아닌 민속박물관 문제가 도사린다. 직제로 보면 국립민속박물관은 비록 그 직급이 차관급인 국립중앙박물관에 견주어 낮기는 하지만, 엄연히 같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소속기관으로, 서로에 대해서는 독립성을 지닌다. 다만 규모 차이에 따른 인사 적체 문제가 있어, 국립중앙박물관은 차관급(대통령령에 따른 차관급이라 같은 차관급인 문화재청장과는 격이 다르다) 관장 산하.. 2024. 1. 17.
[로마열전] (4) 황당한 아피아 가도 비아 아피아 Via Appia. The Appian Ways. 흔히 아피아 가도街道라 옮김하는 로마시대 도로라 해서 대서특필한다. 이곳을 가는 과정이 좀 우여곡절이 있었으니,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한 번 하기로 하고, 위선 그렇게 해서 애써 찾아간 저 몰골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니 보다시피 로마는 온데간데 없고 삼피에트리니 sampietrini 라 해서 도대체 로마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근대 이후 로마 보도블럭 천지였으니 화딱지가 나서 한 대 꼬나물었다. 혹 노출한 웅덩이에 로마가 보일까 말까 해서 뒤져도 로마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그 주변으로는 온통 로마시대 유적이라 해서 더러 그 면모를 앙상하게 증언하는 건축물 흔적이 남기는 했지만 내가 만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라 도로였다. 살피니 바닥은 .. 2024. 1. 17.
어찌 죽어야 하는가? 무스타파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가 무자비한 숙청으로 철권통치를 감행했음에도 터키 국민 사이에서 아타튀르크, 투르크의 아버지로 절대적인 추앙을 받는 이유는 적당한 때에 죽어줬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에게 축복은 요절이었다. Otherwise he must have been a 차우세스쿠 반면 학자는? 혁명가는 요절하면 전설이 되고 학자는 오래 살아야 대가가 된다 고 외우 신동훈 선생이 이야기한다. (2015. 1. 17) *** 실상 어찌 죽어야 하는가 보다는 언제 죽어야 하냐가 타당하겠다. 친구들한테 묻습니다. 언제 죽을래? 결론은? 혁명가라 생각하면 한 방에 훅 가고, 연구자라 생각하면 비름빡 똥바를 때까지 살아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 삶이다. 2024. 1. 17.
을축년대홍수, 한국전쟁을 능가하는 참상 을축년 대홍수가 한국 근현대사에 미친 영향은 한국전쟁의 그것보다 크다. (2017. 1. 17) *** 이 을축년대홍수는 내가 그 심각성, 그리고 그것이 한국근현대사에서 막중한 위치를 계속 상기하거니와, 2025년 내년이 그 발발 100주년이라, 그 심각성은 한국전쟁의 그것을 버금하거니 뛰어넘는 대사건이다. 꼭 백주년이라 해서 대대적으로 기념 추념할 사안은 아니라 해도, 이때 아니면 또 언제 하겠는가? 저 일을 새기는 기획 혹은 전시 같은 것들을 관련 기관들에서는 1년 남았으니 제대로 준비해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서 계속 상기한다. *** related articles *** 간략히 살피는 1925년 을축년대홍수 간략히 살피는 1925년 을축년대홍수 홍수라는 고고학자 앞에서 1997년 이후 풍납토성 일대.. 2024. 1. 17.
줄행랑을 세탁한 광개토왕비, 그보다 더 정확한 삼국사기 옛적 시조(始祖) 추모왕(鄒牟王)이 나라를 세웠는데 (王은) 북부여(北夫餘)에서 태어났으며, 천제(天帝)의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하백(河伯 : 水神)의 따님이었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성(聖)스러운 … 이 있었다(5字 不明). 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부여의 엄리대수(奄利大水)를 거쳐가게 되었다. 왕이 나룻가에서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며 하백(河伯)의 따님을 어머니로 한 추모왕(鄒牟王)이다. 나를 위하여 갈대를 연결하고 거북이 무리를 짓게 하여라”라고 하였다. 말이 끝나자마자 곧 갈대가 연결되고 거북떼가 물위로 떠올랐다. 그리하여 강물을 건너가서, 비류곡(沸流谷) 홀본(忽本) 서쪽 산상(山上)에 성(城)을 쌓고 도읍(都邑)을 세웠다. 왕이 왕위에 싫증을 내니, (하늘님이.. 2024. 1. 17.
통념으로부터의 탈피, 새로운 통념의 주입 신라를 비롯한 고려 이전 고중세사를 접근하는 첩경은 한 여자가 두 남자 이상한테서 씨를 받을 수 있다는 통념의 주입이다. 왜 자꾸 여자는 한 남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고려 시대만 해도 이런 여자가 쌔고쌨다. 심지어 아버지 여자를 취한 아들도 흔해 빠졌다. 이것만 이해하면 미해결로 치부한 역사의 비밀 상당수를 파헤친다. 외려 이혼과 재혼이 흔한 지금이 바로 신라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시대다. (2017. 1. 16) *** 고대사를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가 현대의 상대화다. 절대적 가치 혹은 통념 혹은 상식의 파괴다. 현재를 상대화하고 객관화하는 일, 그것이 시급하다. 말로야 이리 떠드는데 하는 짓을 보면 당대에 사로잡혀 한 발짝 진전이 없다. 내가 역사를 볼수록 신이한 것은 그것이 끊임없.. 2024. 1. 16.
1915년 흑판승미 조선사적유물조사복명서 서문 서언 우리 상대에 일한 교섭이 빈번했다는 것은 우리 상대사를 연구할 때 우선 주의해야 한다고 하지만, 역사서에서 빠뜨리거나 오류가 있어 이것을 상세하게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조선사에 그 자체에서도 아직 해결해야 할 것이 적지 않다. 이번 승미勝美의 출장 목적은 그 실지를 답사하여 고고학·역사지리학 등의 방면에서 그것을 관찰하고, 그럼으로써 상대사 연구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데 있다. 그래서 남선南鮮에서 여행 대부분을 보냈는데, 신라·임나 땅인 경상남북 양도는 2~3개군을 제외하고 거의 답사했으며, 특히 낙동강 유역 섬진강 연안 및 진해만 부근을 정밀 조사하였고, 우리 상대上代 문명과 지대한 관계가 있는 백제 땅이 충청남북 전라남북 4개 도에 걸쳐 있었고, 또한 그 중요한 지점을 지나, 금강 유역 .. 2024. 1. 16.
[대물大物 이야기] 거근巨根의 창시자 노애嫪毐 (1) 장사꾼 여불위 중국이 기나긴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서쪽 변방 진秦이 통일왕조를 이룩하는 데 터전을 닦은 이는 소양왕昭襄王 혹은 약칭 소昭王으로 일컫는 군주라, 그가 닦은 터전을 토대로 시황제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분열한 중국 대륙을 하나로 통일했다. 소양왕은 무엇보다 재위기간이 길어 기원 306년에 보위를 이어 기원전 251년에 사망했으니, 반세기를 넘는 기간 안정된 국정을 운영했다고 평가된다. 한데 재위기간이 길어지면서 그에게도 고민이 있었으니 후계 문제였다. 태자가 있었지만 그의 재위 40년째에 그만 죽어버리니 그 다음 아들 안국군安國君을 태자로 봉했다. 이 안국군이 훗날 아버지 뒤를 이어 왕이 되니 효문왕孝文王이라 일컫는 이다. 이 안국군한테는 이미 아들이 스무 명이 넘게 있었다. 한 여자한테서 저리 많은 아들을 .. 2024. 1. 16.
늙어야 비로소 아는 30대 그래 어찌 나 하나로써 일반화하겠는가? 하지만 나만 아니라 주변을 봐도 이후 펼쳐지는 인생은 이 삼십대에서 결딴 난다. 학문하는 놈들? 볼짝없어 이 삼십대에 벌어놓은 것으로 생평을 울거먹고 살 뿐이다. 내가 그렇고 주변을 봐도 다 그렇다. 30대 탱자탱자한 놈이 뒤늦게 정신차려 맹렬 정진해서 40대에 공부한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40대에 정신차리는 놈 세상을 망친다. 그만큼 30대는 전체 삶을 결딴하는 획기다. 앞으로 내가 뭘 먹고 살 것인가는 오직 이 30대에 결판날 뿐이다. 나를 돌아보면 저때는 미쳐서 살았다. 그래서 건강을 해쳤지만, 기고 만장하여 온 세상이 내 발 앞에 엎드린 듯한 기개로 산 시절이었다. 방황? 그런 지랄은 20대로 집어쳐야 하며 회의? 그딴 지랄할 시간이 어딨단.. 2024. 1. 16.
1915년 능산리 조사의 의문점 이해 한여름 7월에 도쿄제국대학 출장 명령을 받고 조선고적을 답사 중이던 흑판승미黑板承美 칠판씨는 부여 능산리에서 중하총과 서하총 두 고분을 발굴했다. 서하총 발굴이 진행될 무렵, 세키노는 조선총독부 명령으로 부여 고적조사를 벌이던 중 현장에 도착한다. 세키노는 현장에서 서하총 발굴 현장을 봤다. 그러고는 그 자신도 같은 능산리 고분군 6기 중 하나를 골라서 팠다. 이런 사실은 두 사람이 남긴 글에서 각각 확인된다. 문제는 이들이 이때 발굴한 능산리 일대 백제 고분이 이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흑판씨 복명서를 보면, 중하총과 서하총 발굴을 끝내고는 세키노 일행과 함께 같은 능산리에서 무덤 하나를 더 팠다고 했다. 흑판씨는 이 무덤이 깬돌로 벽을 쌓은 구조라는 점에 착목해 이를 할석총割石塚이라 명명하고는 .. 2024. 1. 16.
점패방지진鮎貝房之進 요미가타를 찾아 헤맨 시절 논문이 논문을 낳고, 책이 책을 낳는다. 학문을 직업으로 하는 자들이 논문과 책을 싸질러야 하는 이유다. 한 논문, 한 책 쓴다고 몇 년을 묵히는 놈들, 나는 믿지 않는다. 식민지시대 한국 고고학사 정리는 나로선 2000년 풍납토성을 준비할 때 욕심을 냈다. 그땐 점패방지진 요미가타도 모를 때라, 그거 찾는다며 온사방을 뒤졌다. 연구소 박물관 자료실을 가고 중앙도서관 귀중본 서고를 들락거렸다. 그래도 안 보이더라. 어느날 손보기 선생을 만났더니, 아유가이 운운하시길래 그때서야 아유가이 후사노신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땐 그랬다. 도쿄대학에서 관야정 자료가 정리되기도 전이었고 을축년 대홍수 직후 현장을 둘러본 일본 인류학도 겸차 뭐시기 하는 인간도 약력조차 구하기 힘들었고 곡정제일이며 야수건이며 하는 놈들은.. 2024. 1. 16.
조선총독부 국박 고문서의 추억 2000년 혹은 그 이듬해 무렵이 아니었나 한다. 교토대학 인문학연구소 어떤 교수가 날 찾아왔다. 나를 직접 찾은 것은 아니로대, 잘 아는 국내 어느 지인을 통해 무슨 자료를 보려 했다가 내가 걸린 모양이었다. 다카기 쇼지. (다카기 히로시인데 나는 맨날 쇼지 라 불렀다.)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총독부 시대 고문서를 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그 고문서 상당수가 공개되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때라, 박물관에서도 노란봉투에 담가서 보관만 하던 시절이다. 만나 얘기를 나눠보니 다카기 교수는 교토대 전근 이전 삿포로대학에 재직하면서 도쿄박물관 고문서를 정리했다. 그 조사성과는 공개되었다. 그러면서 다카기가 말하기를 "이빨이 빠졌다. 총독부 문건을 같이 봐야 한다"고 하.. 2024. 1. 16.
현재와는 위치가 많이 다른 부여 능산리 무덤들 구로이타 가쓰미黑板承美 1915년 복명서가 첨부한 능산리 고분군 일대 지도. 고분 배열 양상이 현재랑 많이 다르다. 지금의 봉분 중 일부가 제 위치 아닐 공산이 크다. 그리고 이를 보면 참도 흔적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2017. 1. 16) *** 근자 천지사방 무덤이라는 무덤은 다 파제끼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이것도 파제끼거나 파제낄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한 듯한데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요새는 하도 저런 쪽을 쳐다도 안 봤더니 업데이트가 느리다. 아래는 이런 식으로 현재 배치되어 있는데 1915년 자료를 믿는다면 엉뚱한 무덤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저 참도 흔적은 조사해 봐야 한다. 2024. 1. 16.
윗사람의 예에 대하여 윗사람 중에 나이 어린 사람이 인사를 해도 잘 안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한테는 아무리 나이가 손위라도 인사할 필요가 없다. 인사를 받거나 안받거나 꼬박꼬박 인사하는 것. 그런 것을 우리는 노예의 예절이라 한다. 공자님은 뭐라고 하셨냐 하면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봉건시대의 임금도 신하를 대할 때는 예로써 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유교적 질서인데 기껏 나이 몇살 더 먹었다고 인사를 씹는 인간들은 인사를 해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공자님이 위 글에서 왜 군사신이례를 신사신이충보다 먼저 이야기 했겠는가. 신하의 충성을 받기 위한 전제 조건이 임금이 예로써 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갈량의 출사를 끌어내기 위해 유비는 삼고초려를 하는 것이다. 臣本布衣 躬耕南陽 苟.. 2024. 1. 16.
모스크 돌릴 땐 언제고 유료화 선언한 성소피아성당 이스탄불 소재 아야 소피아(성소피아성당 Hagia Sophia는 무슬림 세숙주의를 채택한 무스파타 케팔 파샤에 의해 박물관 으로 바뀌어 그 지위를 오래 유지하다가 2020년 느닷없이 무슬림 사원인 모스크로 전환됐으니, 무슬림주의자 튀르키예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Recep Tayyip Erdoğan의 결정이었다. 박물관이냐 모스크냐 가장 큰 차이점은 자유로운 관람 여부에 있다. 물론 모스크라 해서 관람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성소로 되돌려진다 함은 그에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는 뜻이다. 박물관은 문화시설이라 그에서 특정한 종교로 무장한 특정한 의식을 집행할 수는 없다. 이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예컨대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이라, 그 섹션 중 하나인 사유의 방은 철저히 관람객 위.. 2024. 1. 16.
수레도 매단 대물大物로 천추태후를 농락한 김치양 강조의 쿠데타를 부르는 빌미가 된 김치양金致陽은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통해 우복야右僕射라는 고위직 타이틀을 뒤집어 쓴 것으로 나오는 인물로, 그 행적이 좋지는 아니해서 고려사에서는 반역叛逆으로 분류해 열전을 배치했다.(권 제127 열전 제40) 이를 보면 그는 동주洞州 사람으로 천추태후千秋太后 황보씨皇甫氏 외족外族이다. 고려시대 동주가 어딘지 정확히 나는 모르겠다만, 변방 아닌가 싶은데, 아무튼 이런 촌놈이 어떻게 해서 출세하게 되었는지는 묘한 측면이 있다. 이에 대해 그의 열전에서는 성격이 간교하고, 일찍이 거짓으로 중 노릇을 하면서 천추궁千秋宮을 출입하며 자못 추한 소문을 일으키니, 성종成宗이 이를 알고 곤장으로 다스려 먼 곳으로 유배 보내었다고 했으니, 이를 김치양 주체로 이해하면 출세하고자 중의 .. 2024. 1. 16.
문난問難 : 성리학의 입도방식 성리학은 선생이 학생에게 강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리학에의 입문은 사서집주로도 충분하다. 독학할 수도 있다. 조선에서의 성리학이 중국인의 전파에 의해 이루어졌는가? 성리학의 이해가 깊어지는 과정이 유학자들 사이의 논쟁을 통해 발전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성리학의 입문과 이해의 심화는 독학과 어려운 부분에 대한 문난으로 이루어진다. 옆에서 아무리 가르쳐 봐야 이해의 정도가 높아지지 않는다. 사실 사서집주의 주자의 주석을 완전히 이해하면 책을 많이 볼 필요도 없다. 그 안에 성리학의 모든 것이 있다. 주자어류나 성리대전, 성학십도도 따로 볼 필요도 없다. 어차피 사서집주의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주자가 남긴 필생의 저작은 사서집주라 할 수 있다. 그 안에 다 있다. 대개 .. 2024. 1. 16.
[지증왕의 아버지를 찾아서] (2) 화랑세기와 상장돈장이 말하는 기보와 습보 여러 번 지적했지만 남당 박창화 필사물 중에는 《화랑세기》만 아니라 그와 뗄 수 없는 세트로 《상장돈장上章敦牂》이라는 화랑세기 등장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는 계보도가 있다는 말을 했다. 현존 화랑세기는 워낙 훼손 결락이 심해 그 원본의 본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 탈락 결락한 상당 부분을 우리는 이 상장돈장을 통해 보충한다. 그렇다면 화랑세기, 그리고 이 상장돈장에는 지금 우리의 관심인 지증왕의 두 아버지 습보習寶와 기보期寶가 어떻게 처리되는가? 나아가 그것이 현재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보이는 습보 기보와는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갈라지는가? 그에 앞서 우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각기 보이는 습보와 기보를 다시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앞서 보았듯이 먼저 삼국사기를 따르면 습보는.. 2024.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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