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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大物 이야기] 거근巨根의 창시자 노애嫪毐 (3) 김치양의 대선배 이제나저네나 죽기만 기다린 아버지 소양왕이 재위 56년 만에 죽자 그 아들로 다음 보위를 이을 재목으로 점지된 태자 안국군이 즉위했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다 기쁨에 계워 그랬는지, 그는 재위 불과 1년 만에 죽고마니, 이를 효문왕孝文王이라 한다. 다음 보위는 당연히 자초 몫이었다. 안국군 아들로 볼품 없다 해서 조나라에 인질로 던져졌지만, 장사꾼 여불위가 장래를 보고 대투자를 감행한 안국군 아들 그 자초子楚 말이다. 죽은 뒤 그를 높여 장양왕莊襄王이라 하니, 그가 바로 시황제 아버지다. 자초는 왕이 되고 나서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해준 화양왕후를 화양태후로 높이는 한편, 그를 진짜로 낳아준 엄마 하희夏姬는 하태후라 해서 높였다. 다음으로 자초는 기원전 249년, 즉위와 더불어 자신을 이 자리에까지 오게 한.. 2024. 1. 19.
[국내 박물관 현황과 연혁] 드라마 열풍이 만든 서울 강서구립 허준박물관 1. 연혁 1999년 10. 허준(구암)기념관 건립계획 수립 2000년 05.31 건립 부지매입 2001년 12.15 설계경기 공고 2002년 04. 설계경기 작품심사 및 당선작 선정 05.22 설계용역계약 12. 설계용역 납품 및 준공검사 2003년 02. 시공업체 선정 04.10 공사착공 2004년 11.20 건축준공 2005년 03.23 개관 04.29 개관기념 세미나 "한의학으로 본 감기" 05.12 「1종 전문박물관」등록(제13호) 06.30 개관 100일 기념행사 10.08 10만번째 관람객 입장 11.23 서울사랑시민상 '건축상' 수상 2006년 01.17 보물 2점 지정 03.23 개관1주년 행사 특별전 : 지리산 함양 약초전 학술세미나 : 「동의보감」의 역사적 철학적 고찰 07.27~28.. 2024. 1. 19.
영감님들과 젊은이들의 분업 공부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영감님들은 괜히 논문 한 두 편 더 쓴다고 젊은이들 일거리 뺏지 말고, 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데 몰두하시기 바란다. 최신 기술로 프론티어에서 누비는 작업은 영감님들에게는 맞지 않다. 자신의 오랜 경험으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작업해야 하는데 필자 생각으로는 이것도 쉽지 않다. 젊었을 때 뭐라도 자기 분야에서 충분한 전문적인 경험을 쌓는 데 게을리한 사람들은 늘그막에 큰 그린 그림그린다고 해봐야 뭐가 나올 리 없다. 차라리 그런 경우에는 놀아라. 이미 큰 그림 그리기도 늦었고 뭐 한다고 돌아다녀봐야 방해만 된다. 반면에 젊은분들의 경우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큰 그림 그린다고 이리 저리 섭렵하고 다니는 건 필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젊었을 때는 한가지를 깊게 파고.. 2024. 1. 19.
조선 막사발은 어디에서 왔는가 흔히 조선 막사발을 두고 무위 무념의 소산, 인위가 극소화된 자연적 미의 소산 등등으로 찬상하는 경우를 보는데, 무위 무념 자연적미, 인공의 극소화 이런 것이 조선중기 한국사에서 나올 수 있는 사상이 맞기는 맞는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우리나라 사상의 어느 구석에 무위 무념 자연, 인공미의 극소화 같은 흐름이 있었다는 건가? 이러한 흐름은 유교적 흐름이라기 보다는 외려 도교나 불교적 사상의 영향에 더 가깝다고 보는데 알다시피 조선은 여말선초에 불교를 이미 작살을 내놔서 이런 사상이 똬리를 틀고 나올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본다. 막사발이 나오던 시기. 흔히 이야기 하는 바 무위 무념 자연, 인공의 극소화 등등 막사발과 관련된 아니. 그 그릇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좋다. 그 그릇의 제작과 직접 관련.. 2024. 1. 19.
당신은 확신할 수 있는가 이 막사발의 미가 16세기 후반 조선의 미에서 나왔다는 것을-. 필자는 이 막사발이 조선의 미가 아니라는 말을 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막사발이 한국의 자랑거리가 됐건 뭐건 이걸 적어도 한국에서 찬상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국보라는 것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한국사 전체 흐름 안에 막사발을 안착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특히 당시의 시대적 흐름 어떤 부분에서 이런 그릇이 나올 수 있는지 이걸 규명해서 이 그릇 배경 설명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이런 주장이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는 한, 물론 필자가 이런 주장한다해서 뭐 하나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필자는 이를 한국미술사의 일부로 인정할 수 없다. 2024. 1. 19.
조선의 사발과 센노 리큐千利休 조선 사발이 일본에서 톱스타가 된 데는 센노 리큐 [千利休, 1522~1591)의 와비차侘び茶 사상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무슨 말인고 하면, 스토리의 완결성 측면에서 본다면, 조선사발은 한국사에서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진 반면 같은 사발을 일본에 가져다 두면 센노리큐의 사상과 연결되어 일본의 후기 도자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조선사발은 한국의 미인가 일본의 미인가. 조선사발은 한국미술에서 다루게 되면 어째서 앞뒤 제대로 연결된 스토리가 없는가. 왜 그런 그릇이 나온 건지 설명할 수 있는 문헌 자료 하나 없는가. 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조선사발을 선호한 사상적 배경이 스토리를 가지고 남아 있다. 이렇다면, 조선사발은 한국미술사인가, 일본미술사인가. 필자가 무식해서.. 2024. 1. 19.
대중이 만든 사무라이 정신 일본을 대표하는 상징물 중의 하나가 사무라이와 그 정신이 아닐까. 그래서 스타워즈에도 사무라이 장수를 벤치마킹한 다스베이더가 뛰어 다니고, 동경국립박물관에는 전시실 좋은 구석에 니뽄도가 줄줄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사무라이 이미지는 사실 많은 부분이 에도시대에 창작되었다. 에도시대 이전, 가마쿠라, 무로마치, 그리고 전국시대 무장은 우리가 아는 사무라이들과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헤이케 모노가타리와 태평기, 그리고 전국시대 군담소설류를 보면 그 차이가 많이 나타나는데 우선 겐페이 합전시대나 태평기 시대 무사들은 어느 나라나 있을 것 같은 무장으로 용감하고 신불의 가호를 비는 무장이지만, 일본 무사 특유의 분위기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일본 사무라이 특성의 많은 부분은 오히려 .. 2024. 1. 19.
제주도에서 잡혀 해체당한 100년 전 고래 어떤 누리집에서 본 일제강점기 엽서 사진. 제주 서귀포 '사업장'에서 고래를 해체하는 모습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뭐 제주도가 최근 들어 남방돌고래니 뭐니 해서 유명하지만, 이 사진은 그 전부터도 고래가 제주 바다를 적잖이 지나곤 했음을 보여준다. 저게 무슨 고래인지 모르겠는데, 배에 줄무늬가 있는 걸 보면 흰긴수염고래 뭐 그런 종류이려나? 이건 여담인데, 제주의 바다는 고을, 마을마다 경계가 나뉘어있었다. 여기는 우리 바다 저기는 너네 바다 이런 식이었는데, 재밌는건 서로 바다를 '덜' 가지려고 싸웠단다. 왜냐? 표류민이나 고래가 바닷가에 떠밀려오면 어느 쪽 구역이냐에 따라 그 책임이 그 마을에 떠넘겨졌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간혹 가다 죽은 고래가 떠밀려오면 저렇게 해체쇼를 벌이기는커녕 도로 밀어내버리는.. 2024. 1. 19.
AI가 구현한 추몽 포르쉐는 龍이 아닌 dragon "(왕께서) 세상의 자리(왕위)를 즐기지 않으시니 (하늘이) 黃龍을 보내어 내려와서 왕을 맞이하였다. 왕께서는 홀본忽本 동쪽 언덕에서 용 머리를 발로 딛고 하늘로 올라가셨다[不樂世位, 因遣黃龍來下迎王, 王於忽本東[岡], 履龍首昇天]." - 중에서 *** Editor's Note *** 요새 강군이 AI 그림에 재미를 붙인 듯해서 저 명령어를 넣어 AI에 관련 그림을 주문해 보라 했더니 저리 나온댄다. 우리가 원하는 모습과는 좀 거리가 멀어 기대를 충족한다 하기는 힘들지만 이에서 우리는 의외의 면을 본다. 저 AI한테 입력된 용은 龍이 아니라 dragon이다. 이는 내가 항용 지적하듯이 龍과 dragon은 전연 별개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아주 간단히 정리하면 동아시아 龍은 이른바 선신善神 계열이고, 가뭄에.. 2024. 1. 18.
저출산 시대, 결혼 자체가 폭파 대상 아닌가? 워낙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니, 올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관련 공약이랍시며 내세우며 이것으로 유권자 표심을 잡겠다 난리인 모양이라, 하긴 뭐 이 문제가 워낙에나 심각한가? 듣자니 여당에서는 아빠 출산휴가 1개월을 준다 하니, 야권에서는 신혼 부부한테 1억원을 대출한다 하고, 더 나아가 육아휴직을 자동으로 발동케 하고 인구부를 신설하겠다 하는가 하면, 육아휴직 급여 상한을 150만에서 210만원으로 올린다 하거나, 8∼17세 자녀당 월 20만원을 주겠다 하는 모양이라 비단 총선용이 아니라 해도 나는 이런 모든 저출산 대책이라는 것들이 하나를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 젊은 세대가 출산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다른 더 큰 이유가 도사리는가? 물론 이것이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진부한 논란.. 2024. 1. 18.
에도시대 사무라이의 성誠과 경敬 일본 막말에는 신센구미[新選組, 신선조]라는 무사집단이 있다. 이들의 상징으로 나오는 것 중에 성이라는 글자가 쓰인 깃발이 있다. 일본 우에노 공원에 가면 왠 뚱뚱한 아저씨가 강아지를 한 마리 데리고 있는 동상이 있는데,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다. 일본 메이지유신의 삼걸이라 불리는 인물인데 이 동상을 보면 그 동상에는 위와 같은 사이고 다카모리 글씨가 써 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일본의 사무라이, 부시武士들은 에도시대를 거치면서 성리학의 윤리철학에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다. 위에 예를 든 "성"과 "경"은 모두 성리학 심성론의 중심적 개념이다. 인격의 수련에 있어 중심에 놓아야하는 행동 규범이고, 또 한시라도 살아가는 데 몸에서 떼어 놓아서는 안되는 신조이기도 하다. "성"과 "경"은 성리학이 없.. 2024. 1. 18.
문화재청장으로 직행한 중앙일보 기자 정재숙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8월 30일, 교육장관에 유은혜, 국방장관에 정경두, 여성장관에 진선미를 내정하는 중폭 개각을 단행하면서 차관급 인사도 같은날 아울러 했으니 방사청장에 왕정홍, 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양향자를 임명하면서 아울러 문화재청장에는 정재숙을 앉혔다. 촛불정국에서 거져먹기로 권력을 가져가면서 개막한 문재인 시대 첫 문화재청장은 문화재관리국 시대 이래 문화재청에서 행정통으로 잔뼈가 굵은 김종진金鍾陳이었으니, 실은 이 초대 문화재청장 인사가 뜻밖이라는 말이 있었다. 저 자리를 두고 친 특정 종교 성향 두 교수가 열심히 경쟁한다는 후문이 있었고, 그에 이럴 때마다 언제나 특정 종단이 개입했으니, 그런 이전투구에 느닷없이 3등으로 추천되었다는 김종진이 청장을 먹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런 김종진 시대.. 2024. 1. 18.
꼴랑 사개월 놀고 취직한 춘배 김충배가 팔자 없는 백수생활 청산하고 서울 강서구립 허준박물관장으로 갔다. 나보다 딱 한 달 먼저 작년 9월에 백수가 되었으니 같은 백수라고 맞먹는 꼴이 구토났지만 참았다. 어디 자발백수에 강요백수가 어깨를 나란히 한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준비된 백수가 아니었기에 맘이 편했겠는가? 아무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 저 자리를 찾아갔으니 잘된 일이다. 기초자치단체 박물관 사정이야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리라 믿거니와 그래도 잘해내리라 믿는다. 왜? 춘배잖아? 다만 몇 가지 신신당부를 했으니 그건 먼 훗날 기회가 닿으면 이야기하려 한다. 이로써 은옥이는 불과 사개월만에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저 온옥은 임의단체라 춘배가 명함용으로 판 페이퍼컴퍼니다. 내가 하도 그 부소장이라 했더니 진짜로 내가 그.. 2024. 1. 18.
왜 신라 무덤 유물이 압도적인가 도굴꾼 때를 타지 않은 무령왕릉은 백제 왕과 왕비가 죽어 어떤 방식 혹은 껴묻거리와 더불어 장송葬送했는지를 적나라히 보여주었으니, 그것이 출토한 유물은 왕과 왕비 합장릉이라 해서 적지 않은 수량을 자랑하지만, 문제는 동시대 신라 무덤에 견주면 그 수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 무령왕 부부릉 출토품이 많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이것도 상대성에 지나지 아니해서 동시대 혹은 그 어간 아래위로 위치하는 동시대 황남대총이나 천마총을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를 빚게 된다. 왜 이런 부조화가 빚어질까? 실로 단순한 이 질문을 나는 고고학도가 던지는 모습을 못 봤다. 왜일까? 나는 그게 궁금해 죽겠는데 저들은 왜 넋놓고 딴 데만 파고 있을까? *** previous artic.. 2024. 1. 18.
[2023 대만풍경](7)국립고궁박물원 남원南院 ② <조선왕조와 청 궁정예술의 만남>과 <경태람(景泰藍)>특별전 from 장남원 고궁박물원 남부 분원 전시도 만만치 않았다. 그 중 두 가지는 기억할 만한데 하나는 전시로 명나라 경태년간에 급격히 발달하게 되는 과정과 훗날 청대까지 복고하고 개발하면서 중국 최상의 금속공예로서 자리한 소위 칠보기법(Cloisonné)에 관한 것이었다. 공예분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놓치기 아까운 전시다. 내내 황제들을 욕(?)하면서 봤다. 북원에서 열린 도자기 법랑채 기법도 실은 황실 공예로서 발달한 이 금속기법과 밀접한 연원관계에 있다. 當期展覽 - 國立故宮博物院南部院區特別展覽 謎樣景泰藍 景泰藍是指在金屬胎上以金屬絲勾勒圖樣,再反覆填燒琺瑯釉,打磨而成的作品。此項工藝又稱掐絲琺瑯,於元代(1271-1368)自拜占庭經伊斯蘭地區,傳入中國。十七世紀south.npm.gov.tw 또 하나는 전시였다. 사행이나 .. 2024. 1. 18.
추모왕의 승천과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추모왕이) 세속의 왕위를 달갑게 여기지 않으시니 (하늘이) 黃龍을 보내어 내려와서 왕을 맞이하였다. (이에) 왕은 홀본忽本 동쪽 언덕에서 용 머리를 발로 딛고서는 하늘로 올라가셨다. [不樂世位, 因遣黃龍來下迎王, 王於忽本東[岡], 履龍首昇天]"광개토왕비가 정리한 추모왕 죽음이다. 왜 황룡인가?왜 '리용수履龍首'인가? 이거 그림으로 누가 한 번 그려봐라. 어떤 모습 나오는지?보여?금동신발 신고 신선 되어 하늘을 나르는 추모왕 모습 보여?금동신발....이거 도교 말고는 접근할 방법이 없다. 금동신발과 환두대도 모두 도교 신학의 발상이다. 한국문화사 구명에 도교는 불교보다 중요하다. 한데 도교를 아는 놈이 없네....(2017. 1. 18) *** 나주 정촌고분 백제 금동신발이 저 추모왕 승천 이야기를 .. 2024. 1. 18.
《나만 못본 구라파 유람기》 (번외) 문재인 정부 문화재청장과 국립중앙박물관장 인선 유럽 체류 한달간 나는 고국과는 절연하다시피 했으니 마누라한테도 며칠마다 나 여기 있다고 보내는 카톡 메시지가 전부였다. 그래도 내내 나를 괴롭힌 것이 있다면 단연 저 인사였다. 박근혜 탄핵정국에 느닷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이 그랬듯이 문화 부분 인사는 제일로 더딘 편이었다. 7월 14일 내가 파리로 떠날 때까지만 해도 문화재 관련 투 톱인 저 두 자리 후임자를 임명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문화재청장 나선화는 역대 최장수 문화재청장이라는 기록을 엿가락 늘이듯 나날이 쌓아갔다. 이제나저제나 했지만, 오늘내일이라 했지만, 공식 발표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났다. 그러다가 마침내 파리 체류 사흘만인 17일, 국립중앙박물관장에 배기동 한양대 교수가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 2024. 1. 18.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의 大一大万大吉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1560~1600)라는 사람이 있다. 히데요시의 심복으로 그가 죽은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대항하여 세키가하라 싸움에서 서편의 주동자로 싸우다 패하여 멸망한 사람인데 이 사람 가문이 위와 같다. 무늬로 만들기 마련인 일본의 가문 문장과 달리 이 사람은 한자로 가문을 만들어 썼다는데, 大一大万大吉로 그 풀이는 all for one, one for all 하면 크게 길할 것이다. 라는 뜻이라는 게 일반적이다. 한문 문장의 수준이 당시 전국시대 무장의 한자 인식 수준을 이야기 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선 중국 바이두에서는 이렇게 뜻으로 풀어놨다. 另一种说法是,“大一大万大吉”的六字纹的含义是:“一”读作“かつ”,与“胜”字谐音;“万”(よろず)代表着万年的繁荣;而“吉”是吉利的文字。在这三个字前.. 2024. 1. 18.
기자릉 가짜라 했다가 쫑크 먹은 연경재 성해응 19세기의 문인 홍길주가 남긴 글 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어디에서 읽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니었나 싶다). 고증학에 밝은 연경재 성해응이 어느 날 어떤 자리에서 "평양의 이른바 기자릉은 가짜일세."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이양천이란 이가 발끈하며 가로되, "우리나라에는 오직 기자 한 분만이 계시거늘, 그대는 이제 그마저 잃어버리게 하려 하는가? 대체 무슨 심산인가?" 성해응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 저 기자릉은 없어진지 오래라고 한다. 북쪽에서 50년대 후반쯤 발굴(?)을 했더니 벽돌무더기만 나오더란다. 그래서 그 김에 없애버렸다고. 2024. 1. 18.
오랜만에 이규보 선생 한 손에 술잔 들고 한 손에 붓을 쥐고 코 끝에 향기 나듯 붓 끝에 시가 절로 2024. 1. 18.
서랍속에만 있었던 토황소격문? 토황소격문은 명문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격문이 정말 격문으로 쓰이긴 했는지는 의문이 있다. 황소의 난 당시 최치원은 고병의 막하에 있었는데 고병은 황소의 난 당시, 필자의 기억으로는 조정의 강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도 거병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토황소격문을 날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왜냐. 고병은 황소 잡으러 출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 최치원은 자신의 저작이 당서 예문지에 실릴 정도로 당에서도 높게 인정받던 문인이라 할수 있는데, 그건 그거고. 과연 토황소격문이 정말 격문으로 쓰였느냐. 이 격문은 최치원이 초를 잡아 두고 고병이 농땡이 치는 통에 정작 격문은 날리지도 못하고 오히려 최치원의 서랍 속에 있다가 문인들 구전으로나 알려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 그리고. 필자가 알기로.. 2024.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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