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9912 문화재가 주어야 하는 두 가지 혹은 한 가지 감동 금전 이 둘, 혹은 둘 중 하나를 주지 않는 문화재는 존재가치 없다. 어느 것도 줄 수 없는 문화재는 뭉개 버리고 아파트 지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문화재는 당위와 윽박만 있었다. 문화재는 소중하다. 고로 지켜야 한다. 이 단순무식한 구도가 피타고라스 정의인양 군림했다. 이 당위와 윽박을 박멸 방축해야 할 시점이다. 2023. 6. 9. 일제시대 고등보통학교는 어디에서 왔는가 일제시대 조선에 설치된 고등보통학교 약칭 고보高普는 일본에는 없는 학교다. 조선에만 설치된 학교라 할 수 있다. 이 고등보통학교는 중학교와 같은 급으로 기능하여 조선에서는 이 고보를 졸업하면 연전, 보전으로 진학하거나 아주 드물기는 해도 경성제대 예과, 혹은 일본으로 유학하여 대학 예과나 전문부로 진학하였던 것이다. 고등보통학교는 그 기원이 무엇일까? 왜 고등보통학교라 불렀을까? 일본처럼 중학교라 불렀으면 간단했을 일을. 필자가 보는 고등보통학교의 기원은 이렇다. 메이지 41년 (1908년) 당시 일본의 교육제도다. 이 교육제도를 유심히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소학교를 졸업하면 당시 일본에서는 중학교로 진학하거나 아니면 고등소학교를 진학할 수 있었다. 만약 중학교로 진학하면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으로.. 2023. 6. 8. [연구실 새논문] 중국 화북지역 사육 소의 역사적 확산 과정 연구실 새 논문을 하나 소개합니다. 근간 인문학연구에 실린 것으로 최근 중국 황하유역 소에 대한 고고학 및 유전학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소의 확산과정에 대해 쓴 논문입니다. 경희대 홍종하 교수가 제 1 저자입니다. 홍종하, 이양수, 고아라 and 신동훈. (2023). 고고학 및 유전학적 연구성과로 본 화북지역 사육 소의 역사적 확산과정. 인문학연구, 55, 83-122. 이 논문은 몇년째 계속하는 동아시아 소의 기원과 한국소의 전개에 대한 연구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전에 발표한 논문보다 중국 고고학, 유전학적 보고에 대해 훨씬 깊게 들어가 있는 것이 이번 논문의 특징입니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 2023. 6. 8. 나주 가다 절강성 밟은 운명, 금남선생표해록錦南先生漂海錄 금남선생표해록錦南先生漂海錄 조선 ㅣ종이 ㅣ 고고민속 13157 저자: 최부崔溥(1454~1504) 1487년(성종 18년) 제주추쇄경차관濟州推刷敬差官으로 제주에 부임한 금남錦南 최부崔溥(1454~1504)는 이듬해 1월 부친상을 당해 육지로 출발했으나 폭풍을 만나 29일 동안 표류한 끝에 중국 절강성浙江省 영파부寧波府에 이르렀고 같은 해 7월에 귀국하게 된 사건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표류기다. 지금은 최부 표해록 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기행문학의 금자탑은 불운이 내린 선물이었다. *** 서울역사박물관 홀에 섹션 전시 중이다. 제주서 가져왔다. 2023. 6. 8. 일제시대의 지식인: [23] 김수환 한국 최초의 천주교 추기경 김수환의 일제시대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보통학교 (6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서울 동성상업 을조 (1935-1941) -- 일본 조치(上智)대학 (1941-1944) (문학부 철학과? 예과?) 의외로 온라인에는 추기경에 대한 프로필이 자세하지 않은데 여러 군데 기록을 긁어모아 보면 위와 같다. 보통학교 6년 졸업 후 중등과정으로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거쳐 서울 동성상업 을조를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 동성상업은 목포상업 등처럼 보통학교 6년을 마친 후 진학하는 실업학교였다. 중등과정에 재학한 기간이 6년으로 1년 정도 더 긴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당시 동성상업 을조는 가톨릭 사제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이른바 "소신학교"였다고 한다. 김 추기경은.. 2023. 6. 8.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어질한 유리 외벽 닦이 이 작업을 지칭하는 말이 따로 있을 듯해서 물었더니 외부 유리 코킹 인가? 이렇게 부른댄다. 워낙 위험한 일이라 생명수당 같은 게 따로 있어 일당은 쎄다고 들었다. 일전에 우리 공장 옥상에서 밧줄 타고 내려가는 짬을 내는 저분들을 인터뷰 비스무리하게 한 적 있는데 그 팀원들은 특수부대 출신들로 군기도 쎄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내려다보기는커녕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나같은 넘은 근처도 못가는 일이다. 요새 부쩍 유리 외벽 닦기가 잦은 듯하다. 황사 혹은 미세먼지 시즌이 한물 가서인가? 2023. 6. 8. “오리알 빛 같은 하늘” 을 펼친 최찬식 《추월색秋月色》 시름없이 오가던 가을비가 그치고 슬슬 부는 서풍이 쌓인 구름을 쓸어보내더니 오리알 빛 같은 하늘에 티끌 한 점 없어지고 교교한 추월색이 천지에 가득하니 이때는 사람사람마다 공기 신선한 곳에 한번 산보할 생각이 도저히 나겠더라. 최찬식崔瓚植[1881. 8. 16~1951. 1. 10] 신소설 《추월색秋月色》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에는 시집 장가를 이렇게 정의하는 구절도 발견된다. 시집장가란 무엇인가? "장가는 내가 너한테 절하는 것이요, 시집은 네가 우리집에 와서 사는 것이란다." (2013. 6. 8) *** 구한말~식민지시대 초창기 신소설로 일컫는 대중소설 작가군에 속하는 최찬식崔瓚植은 이 무렵 「안의 성」, 「금강문」, 「도화원」, 「능라도」, 「춘몽」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을 연이어 발표한다... 2023. 6. 8. 부여논산가도가 절단낸 부여나성 부여와 논산을 연결하는 도로는 식민지시대 개설되었다. 이 부여논산가도는 백제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결정타였거니와 이 도로 개설을 즈음해 비로소 부여 나성이 속살을 드러냈다. 나아가 가도가 지나는 근처를 따라 백제고분이 밀집한다는 사실도 비로소 드러났으니, 능산리 고분군이 문화재로 재발견된 것으로 이때였고, 그 인근 다른 고분군들도 이때서야 존재를 드러냈다. 언제 짬이 나면 이 가도의 역사 자체를 정리하픈 생각도 굴뚝처럼 솟아난다. 하지만 지난 1년, 하도 능산리에 질린 까닭에 당분간은 숨고르기가 필요할 듯하다. 첨부 유리건판 사진은 틀림없이 그 가도가 통과하면서 절개한 나성 동문, 능산리사지 인접 지점인 듯한데, 자신은 없다. (2017. 6. 8) 2023. 6. 8. 엄동설한 야간에 후레시 켜고 발굴한 백제금동향로 널리 알려진 능산리 사지 이른바 추정 공방지 백제금동향로 출토 장면이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노출 등을 조정해 보니 야간 발굴이었음이 더욱 명백해진다. 후래시를 썼던 것이다. 졸저에 정리했듯이 지금 세종문화재연구원 실장으로 있는 진성섭선생과 지금 서라벌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단장 차순철 선생이 맨손으로 엄동설한에 야간에 팠다. 저 사진은 진 선생이 찍었다. 발굴 직후엔 금박이 비교적 완연했으나 부여박물관으로 옮긴 직후 뜨거운 물을 퍼부어 씻을 적에 금박이 많이 흘려내렸다는 후문도 있다. 적지 않은 문제를 노출한 엄동설한 야간발굴이었다. 2023. 6. 8. 유리건판이 품은 1920년 능산리 사지 부여 나성과 능산리 고분군 사이 계곡에 위치한 능산리 사지寺址는 1991년 이후 비로소 발굴조사가 이뤄져 금동대향로와 창왕명 석조사리감이 대표하는 사비백제사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우뚝 섰다. 당시 시굴조사를 윤무병 선생이 했는데, 이전에는 논밭이었다. 이런 사정은 식민지시대라 해서 다를 바 없었으니, 첨부 사진이 바로 그것을 말해 준다. 이 유리건판 사진은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촬영한 것이라 하는데, 사지를 찍으려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성 동문을 담기 위한 구도로 포착되었다. 지금의 사지가 어딘지는 단박에 알리라. 계단식 논이 조성된 저곳이 바로 그곳이다. 저 아래 향로와 석조 사리감이 잠자고 있었다. (2017. 6. 8) 2023. 6. 8. 일제시대의 지식인: [21] 박헌영과 [22] 김달삼 현준혁에 이어 이제 일제시대의 좌파 지식인에 대해 써 보겠다. 남로당계와 북로당계를 나누어 쓴다. 이 두 계열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로 교육경력의 차이를 무시 못한다. 남로당 계열에는 당시로서 고학력자가 많다. 남로당 박헌영은: 대흥보통학교 (1912-1915)-- 경성제일고보 (1915-1919) 보통학교 경력은 1년이 짧고 (당시 보통학교는 4년) 반면 고보 경력도 1년이 짧은 것 같은데 (당시 고보는 5년) 월반을 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박헌영 기록에는 경성제일고보 (뒤의 경기고)를 나왔다고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가 졸업할 때까지는 이 학교는 아직 경성고보였다. 경성제이고보(뒤의 경복고)가 생긴 후에야 경성제일고보로 이름이 바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까지는 경성고보가 정.. 2023. 6. 8. 합성을 합성이라 부르지도 못하는 부여 능산리 사지寺址 부여 능산리 중심 사역寺域 구역 발굴 상황을 논할 때 항용 인용하는 국립부여박물관 사진이다. 이거 합성이다. 능산리가 이리 한꺼분에 노출된 적은 없다. 장기간 시기를 달리하며 발굴 노출한 장면들을 대동여지도 이어붙이듯 딱풀로 오려붙인 합성이다. 하지만 이 장면이 합성이란 사실은 보고서 어디에도 없다. 자칫 역사 조작 논란을 부를 만한 사안이다. 합성임을 밝혀야 한다. (2017. 6. 8) 2023. 6. 8. 《직설 무령왕릉 추보》 (2) 독자가 없는 텍스트에서 찾은 민족주체성 이건 내가 졸저 《직설 무령왕릉》에 담는다고 하다가 그만 잊어먹고 빠뜨린 대목이라 아쉬움이 크다. 늦었으니 어찌 하리오? 무령왕릉 묘권墓券 제1장 제1쪽은 흔히 무령왕 묘지墓誌 혹은 묘지석墓誌石 혹은 묘지명墓誌銘이라 하거니와, 이에는 무령왕이 언제 몇 살로 죽어 어찌해서 이곳에 묻히게 되었는지 간단한 내력을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금 강조하지만 이는 묘지명이 아니라 묘 주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관련 증서, 그러니깐 묘권墓券의 일부로써 서문에 해당하는 대목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의하면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年 62세 되던 해인 계묘년癸卯年 5월 병술丙戌 삭朔 임진壬辰일에 ‘붕崩’ 했다고 한다. 붕이란 붕 떴다는 말이니 죽었다는 말의 높임 혹은 은유다. 한데 이에서 이 글자를 발견한 이들은 백제가.. 2023. 6. 8. 판화가 구현한 1940년, 서라벌 달밤 일본 근대미술사를 뒤적이다보면 판화 이야기를 꽤나 만나게 된다. 전통적 우키요에나 니시키에뿐만 아니라 신판화라 해서 거기 Modern을 입힌 것, 케테 콜비츠나 루오 그림처럼 선 굵은 판화도 유행했고. 그런 만큼 판화가도 많았는데, 그중 히라쓰카 운이치平塚運一(1895-1997)라는 이가 있었다. 102살이라는 기록적 장수를 누렸다는 것이 우선 눈길을 끌지만, 그보담도 서양화가 이시이 하쿠테이石井柏亭(1882~1958)와 판화가 이가미 본코쓰伊上凡骨(1875~1933)의 제자로써, 철저한 분업체제였던 일본 목판화 제작방식을 바꾸어 제작 전 과정을 작가 한 사람이 도맡는 '창작판화'의 대표작가로 일본에선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일본 근대미술가 중 안 그런 이를 찾기가 어렵긴 하지만, 히라오카도 조선을 소재로.. 2023. 6. 7. 용인 보라산 백제고분 발굴성과(추보) 앞서 한국문화유산연구원이 실시한 용인 보라동 산 62-2번지 백제고분 발굴성과 소식을 전했으니 해발 155미터 야산 등산로에서 찾아낸 4세기 백제무덤들 해발 155미터 야산 등산로에서 찾아낸 4세기 백제무덤들 용인 보라동에 보라산 이라 일컫는 야산이 있다. 산이라 하지만 해발 215m라, moutain이라기 보다는 hill에 가까운 작은 산이다. 그 기슭으로 근자 단독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한 모양이라, 그에 맞추 historylibrary.net 아래는 그 성과를 집적한 한국문화유산연구원 학술자문회의 자료 제2023 - 5호 용인 보라동 62-2번지 백제고분 유적 - 학술자문회의 - 자료를 토대로 이번 발굴성과를 다시금 정리하거니와, 중요 도판은 앞선 소식에서 이미 다 까발렸으니 그걸로 가늠하되, 지금 추.. 2023. 6. 7.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례식장 꽃상여 태워 보내기 위함이라 해 두자 여름꽃 눈이 부시고 저 먼산엔 과부 남기지 않는다는 밤꽃 한참이라 누군가에겐 별리일 장례식장은 또 누군가한테는 찬란이리라. 원주 어느 장례식장에서 초한다. 2023. 6. 7. 일제시대의 지식인: [20] 현준혁 일제시대와 해방정국의 좌파 거물 현준혁玄俊赫(1906~1945)의 프로필이다. 보통학교 (1919) -- 협성학교·중동학교 -- 연희전문학교 문과 (1924) --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 (1929) 그가 협성학교와 중동학교를 졸업한 해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해가 1919년이라 하므로 중등과정인 협성학교 중동학교를 마친 해가 1924년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이해에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했다고 하였다. 그가 보통학교--고보--연희전문 문과를 원래 햇수를 다 채우고 졸업했다면 6년+5년+4년 하여 연희전문 졸업한 해가 1928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알려진 프로필에는 연희 문과 졸업이 1924년이다. 무려 4년의 차이가 난다. 옛날신문을 검색해본다. 현준혁의 이름이 있다. 경성제대.. 2023. 6. 7. Absolute God of archaeology The absolute Being of archaeology is this friend. Without him, all excavations will be paralyzed and fall into abigyu-hwan. But any archaeology doesn't say thank you to this friend. Archaeology divides into two periods, before and after this friend. The absolute god in charge of archaeology, we name him Excavator and worship him today. 2023. 6. 7. 《직설 무령왕릉 추보》(1) 박물관 뜰의 쌀가마니 어제 국립경주박물관장을 역임한 미술사학도 강우방 선생이 전화를 주셨다. 내가 무령왕릉 발굴기를 냈다는 소식을 접하시곤 "무령왕릉이라면 나도 증언할 게 있다"면서 얘기를 쏟아냈으니 이야기인즉 이러했다. 강 선생이 무령왕릉 발견소식을 접하기는 그날 석간 신문을 보고서라 했으니 7월 9일이다. 이때 그는 경주인가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대전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는 냅다 송산리 고분군으로 달려갔댄다. "내가 도착한 게 오전 8시쯤일 거예요. 한데 현장엔 아무도 없더라고? 이게 어찌된 일인가 했지. 무덤 바닥을 보니 빗자루 자국 비슷한 게 있더라고?" 그래서 다시 냅다 공주박물관으로 갔다고 한다. 한데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박물관에 가서 보니 김영배 관장이랑 수위 달랑 두 명만 .. 2023. 6. 7. 해발 155미터 야산 등산로에서 찾아낸 4세기 백제무덤들 용인 보라동에 보라산 이라 일컫는 야산이 있다. 산이라 하지만 해발 215m라, moutain이라기 보다는 hill에 가까운 작은 산이다. 그 기슭으로 근자 단독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한 모양이라, 그에 맞추어 문화재 조사를 했더니 옛날 무덤이 적지 않게 분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야산은 자고로 무덤이 많기 마련이다. 왜? 높이도 적당하잖아? 묘지로 안성맞춤 아니겠는가? 그 정상에 오르내리는 등산로가 있기 마련이라, 한데 그 등산로 중에 간이하는 운동시설이 들어선 곳이 있어 그 바닥에는 삼국시대 석실분이라 할 만한 흔적이 발견된 터였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 바닥에서는 아래와 같은 흔적이 노출된 상태였다. 일반인이야 무심하게 넘기겠지만, 고고학에 조금만 눈이 밝은 사람은 아 무덤이 아닐까 하는 그런.. 2023. 6. 7. 민연이 비판한 아연, 김준엽을 업고 나오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약칭 아연은 대학 부설 기관으로 연원이 깊고 그 성과 또한 만만찮아 그 명성과 역사는 단순한 특정 대학 부설 연구소의 그것을 뛰어넘는 상징이 있다. 한데 이와 맞먹는 연구소가 같은 고려대 내부에 있다는 점에서 두 기관은 아주 묘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다. 민족문화연구원 약칭 민연이 그곳이라 두 기관은 비슷한 시기에 생겨나고 각자 다른 분야에서 특화했지만 경쟁관계일 수밖에 없는 숙명이 있다. 명칭에서 드러나듯 아연이 국경 너머를 지향한다면 민연은 민족 내부를 파고 든다. 구체로 보면 아연은 중국학이 중심이다. 그건 그것을 만든 주축 김준엽 개인성향과도 무관치 않다. 그런 아연이 김준엽 탄생 백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현창사업을 들고 나왔다. 나는 이를 좀 다른 시각에서 보고 싶다. 일전.. 2023. 6. 7. 이전 1 ··· 406 407 408 409 410 411 412 ··· 94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