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1642 의학이, 생명과학이 인문학과 합일할 수 있을까 그런 부분이 가능 하다면 필자에게 남은 15년 남짓의 정신적 생산활동을 이런 쪽에 기울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24. 3. 4. 조선침략에 집안을 날려 먹은 히데요시 히데요시가 말년에 조선을 쳐들어가지 않았다면 일본사 향배는 알 수 없다.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할 때 이에야스를 끼우지 않은 것은 히데요시의 이에야스 정벌 때 이에야스에게 치명적 일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 일격이 참으로 매서운 것으로 히데요시는 어찌어찌하여 이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하기는 했는데 그 이후 죽을 때까지 이에야스 눈치를 봤다. 그 자신 관백으로 올라가 있을 때도 이에야스를 포섭하기 위해 심지어는 자신의 어머니까지 인질을 보내고 친동생을 이혼시켜 이에야스의 정실 부인으로 보낼 정도였고, 조선침략 때도 결국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믿지 못해 이에야스 없이 조선정벌을 감행했다. 히데요시로서는, 조선정벌을 성공했거나, 그게 아니면 조선을 쳐들어가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만 했더라도 아마 집안은 계속 .. 2024. 3. 3. 서울을 보는 또 하나의 프레임 한 가지를 간과했다. 몇 주에 걸쳐 올린 내 글에는 뭔가 모호한 점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서울 사람이 누구일까’라고 화두를 던지며, 서울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봐야 서울의 특수성을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썼다. 그러나 글을 올리고 난 이후, K 단장님께 받은 카톡과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내가 명확하게 나누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말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울 사람으로 생각하는 기준’과 ‘실제 서울에 살고 있으나 심리적으로 소속감을 느끼는지 여부’를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서울 사람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지만, 이 둘을 어떻게 보아야할지도 고민하지 않았다. 서울을 바라보는 방법 전에도 쓴 내용이지만, 서울을 보려면 서울을 구성하는 요소 중, 사람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는.. 2024. 3. 3. 원응국사(圓應國師)가 다녀간 용인 향수사(香水寺) 2008년~2009년 사이 삼성에버랜드 유원지 사업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에버랜드 부지 내 사업을 위해 전대리, 유운리 일대에 대한 조사였는데, 구제발굴조사이기도 했다. 시행처가 대기업이라서 그랬는지 조사 보고서가 2011년 간행되었지만, 조사 내용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조사된 유적 중 관심있는 곳은 바로 ‘향수사지香水寺址’다. 위치를 보면, 처인구 포곡읍 유운리 431번지 일원으로, 삼성화재 모빌리티뮤지엄(자동차박물관) 남쪽에 해당하는데, 지금은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도로가 조성되었다. 향수산 줄기가 남동쪽으로 흘러내린 시루봉 말단 능선 사이에 형성된 좁은 곡부 상단부에 위치한다. 조망권은 남동쪽으로 열렸으며, 전면에는 경안천으로 유입되는 유운천이 바로 인접하여 흐른다. 발굴조사 결과.. 2024. 3. 3. 국뽕의 적장자 고려거란전쟁 이 이야기는 누차 이야기했다. 드라마 제작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시청자가 원하는 바는 종국으로 갈수록 극명하게 갈라진다. 자꾸만 파열음이 빚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까닭은 이때문이다. 억지라는 느낌을 주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드라마 제작진은 영명한 군주, 황제폐하 만세,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애국심 간단히 말해 나치즘 파시즘을 열렬히 찬양하며 발수갈채를 유도하려 한다. 현종은 총통이며 두체다. 히틀러요 무솔리니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국제시장 명랑 인천상륙작계보를 잇는 국뽕의 적통이며 그 반대를 표방하나 실상 더 폭력적인 내셔널리즘의 위대한 성전 1987과 1980과는 적대적으로 야합한다. 하지만 대중은 이미 저에는 신물이 났다. 지난 백년을 울거먹은 진부한 애국심은 관심 없다. 억지로 쥐어짜.. 2024. 3. 3. 불행한 코로나 세대의 대학생을 보며 내 아들놈은 대학 입학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져 계속 온라인 수업만 받고선 1학년을 마치고선 군대를 갔다. 그러니 같은 과 동급생이 누군지도 모른다. 군 생활인들 제대로 했겠는가? 휴가 나온댔다 확진자 발생했다 해서 혹은 다시 확진 폭증 추세라 해서 취소 연기를 밥먹듯이 했으니 말이다. 더구나 이 나라가 오죽 더 극성이었는가 말이다. 내 아들이기 전에 이 땅을 사는 젊은이로서 참말로 안쓰런 세대라 할 만하다. 그런 놈이 계우 군필하고서는 다시 1년을 쉬고는 이번 학기 2학년 1학기로 복학하고선 내일 그 역사적인 첫 대면 강의를 접하는 모양이다. 어느 지방 국립대에 계우 적을 걸어놓기는 하고 마침 그 캠퍼스가 김천 집이랑 가까운 데라 기숙사 생활을 해야기에 바리바리한 짐을 싣고선 어제 일단 김천에 들러 하루를.. 2024. 3. 3. 고대 베트남의 기와와 벽돌 앙코르와트 시대의 베트남 건축자재들이다. 이 지역이 앙코르 제국에 편입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상호 영향 관계는 밀접하다고 안다. 다행히 국내에도 이 시대 동남아 와전을 전공하는 친구가 있다. 하노이 베트남국립역사박물관 소장품이다. 2016년 소개작들을 이곳으로 이첩한다. 2024. 3. 3. 경칩驚蟄 : 2024년 3월 5일 모레가 경칩이다. 驚(경) : 놀라다. 蟄(칩) : 벌레. 한국에서는 흔히 개구리라고 풀지만, 겨울에 땅 속에 웅크리고 있던 모든 벌레를 말한다. 경칩은 원래 '계칩啓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한나라 때 경제景帝 이름이 계啓여서, 이를 피휘하기 위해 경驚을 쓴 것이 그대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이제와서까지 한나라 황제 이름 피휘를 지킬 필요가 있는가? 이제 다시 원래 명칭 계칩啓蟄으로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씨 새기기도 啓가 驚보다 훨씬 수월하다. 일본에서는 진작부터 계칩이라고 한다고 한다. 민속백과사전에 따르면, 예로부터 계칩에는 고로쇠물을 마시고 개구리알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위생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문제가 많으니, 이제는 아프면 개구리알 먹지 말고 운동하고 병원 가길 권장한다. 이상 .. 2024. 3. 3. 사람 약탈, 정복왕조가 사는 법 거란은 지금의 동아시아, 구체로는 지금의 중국 동북지역을 본거지로 삼는 유목 성향이 매우 강한 민족이다. 오랜기간 할거상태를 면치 못하던 이 諸 부족이 마침내 야율아보기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만나면서 통일왕조를 이룩하니, 통일왕조란 곧 유목생활 청산, 정주문화 돌입이라는 뜻이었다. 거란은 정복왕조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거니와, 왕조 초창기는 땅따먹기에 여념이 없어, 주변을 압도하는 군사력으로 제압하기 시작하면서 힘을 더욱 팽창한다. 문제는 이 정복은 어느 시점에는 중단해야 하며, 이때부터 비로소 내실 다지기에 들어가는데, 이 내실을 어떤 방식으로 다지느냐였다. 유목민족이라 하면 약탈을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그 약탈 대상이 무엇이냐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걸 중요하게 고려한다 하지만 내 보기엔.. 2024. 3. 3. 고려한테 발해는 순망치한脣亡齒寒,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야울아보기耶律阿保機에 의한 거란의 공식 건국은 916년이요, 발해는 그로부터 딱 10년 뒤인 926년에 거란에 멸망했다. 거란이 본격 정복국가로 등장하기 이전, 발해 전성시대를 흔히 아래와 같은 지도로 설명하곤 하는데 이 지도는 전반으로 보아 그 중심이야 이론의 여지가 없지마는, 서쪽 변경과 북쪽 변경은 지나치게 비대하게 그렸다. 실상이야 그렇다 치고, 저 신라가 고려로 대체된 다음이 문제인데, 왕건이 쿠데타로 궁예를 타도하고 고려를 건국한 시점은 거란 건국 딱 2년 뒤다. 절도사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려가는 징조임을 이에서도 뚜렷이 볼 수 있거니와, 고려는 거란이 건국하고, 발해가 멸망하는 918년 이래 926년까지 8년간은 거란과 직접 접촉할 일이 거의 없었다. 물론 그 사이에 사신이 오갔다는 흔적은.. 2024. 3. 3. 싸이나를 추억하며 눈이 오면 젤로 괴로운 족속이 조류다. 새들이 먹을 것을 찾기가 곤란해지는데 그래서 이런 날은 보통은 가시덤불로 찾아든다. 눈이 덜 쌓인 데고 벌레 따위 먹이가 될 만 한 데인 까닭이다. 이런 날은 그렇게 꿩을 비롯한 새가 날아들 만 한 저런 데다가 약을 놓아 새들을 유인했으니 콩이나 찔레 열매가 유인용으로 애용됐다. 콩은 송곳 같은 날카로운 도구로 속을 파낸 다음 싸이나를 집어넣는데 찔레열매야 송곳이 필요없어 그 속을 파내고선 같은 방식을 썼다. 싸이나는 독극물이라 그걸 먹은 새는 거개 그 자리서 즉사하게 된다. 내장은 파내서 버렸다. 타작하고 쌓아놓은 짚풀더미서도 대개 그리 했다. 지금은 그게 아니라도 고기가 넘치는 세상이다. 눈이 녹는다. 이틀사흘 괴롭힌 꽃샘 추위도 저리 물러나나 보다. 빛이 든다.. 2024. 3. 3. 막부로 질질 끌다 곧바로 귀주대첩으로 돌진하는 고려거란전쟁 김훈 최질 막부정권이 저 전쟁 여파에 탄생하긴 했지마는 이 드라마가 궁극으로 내세우고자 하는 귀주대첩과는 하등 원인 결과 관계에 있지 않다. 물론 이해는 가지 아니하진 않으니 이 드라마는 원작자가 하는 말도 그렇고 강감찬에 가린 감은 없지 아니하나 시종해서 실상 주인공으로 등판시킨 이는 현종 왕순이다. 고려 중흥의 발판을 마련한 위대한 군주로서의 위상정립이다. 이를 완성하고자 투톱을 내세웠으니 그 한 축이 실은 강감찬이다. 하지만 그 의도가 틀어지고 걍감찬 주축으로 흐른 까닭은 배우 역량에서 비롯한다. 역량에서 현종은 최수종이 덮어쓴 강감찬에 잽이 되지 아니한다. 현종 역을 맡은 친구가 어찌 최수종을 상대하겠는가? 드라마 전개가 막판에 이상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현종 중심으로 보면 막부.. 2024. 3. 3. [제1차 고려거란전쟁] (9) 죽지 마라 기도하는 성종 성종이 어떤 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해주海州로 행차한 일이 있다. 이때도 서희가 호종했으니 그에서 성종이 서희가 머무르는 막사로 들어가서 한 잔 빨자 한 일이 있다. 하지만 서희는 한사코 임금을 막아선다. “신하의 막사는 임금이 머무를 곳이 못됩니다”라는 논리였다. 또 임금이 한 잔 따라 주려 하니 이것도 막는다. 법도에 맞지 않다는 뜻에서다. 이에 할 수 없이 성종은 막사 밖에 앉아 어주御酒를 내오게 하여 함께 마시는 일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보아 서희는 확실히 꼰대다. 그냥 넘겨도 될 일도 그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또 그 무렵에 공빈령供賓令이라는 직책에 있던 정우현鄭又玄이 봉사를 올려 당시 정치에 관한 7가지 일을 논한 일이 있었는데, 임금이 기분 나쁜 내용이 꽤 들어있었던 듯하다... 2024. 3. 2. [제1차 고려거란전쟁] (8) 낙타 10마리, 양 천 마리를 끌고 귀환한 서희 제1차 고려거란전쟁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서희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의 절대하는 후견인 성종을 먼저 보낸 서희 역시 목종穆宗 1년, 998년 음력 7월에 죽으니 향년 쉰일곱이었다. 그 시대로는 그런대로 장수한 편이지만, 후배 강감찬이 83세인가 살다 간 것을 보면 너무 일찍 갔다. 그는 70세가 되지 않았으므로 죽을 때 현직이었다. 태보太保이자 내사령內史令이었다. 아버지 역시 한가락한 재상 서필徐弼이라, 이런 금수저 집안 자식으로 18세에 갑과甲科 장원급제한 힘 중 하나가 이것이 백 아닐까 하는데 아무튼 그는 승승장구했고 전쟁영웅이었다. 성종이 서경西京에 행차했을 때 영명사永明寺로 몰래 빠져나가 바람 좀 쐬자했다가 서희한테 개쫑크 당한 일도 있고 계사년993 전쟁 때는 앞서 봤듯이 국.. 2024. 3. 2. [제1차 고려거란전쟁] (7) 宋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거란에는 혼인까지 청하는 고려 나는 앞서 실리외교? 이딴 말 함부로 하지 말라 했다. 모든 국제관계 외교관계는 실리를 추구한다. 고려가 실리외교를 추구했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하나마나한 소리인 까닭이다. 고려가 송과 거란 사이에서 실리를 추구한다? 보자 이 관계가 어찌 되는지. 정식 국교를 성립하고, 거란을 종주국으로 섬기기로 한 고려는 후속 조치에 착수한다. 이를 위해 위선 전쟁이 있은 이듬해인 994년 4월에는 시중侍中 박양유朴良柔가 표表를 들고서는 거란으로 가서 정삭正朔을 시행하였음을 아뢰고, 사로잡아 간 백성들을 돌려달라고 간청한다. 정삭이란 간단히 말해 우리 이제부터 거란의 시간을 쓰기로 했다는 말이다. 외교는 항상 주는 것이 있음 받아내야 한다. 이 경우에도 고려는 그 반대급부를 잊지 않았다. 포로로 잡아간 우리.. 2024. 3. 2. 망향휴게소 여명의 동상 우리는 줄기차게 전진한다. 초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위대한 사명감 속에서 보람찬 내일로 향하여 전진하는 우리들의 슬기와 힘을 집결하여, 새 역사를 이룩하려는 오늘의 단결 오늘을 불사르는 우리들의 열중 더욱 잘살기를 다짐하는 우리들이 의지 날마다 조국의 모습은 새로워지고 아침마다 더욱 찬란한 태양이 조국을 비쳐준다. 오늘 흘린 우리들의 땀 한 방울이 내일이면 -백배의 결실을 가져올 것을 확신하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영광된 조국의 영원한 번영을 다짐하며 오늘의 축복속에서 영롱한 무지개가 뻗쳐있는 보람찬 내일로 우리들은 줄기차게 전진한다. 조각 강태성 글 박목월 글씨 서희환 1977년 3월 일 문화공보부 한국도로공사 세움 ***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망향휴게소 이 조각은 무심히 넘기다가 오늘에서야 명문을 보고선.. 2024. 3. 2. [1차 고려거란전쟁] (6) 압록강이 경계로 확정되고 담판 결과에 따라 이제 고려 거란은 새로운 관계에 접어들었다. 그 이전 고려는 명목상 종주국을 宋을 삼았지만, 협약에 따라 이제 종주국을 거란으로 바꿔야 했다. 대신 고려는 여진이 점거한 청청강~압록강 유역 땅을 할양받았다. 두 군대가 철군한지 몇 달이 지난 고려 성종成宗 13년 2월, 거란에서는 저번 특사 겸 고려정벌군 총사령관 소손녕蕭遜寧 명의로 고려 조정으로 편지 한 통을 날린다. “근래에 황제의 명[宣命]을 받들기를, ‘다만 고려 신의와 호의로써 일찍부터 통교通交하였을 뿐 아니라 국토도 서로 맞닿아있노라. 비록 작은 나라로써 큰 나라를 섬기는 데에 반드시 규범과 의례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시작을 잘 궁구하여 마지막을 잘 맺는[原始要終] 길은 모름지기 〈우호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데에 있다 하.. 2024. 3. 2. 1933년 천연기념물 이전의 천연기념물 한국문화재사 흐름을 간취하면 1916년(대정大正 5)에 공포된 ‘고적 및 유물 보존규칙’과 1933년(소화昭和 8) 8월 제령 제6호로 공포된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이 획기를 이룬다. 이 두 차례 법 정비를 통해 우리가 아는 문화재가 비로소 탄생하는 까닭이며, 저를 통해 마련한 골격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저를 통해 과연 무엇이 문화재인지 개념과 실체가 윤곽을 드러냈다. 그 이전에는 무엇이 문화재인지 그 어떤 개념도 없었고 범주도 없었다. 특히 1933년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은 명칭이 시사하듯이 무엇이 문화재인지를 확실히 규정했다. 물론 문화재라는 말은 저때도 아주 간혹 보이기는 하는데, 훗날 저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착한다. 문제는 명승과 천연.. 2024. 3. 2. Western Han-era Gold Discs [금병金餠] 금병金餠 서안시西安市 미앙구未央區 당가향潭家鄕 동쪽 10리 포촌鋪村 출토. 섬서역사박물관陕西历史博物馆 소장 gold discs, western han dynasty(206 bc~8 ad), excavated from dongshilipu village, tanjia town, weiyang district, xian city, china. Housed at Shaanxi History Museum 병금餠金이라고도 한다. 도합 219매枚가 출토됐다. 각 매당 무게는 227.6~254.6g, 총중량 54116.1g이다. 서한시대 금병 출토량 중 단일 유적으로 최대다. 금병 대부분에는 문자나 부호, 혹은 인장 등이 확인된다. 이들이 화폐로 유통된 것은 아니며 단순히 선물 같은 걸로 활용됐다. (이상은 섬서성박.. 2024. 3. 2. 未央의 경우, 한대漢代 유물 vs. 한대에 해당하는 유물 '未央미앙'이라는 글자를 적은 그릇이다. 출토지는 남월국南越國 궁서유지宮署遺址 남월국 문화층이다. 서안 혹은 낙양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유물이 발견된다 해서 그것을 한대漢代 유적 혹은 유물이라 설명하는 도식은 재앙이다. 그래서 저 미앙이라는 글자가 적힌 유물이 출토한다 해서, 그 만든 시기가 한대漢代에 해당한다 해서, 그 양식이나 제조기법이 낙양이나 장안에서 만든 한대의 그것과 똑같다 해서, 그래서 저런 유물을 출토하는 데가 漢나라 영역인가? 아니면 장안성 미앙궁未央宮 분관이란 말인가? 내가 늘 말하듯이 한대漢代 유적 유물과 한대에 해당하는 시기에 만든 유적 유물은 반딧불과 번갯불 차이만큼 크다. 이는 고고학 기본 중의 기본인데 둘을 혼동하는 망말이 다름 아닌 한국고고학에 횡행한다. 장안이나 낙양에서 보.. 2024. 3. 2. 국립이 국립을 억압하고, 국립이 공립을 탄압하며, 공립이 공립을 말살하는 시스템은 혁파해야(1) 1. 국립을 억압하는 국립 국립이 국립을 억압한다 함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다른 부처 국립박물관을 짓누른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국립이 공립을 탄압한다 함은 국가박물관이 지자체가 운영 주체인 공립박물관을 탄압한다는 뜻이며, 공립이 공립을 말살한다 함은 같은 지자체에서 공립이 다른 공립박물관을 억제 견제한다는 뜻이다. 무슨 말인가? 첫째 국립이 국립을 억압한다 함은 절대 근거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약칭 박물관미술관법 혹은 박미법)에서 비롯하는데, 이 법이 실은 박물관미술관 진흥이 아니라 그 억압법임은 당장 그 제5조의3(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 시행계획 등)을 보면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및 지방자치단체 장이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 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할 때는 시행계획에 따른 추진실적을 문.. 2024. 3. 2. 이전 1 ··· 336 337 338 339 340 341 342 ··· 103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