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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眞武)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아신왕본기 : 2년(393) 봄 정월에 동명묘(東明廟)에 배알했다. 또 남쪽 제단[南壇]에서 천지에 제사지냈다. 진무(眞武)를 좌장(左將)으로 삼고 군사 업무를 맡겼다. 무(武)는 왕의 외삼촌으로 침착하고 굳세며 큰 지략이 있어 당시 사람들이 복종했다. 가을 8월에 왕이 무(武)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관미성(關彌城)은 우리 북쪽 변경의 요해지(要害地)이다. 지금 고구려의 소유가 되었으니 이는 과인(寡人)이 분하고 애석하게 여기는 바이다. 경은 마땅히 마음을 써서 설욕하라.” 드디어 병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칠 것을 도모했다. 무(武)가 몸소 사졸보다 앞장서서 화살과 돌을 무릅쓰면서 석현성(石峴城) 등 다섯 성을 회복하려고 먼저 관미성을 포위하..
두지(豆知)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전지왕본기 : 3년(387) 봄 정월에 진가모(眞嘉謨)를 달솔(達率)로 삼고 두지(豆知)를 은솔(恩率)로 삼았다.
진가모(眞嘉謨) 삼국사기 권 제18(고구려본기 제6) 고국양왕본기 : 7년(390) 가을 9월에 백제가 달솔(達率) 진가모(眞嘉謨)를 보내 도압성(都押城)을 쳐부수고 200명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전지왕본기 : 3년(387) 봄 정월에 진가모(眞嘉謨)를 달솔(達率)로 삼고 두지(豆知)를 은솔(恩率)로 삼았다. 6년(390) 9월에 왕이 달솔 진가모에게 명해 고구려를 쳐 도곤성(都坤城)을 함락시키고 200명을 사로잡았다. 왕이 진가모(眞嘉謨)를 병관좌평(兵官佐平)으로 삼았다.
분서왕(汾西王) 삼국사기 권 제24(백제본기 제2) 분서왕본기 : 분서왕(汾西王)은 책계왕 맏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어질었으며 거동과 풍채가 영특하고 빼어났으므로, 왕이 사랑하여 곁[左右]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왕이 죽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10월에 크게 사면했다. 2년(299) 봄 정월에 동명묘(東明廟)에 배알하였다. 5년(302) 여름 4월에 살별[彗星]이 낮에 나타났다. 7년(304) 봄 2월에 몰래 군사를 보내 낙랑(樂浪)의 서쪽 현(縣)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겨울 10월에 왕은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살해되었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10대 분서왕(汾西王)은 책계(責稽) 아들이다. 무오년에 즉위해 6년을 다스렸다. 삼국사기 권 제24(백제본기 제2) 계왕본기 즉위년 : 계왕(契王)은 ..
비류(沸流)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즉위년 :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여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 두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은 비류(沸流)라 하였고, 둘째 아들은 온조(溫祚)라 하였다.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백성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들은] 드디어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가 살만한 곳을 바라보았다. 비류가 바닷가에 살고자 하니 열 명의 신하가 간하였다. “이 강 남쪽의 땅은 북쪽으로는 한수(漢水)를 띠처럼 띠고 있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을 의지하였으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벌판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
비류왕(比流王) 삼국사기 권 제24(백제본기 제2) 비류왕본기 : 비류왕(比流王)은 구수왕 둘째 아들이다. 성품이 너그럽고 인자하여 남을 사랑하였고 또 힘이 세어 활을 잘 쏘았다. 오랫동안 백성들 사이[民間]에 있었지만 명성은 널리 퍼졌다. 분서왕이 죽자[終] 비록 아들이 있었으나 모두 어려서 왕위에 오를 수 없었다. 이로써 신하와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5년(308) 봄 정월 초하루 병자에 일식이 있었다. 9년(312) 봄 2월에 사신을 보내 순행하면서 백성의 질병과 고통을 위문하고, 홀아비, 홀어미, 부모없는 어린 아이, 자식없는 늙은 이[鰥寡孤獨]로서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자에게 곡식을 한 사람당 세 섬을 주었다. 여름 4월에 동명묘(東明廟)에 배알하였다. 해구(解仇)를 병관좌평(兵官佐平)으로 삼았..
근구수왕(近仇首王) 삼국사기 권 제24(백제본기 제2) 근구수왕본기 : 근구수왕(近仇首王)은 근초고왕 아들이다. 이에 앞서 고구려 국강왕(國岡王) 사유(斯由)가 친히 쳐들어 왔다. 근초고왕이 태자를 보내 이를 막게 하였다. [태자가] 반걸양(半乞壤)에 이르러 장차 싸우려 하였다. 고구려 사람 사기(斯紀)는 본래 백제 사람이었는데 잘못하여 왕이 쓰는 말[國馬]의 발굽을 상하게 하였다. [그는] 죄를 받을까 두려워서 고구려로 도망하였다가 이때 돌아와 태자에게 말하였다. “저쪽 군사가 비록 많기는 하나 모두 숫자만을 채운 허위의 군사[疑兵]일 뿐입니다. 날래고 용감한 자들은 오직 붉은 깃발의 부대뿐입니다. 만일 먼저 이를 깨뜨리면 그 나머지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 태자가 그 말을 좇아 나아가 쳐서 크게 이기고는..
아이부인(阿尒夫人) 삼국사기 권 제24(백제본기 제2) 침류왕본기 즉위년 : 침류왕(枕流王)은 근구수왕의 맏아들이요 어머니는 아이부인(阿尒夫人)이다. 아버지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