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9908 3천미터 같은 393미터 호암산행 한강 이남 서울 지도를 펼쳐보면 그 북쪽 중앙 지점을 정좌하는 북한산 견주어 남한산은 덩치나 높이, 또 무엇보다 위치로 로 볼 적에 실은 관악산이어야 하지만, 어찌하여 남쪽도 아닌 동산東山이라 불러야 할 그 남한산에 빼앗겼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어니와, 이 관악산 줄기가 서쪽으로 흘러내린 끄터머리에 툭 튀어나왔다가 산으로의 기운을 소멸하는 지점이 호암산虎巖山이라, 해발이라 해 봐야 겨우 393미터에 지나지 않거니와, 해발 천미터 넘는 산이 사방으로 즐비한 소백산 기슭 출신인 나 같은 사람한테야 안마당에 지나지 않겠지만 문제는 그리 온산을 주름잡던 시절은 내가 어렸지만 팔팔해서 산을 날아다녔지만, 지금은 심신이 다 찌그러진 서울 사람이 되어 있다는 데 있을 테니, 저 산이 왜 호랑이[虎]는 차치하고 암산巖.. 2023. 6. 2. 대학로 오실 때면 들리시길 서울의대 해부학교실 77년사 - 해부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기간 2023. 6. 16 ~ 11. 18 장소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박물관 특별전시실 77년 교실사라는 것은 해방된지 77년 되었다는 뜻입니다. 45년 당시 서울의대에서 해방 이전 이 대학 교수였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그 후 어떻게 변해갔는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대학로 나들이 때 들리세요. 2023. 6. 1. 껴묻거리만 넣은 6세기 신라 무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아래와 같은 발굴 성과를 공개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동국대와 공동 발굴한 현장설명회 개최 - 쪽샘지구에서 최초 확인된 6세기 돌방무덤·단독 부장곽 공개 / 6.2.(금) 오후 3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황인호)는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총장 이영경) 고고미술사학과와 오는 2일 오후 3시 경주 쪽샘유적 발굴조사 현장에서 공동 발굴조사 성과와 출토유물을 공개한다. * 발굴조사 현장 : 경북 경주시 황남동 18-1 쪽샘지구 유적 조사 현장 두 기관은 지난 2020년 경주 구황동 지석묘를 시작으로 2021년부터는 신라 왕족과 귀족의 무덤군인 경주 쪽샘지구 유적에서 매년 공동으로 발굴조사를 해오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조사를 위한 기술‧행정‧예산을.. 2023. 6. 1. 한 다리 걸친 강화도-나를 채우는 섬 인문학(불광출판사) 강화도-나를 채우는 섬 인문학(불광출판사) 2023년 5월 30일 공저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알 수는 없으나 저 책 원고 중 한 챕터 집필 의뢰를 받고는 잠시 고민을 했으니 나한테 할당한 주제가 강화와 이규보인 까닭이다. 이건 마뜩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로대 혹 블로그 게재하는 이규보 관련 글들 때문이 아닌가 해서 그 주집필자를 추천하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지만 우야둥둥 이리 되고 말았다. 아마 출판사에서 기획서도 집필자들한테 돌리지 않았나 하는데 어차피 그래봐야 그 대목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맡은 부분만 되도록 제시간에 원고 분량 대강 맞추어 제출하면 그만이다. 챕터별 원고가 많지도 않아서 그 한 챕터는 나같은 나이에도 앉은 자리서 훑어내려가는데 부담이 없다. 책이 나왔다는 전갈은 일.. 2023. 6. 1. 소일에서 부여잡은 쥐꼬리 소명 육체적 고난에서 해방한 요즘은 되도록이면 점심이나 저녁 약속을 정하지 않으려 하며, 날이 갈수록 실제로도 그리되어 가는 심플한 생활로 들어가는 징후 완연하다. 문제는 그에서 오는 허함이라, 무엇인가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아직도 있는 걸 보면, 놓으려면 멀었다 싶기는 하다. 그제부터 시도한 점심시간 보내기가 공장 인근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부속 자료실에 가서 이런저런 책이나 뒤지며(뒤진다 하는 까닭은 시력과 인내 때문이라, 그것이 바닥난 지금은 정독은 실상 불가능하다) 소일하는 일이라 어제 들른 서울공예박물관 자료실을 어슬렁거리다 보니, 같은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역사편찬원에서 근자에 전 3권으로 역주한 조선 숙종 연간 사대부 관료 엄경수嚴慶遂(1672~1718)가 승문원에 들어간 1706년을.. 2023. 6. 1. 탁본에 왕림한 서산마애삼존불, 미소는 어디에? 이 탁본을 이번 성균관의 보물 전에 내걸면서 박물관이 붙인 설명이 아래와 같다. 서산 마애삼존불상 탁본 국가지정문화재(국보) 286x22lcm, 백제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 탁본이 가장 많은 기관 중의 하나이다. 이는 한국 금석학의 대가이자 본교 박물관장을 역임하였던 우영 조동원 선생이 2010년 탁본 400여 점을 기증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소장 탁본은 문화재의 보존을 위하여 탁본이 자유롭지 않은 지금에는 구할 수 없는 회귀본이 많이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귀중하다. 좌측 탁본의 대상이 되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은 국보 제84호이며 충남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의 충암절벽에 새겨져 있다. 가운데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였다. 본 마애불은 빛이 비치는 .. 2023. 6. 1. 일제시대의 지식인: [6] 채병덕 [7] 이종찬 채병덕, 이종찬 장군은 조선에서 고보 (혹은 중학)를 졸업하고 일본육사를 진학한 사람들로, 만군을 거쳐 육사로 온 박정희 이한림 등과는 다른 경로를 걸었다. 일반적으로 일본육사로 바로 입학한 사람들은 만군 출신들보다는 교육경력이 훨씬 심플하고 수준도 높았다. 아마 가정 환경도 그랬을 것이다. 채병덕은 평양종로보통학교-평양중학(평양고보?)-일본육사예과-일본육사본과 이종찬은 경성사범부속보통학교-경성중학-일본육사예과-일본육사본과 이다. 이런 경력은 일제시대 당시 조선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교육경력이라 할 수 있다. 채병덕은 평양중학인지 평양고보인지 정확하지가 않은데 어느 쪽이라도 쉽지 않은 경력이고, 이종찬이 다닌 경성중학은 재조선 일본인을 위해 만든 학교였다. 조선인은 거의 들어가지 못하는 학교였는.. 2023. 6. 1. 파라오 람세스2세가 자기 신민臣民을 갈굴 때 by 유성환 기원전 1274년 5월 12일 발발한 카데쉬 전투(Battle of Kadesh)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분께서 주지하시는 것처럼, 이 전투는 서아시아 최강국 이집트와 히타이트가 카데쉬라는 도시를 두고 격돌한 인류 역사 상 최초의 대규모 전면전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이집트 군을 지휘한 람세스2세(Ramesses II: 기원전 1279-1213년)가 히타이트 총사령관 무와탈리 2세(Muwatalli II: 기원전 1295-1272년)의 기만전술에 넘어가 주력부대로부터 고립되면서 상당히 고군분투했다는 것 역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전략적 오판 때문에 적병들에게 살해당할 – 혹은 그보다 더 일이 꼬여 포로로 사로잡힐 – 뻔한 상황을 가까스로 모면한.. 2023. 6. 1. 일란성쌍둥이 왕궁과 왕릉 왕릉은 왕궁이다. 왕궁을 왕릉에 투사하면 둘은 오버랩한다. 둘은 서로에 대한 피사체다. 이 평범하면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키워드 하나가 너무도 쉽사리 무시되곤 했다. 그랜드디자인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2014. 5. 31) 왜 투사하는가? 같은 집이기 때문이다. 무덤은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이다. 이 집이라는 특성이 너무 쉽게 망각되곤 한다. 고고학은 무덤을 파면서도 집을 판다는 생각을 못한다. 내가 보는 거의 모든 고고학도가 그렇다. 이 집을 이해해야 무덤을 더 깊이 파고든다. 물으면 그걸 누가 모르냐 하는 헛소리를 자주 듣는데 그 무덤을 생전의 집과 연결해 이해하려는 시도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무덤 정의만 해도 입이 아프게 떠들었더니 이제 겨우 보이기 시작한다. 그 많은.. 2023. 5. 31. 공주 석장리서 중기구석기시대 뗀석기 70점 구석기시대 유적으로는 남한 최초로 확인한 석장리 유적을 낀 충남 공주시가 그 일원 3만 2,095㎡에다가 오는 2026년까지 168억원을 투입해 세계구석기공원을 만들기로 했으니, 구체로는 구석기교육원, 세계구석기체험공원, 구석기전망대 등과 같은 시설을 넣는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위선 그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어야 할 터. 그래서 어느 발굴조사단에다가 이걸 맡길까 하다가 입찰인지 제안서 형태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겨레문화재연구원이라는 데를 조사기관으로 고르고는 거기다가 너희가 알아서 파 봐라 한 모양이라 단, 저 넓은 지역을 다 파제낄 수는 없으니 2020년 11월 시굴조사에서 문화층이 드러난 석장리동 124-1번지 일원 1,420㎡만을 대상으로 정밀 조사를 벌이게끔 했다. 그 결과 뗀석기를 비롯.. 2023. 5. 31. 일제시대의 지식인 [5] 백선엽 장군 본관 수원인 백선엽白善燁 (1920. 11. 23 ~ 2020. 7. 10) 장군은 위키에는 프로필이 이렇게 되어 있다. 평안남도 강서 약송소학교- 평양사범 (5년제) - 만주봉천군관학교 (2년제) - (해방후) 군사영어학교 1기 백 장군은 박정희 (1917~1979) 전 대통령과 프로필이 아주 비슷하고 두 사람은 집안 살림이 넉넉치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시기에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여 공부를 제대로 못할 상황인 사람이 공부를 공짜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사범학교 진학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범학교 진학을 하게 되면 학비무료는 물론 매월 생활 보조금도 지급되었다는 증언이 있으므로 집안이 넉넉치 못한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교육기회였다고도 할 수 있다. 조선의 사범학교는 소학교를 졸업.. 2023. 5. 31. 그간 사모은 비싼 책 자랑질(1) 죽은 남편한테 보내는 편지 by 유성환 2017년 저는 《서양고대사연구》 제48집에 ‘ – 위작 역사기술 및 신화학적 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저는 《카이로 사발》(Cairo Bowl: CG 25375)이라는 텍스트를 인용했습니다. 본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데디Dedi가 이우나크트Iunakht의 소생이자 신관인 인테프Intef에게 보냄 : 병이 난 이 여종 이미우Imiu와 관련하여, 당신은 왜 그녀를 해코지하는 모든 남자(영혼)와 모든 여자(영혼)에 대항하여 싸우지 않습니까? 왜 당신의 대문이 황량하기를 바랍니까? 오늘 그녀를 위해 새롭게 싸우시오. 그리하면 그녀의 집이 다시 일어날 것이며 당신에게는 물이 따라질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집은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 2023. 5. 31. 300년전 담당 공무원이 증언하는 어살 고기잡이의 고통 병술년 (1706, 숙종 32년 2월 26일) ○ 수부壽夫 외숙부께서 오셨다. 지금 기로소耆老所 어살의 감관監官으로 계신데, 어살이 있는 곳은 인천이다. 어부들의 고기 잡느라 고생하는 실상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바닷가의 조수가 물러나면 바닷물과 물가 언덕의 거리가 수십 리나 되는데 어살은 그 중간에 설치되어 있다. 조수가 밀려와 물과 언덕이 모두 평탄해지면 어살은 까마득히 멀고 드넓은 곳에 잠겨있어 식별할 수 없다. 조수가 물러날 때는 너무나 빨라 순식간에 바로 다 없어지기 때문에 물고기들이 파도를 따라 오르내리다가 모두 어살 안에 걸려든다. 그러면 곧 감관이 격군을 인솔하여 어살로 들어가 거두이 나오니, 세속에서는 이를 '관수觀水'라고 한다. 하루 중에 두 번 조수가 일어나는데, 조수가 밤이나 새벽에 .. 2023. 5. 31. "집을 지어라" 건축재상 남구만 (병술년, 1706, 숙종 32년 2월) 25일 주동 남 참판 어르신이 견여를 타고 아버지(엄집) 찾아와 밤을 새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셨다. 남 참판 어르신은 영사 남구만의 9촌 아저씨이다. 남구만 재상의 일에 대하여 남 어르신이 말씀하시기를, "남구만 재상은 집 짓는 것을 좋아하는 버릇이 있어 도처에 집을 지었네. 결성結城(충청 홍성)은 대대로 살던 곳으로 큰 집이 있는데, 구성駒城(경기 용인)의 묘소 아래에도 큰 집을 지었네. 비파담琵潭潭(경기 용인)에도 집이 있는데 물가에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을 싫어하여 물가와 거리가 조금 먼 곳에 새로 집을 짓기 시작하였네. 공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수원에도 민가를 사서 종을 두어 지키게 하고, 경성 동쪽 박 사인朴舍人의 골짜기에도 그곳의 수석水石을 좋아하여 초.. 2023. 5. 31. 왕궁 왕릉 종묘 사찰을 하나로 묶는 그랜드디자인 왕릉에 대한 이해의 출발은 왕궁이다. 왕궁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왕릉이 안보인다. 둘은 왕이 거주하는 집이다. 나와바리가 다를 뿐이다. 왕궁은 살아있는 왕의 독점적 구역이요 왕릉은 죽은 왕들의 조차지다. 이 둘이 만나는 접점이 종묘다. 종묘는 두 가지를 한 군데로 봉합한다. 이런 이해는 사찰에 대한 그것에도 그대로 관통한다. 사찰은 부처님의 집이다. 그 집은 불교 도입 초창기엔 생전의 집(대웅전)과 사후의 집(탑파)가 착종하다 고려시대 이후엔 급속도로 대웅전 중심으로 재편한다. 탑은 사라졌는가? 대웅전으로 통합됐을 뿐이다. 탑이 애초에 중국에 상륙했을 적에 그것을 원묘圓廟와 같은 용어로 번역하곤 했으니, 이는 탑파가 지닌 원초적 의미가 추모에 가 있었음을 증명한다. 그런 廟로서의 탑파가 훗날 대웅전 하나.. 2023. 5. 31. 일제시대의 지식인 연재에 붙이는 말 사실 이 연재는 목적이 일제시대 사셨던 분 학력 검증이 목적이 아니다. 필자는 지금 이 작업을 온라인에 올라있는 정보를 토대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오류가 나올 가능성이 몇 가지 있다. 1. 첫째는 고인의 프로필을 올리는 측에서 일제시대 구제교육 시스템을 잘 모르고 올리는 경우. 이런 대표적인 예가 전술한 바와 같이 고보의 문제이다. 많은 기록에서 고보를 고등학교로 착각하는데 당시 살던 분들은 다르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일제시대 고보가 대전 말기에 중학교가 되었다가 해방이후 고등학교로 승격되는데 이렇게 이름이 자꾸 바뀐 것도 혼란의 이유가 된다. 이를 정확히 알고 기록을 유지하면 별문제 없을 텐데 온라인상의 기록 상당수가 이 부분에 둔감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2. 둘째는 온라인 정보 자체.. 2023. 5. 31. 일제시대의 지식인: [4] 양주동 선생 일제시대 프로필을 보면, 그 시대 구제교육제도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정리해 놓은 것이 많이 보인다. 예를 들어서, 앞에 이병철 선생의 경우에서도 예를 들었지만, 조선의 고보를 졸업한 경우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대학으로는 바로 진학이 안 된다. 중졸 학력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그 다음 프로필에 대학이라고 써 있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학 전문부일 가능성이 높다. 대학 전문부를 나오면 고등학교 학력이 되므로 그 다음에는 물론 대학으로 진학이 가능했다. 이 경우 일본의 대학 전문부였다면 대학본과 진학도 어렵지는 않았을 것 같다. 조선의 고보를 나온 후 바로 대학이 나와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은 고보를 우리가 고등학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데, 앞에서 여러 번 썼지만 고보와 대학 사이에는 고등학교가 .. 2023. 5. 30. 일제시대의 지식인: [3] 이병철 (ft: 데츠카 오사무) 삼성 창업자 이병철(1910~1987) 선생에 대해 알아보자. 한글 위키에 의하면 선생의 일제시대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1919년 3월 한학 수학을 인정받아 진주군 지수면에 있는 지수공립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1920년 11살에 지수공립보통학교 4학년 당시 어머니의 친정이 있는 경성의 수송공립보통학교로 전학을 갔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심한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경성 지역 학생들과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곧 학교 생활에 적응, 중동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학습진도가 올라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1929년에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이병철은 공부에 열중하고 스스로 충실하게 생활했으나, 1학년 때 건강 악화로 쉽게 지치고 조금만 책을 읽어도.. 2023. 5. 30. [Discover Korea] Gift from sea to pine forest As the sea fog enters the east coast of Gangwon-do, a pine field in Songjeong-dong, Gangneung-si, creates a dreamy scene. Photos by Yoo Hyung-jae [Yoo Hyung-jae, who took these pictures, is a photo reporter at Yonhap News Agency who specializes in the ecological field.] 2023. 5. 30. [Discover Korea] Cock pheasant's runaway A cock pheasant strolls in a field in Gangneung, 163 kilometers east of Seoul, on May 30, 2023. Photos by Yoo Hyung-jae [Yoo Hyung-jae, who took these pictures, is a photo reporter at Yonhap News Agency who specializes in the ecological field.] 2023. 5. 30. 성균관대박물관이 풀어헤친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과 근묵槿墨 위창 오세창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말년 제자이기도 한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의 아들이다. 본관은 해주로, 5대에 걸쳐 역관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났다. 집안의 특성상 서울 중부 시동時洞(지금의 청계천 2가) 집에는 당대 명성이 있던 학자들과 주요 인사들이 드나들었다. 오세창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가학을 전수받고, 최고의 인사들에게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17세가 되던 1880년, 사역원 시험에 합격하여 대를 이어 역관이 되었고, 이후 188년 박문국 주사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의 기자를 역임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정3품에 올라 우정국 통신국장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1898년(35세) 개화당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1906년(43세) 손병희 등과 귀국하여 만세보.. 2023. 5. 30. 이전 1 ··· 409 410 411 412 413 414 415 ··· 94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