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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에는 마운령비의 존재를 몰랐을까? 本勾高麗之所有也, 其古碑遺跡, 尙有存焉 이렇게 되어 있으니, 고려사 기록을 보면, 이때도 비 자체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그러면 세종은 왜 윤관비를 두만강 너머에서 찾고 있었을까? 이 비를 고구려 비로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신라비라고는 감히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2022. 12. 23.
고려사에 나오는 진흥왕 순수비 앞서 윤관 북벌이 미친 지역이 진흥왕 때 순수비가 서 있는 지역 안쪽과 거의 비슷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고려사 윤관 열전에 보면 이를 시사할 만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1. 윤관이 정벌하여 획득한 땅에 대한 설명이 그 열전에 이렇게 나온다. 其地方三百里, 東至于大海, 西北介于盖馬山, 南接于長·定二州, 山川之秀麗, 土地之膏腴, 可以居吾民. 而本勾高麗之所有也, 其古碑遺跡, 尙有存焉, 夫勾高麗失之於前, 今上得之於後, 豈非天歟? 그 땅의 둘레는 300리로 동쪽은 대해大海에 이르렀고 서북의 경계는 개마산盖馬山이며 남쪽으로는 장주長州·정주定州의 2주에 닿았는데, 산천은 수려하고 토지는 기름져서 우리 백성들이 살 만하였다. 본디 고구려 소유로 옛 비석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무릇 고구려가 예전에.. 2022. 12. 23.
한국사가 특필해야 할 정안국定安國 정안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발해가 멸망한 후에 그 유민이 세운 나라로 발해 멸망 후 부흥운동을 설명할 때 나온다. 이 나라에 대해서는 주목해야 할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간단히 써 본다. 1. 우선 정안국이라는 나라는 존속 기간이 아주 길다. 사서에 나오는 부분 그 전기간을 존속했다고 본다면 938년에서 985(혹은 986년까지) 무려 50년 가까이 존속했다. 후백제 존속기간이 36년 정도다. 2. 정안국은 발해 땅 중에서도 대체로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한반도 북부와 남만주 일대에 존속한 것으로 보인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그 주민은 말갈계가 아니라 예맥계였던 모양으로 중국 사서에는, 定安國本馬韓之種 이라 해놨다. 발해에 대해 중국이 끈덕지게 속말말갈 딱지를 붙이려 했던 것과 비교해서 이례적이라 할.. 2022. 12. 22.
수레[車] 마구馬具 관련 부품 명칭 수레나 말은 자동차 발명 이전에는 자가용이었다. 그런 만큼 그 부품 명칭은 일상 생활 깊이 들어와 각종 비유로도 널리 쓰였다. 그 명칭이 복잡 다기하기는 하지만, 이것만 잘 익혀 놔도 써 먹을 만한 데가 적지 않다. 저 도판은 진시황제 병마용갱 중 제2호갱 출토 마차 실물을 토대로 하는 복원품 마차와 수레 관련 부품별 명칭이니 수시로 참조하기 바란다. 2022. 12. 22.
신라사 최대 미스터리 금성金城, 그것이 있을 곳은 지구상 오직 하나 월성이 왕궁으로 기능하기 전, 혹은 그것이 건설되기 전, 나아가 그것이 건설되고서도 한동안 같이 왕궁으로 기능한 금성金城이야말로 명실상부한 천년왕국 신라의 정궁正宮이요 법궁法宮이다. 그것을 증언하는 기록들을 보면 월성보다 금성은 규모가 컸다. 그렇지만 그 기록 자체에 모순투성이라, 무엇보다 그 위치를 가늠할 수 없다. 그렇지만, 금성이 포진할 수 있는 데는 지구상 딱 한군데 밖에 없다. 좁에 잡으면 앞, 넓게 잡으면 아래쪽이 금성이 포진하는 범위다. 이쪽 지역을 금성 후보지로 지목한 이는 더러 있다. 이건 내가 그들의 견해를 따라서가 아니라, 순전히 내가 관련 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성과들을 비교해 검토할 적에 때려죽여도 금성 위치는 저 범위에 포진한다. 2022. 12. 22.
진흥왕대 국경선 아래 김 단장 쓰신 글을 쓰고 덧붙이면, 신라가 진흥왕 때 동해안을 따라 멀리 북상했는데, 저때 신라는 가다가 멈춘 것이 아니라 종족적인 면에서건 지리적인 면에서건 거의 갈 때까지 간 상태였다고 봐도 옳지 않을까 한다. 실제로 신라의 저 동북쪽 경계선은 돌파가 지난하여 그 후 900년이 지난 세종대에야 겨우 돌파하여 두만강 선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윤관의 북벌은 여러가지 이설이 있지만 그 북쪽 경계가 진흥왕의 북벌선 이북으로 못 올라갔으리라 본다. 윤관의 북벌 북상 최대를 두만강 넘어 선춘령으로 본 것은 희대의 천재 세종이 육진을 우리 땅으로 굳히기 위한 명분쌓기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실제로 윤관 북벌의 북상치는 지금 황초령, 마운령비정도였을 것이라 본다. 윤관도 이때 지리적 경계, 종족적 경.. 2022. 12. 22.
고려가 제작해 일본, 그리고 오키나와로 간 범종 국립문화재연구원(원장 김연수)은 지난 16일 오후 3시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아시아 불교미술사 분야 전문가 셰리 파울러 Sherry D. Fowler 미국 캔사스대학교 교수를 초빙해 '한국-일본-류큐를 이은 가교: 일본의 두 고려 범종 Two Buddhist Bells as Interregional Bridges between Korea, Japan, and Ryukyu'을 주제로 하는 특별 강연을 개최했다는데, 문화재청장(최응천)이 범종 전문가라서인지 그런 인연에서 비롯한 특강 아닌가 싶다. 이 강연이 연구원으로서는 "국제적 관점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연구하는 역량을 강화하고 미래지향적 연구를 추진하기 위해 올해 시범 운영하는 '국외 전문가 초청사업(Visiting Scholar P.. 2022. 12. 22.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온라인 공개를 시작한 ‘고려도기’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성배)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하는 ‘난파선 출수 고려도기 종합 연구 및 활용’ 사업 그 중간 결과물로 《고려도기 자료집》을 발간하고선, 그것을 21일을 기점으로 고려도기 DB 온라인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렇다면 자료집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었는가? 930개소 유적에서 발견된 3천800점에 달하는 고려도기 자료를 총 4권에 담았으니 ▲ Ⅰ권 해양유적 ▲ Ⅱ권 분묘유적 ▲ Ⅲ권 생활유적 ▲ Ⅳ권 도자기 생산유적과 기종별 도기로 구성되니, 해양연구소라 해서 해양에서 건져낸 유물만 수록한 것만을 아님을 알겠다. 관련 발굴보고서와 유물, 사진 등은 연구소 누리집(https://www.seamuse.go.kr, 자료마당-고려도기 DB)에서 공개를 시작했다. 한국 관련 학계에서 .. 2022. 12. 22.
산송과 측량, 경계 조선시대 후기, 살인사건의 상당수가 산송, 즉 조상들 묏자리 때문에 발생했다는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남의 선산에 자기 조상의 묘를 슬쩍 묻거나 여기가 네 땅이냐 내땅이냐를 두고 발생하는 분쟁들로 이런 싸움은 가문의 명예를 걸고 치고받기에 살인사건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런 산송이 비일비재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부정확한 측량과 경계의 설정이었다. 산송이 발생하면 아래 그림과 같은 산도형을 그려 제출하는데 그림을 딱 보면 싸움이 안 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그려놓았던 것이다. 모호함은 약자와 강자가 모두 선호할 때가 많다. 약자는 모호함 속을 파고 들 기회를 보게 되고 강자는 그 모호함을 기화로 약자를 강박할 기회를 가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근대적 측량 기법이 도.. 2022. 12. 22.
신라왕경을 장안성 평원경에 끼워맞추지 마라! 신라 왕경 연구가 왜 계속 헛다리 짚는가 하면 동아시아 맥락이라는 그럴 듯한 시각에서 툭하면 장안성 갖대 대고 평원경 갖다 대서 그렇다. 신라 왕경은 혁거세 건국 이래 천년간 단 한 번도 이동없이 그 천년간 간단없이 변모했으며, 시종 개발 압력에 시달렸으니 그 획기가 법흥왕 무렵이었거니와, 이 시절이 되면 이미 경주 분지내는 왕릉조차 쓸 땅이 없어(이는 말할 것도 없이 묘지가 늘어나서가 아니라, 주거 개발 압력 때문이었다!!!! 이걸 모르니 헛소리가 남발한다.) 외곽으로 튀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천년간 옴짝달짝도 못한 채 편의에 따라 변모한 경주 왕경을 제정신 박힌 놈이면 걸핏하면 신왕조 개창했으니 새술은 새부대를 외치며 허허벌판 찾아나서 LH 동원해 북극성에다가 딱 중심을 맞춘 다음, 그것을 기점으로 .. 2022. 12. 21.
월성에서 전랑지로 이어졌으리라는 경주 신라왕경 남북대로 신라 왕궁 북문으로 들어가는 남북대로 찾았다 송광호 / 2022-12-21 10:07:54 폭 20m, 잔자갈 바닥에 깔아…대로 서북쪽에서 배수로도 확인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43576370173 신라 왕궁 북문으로 들어가는 남북대로 찾았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발천은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월성 북쪽과 계림을 지나 남천으로 흐르는 하천이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왕의 비인 알영이 발천에서 겪은 일화가 ′삼국유사 k-odyssey.com 이번 조사 성과는 앞 첨부한 기사를 참조했으면 하고, 우선 도판으로 이번 성과를 정리한다. 좀 생각할 여지가 있다. 신라 왕경론은 피력할 기회를 엿보겠다. #신라왕경 #월성 #남북대로 #발천 2022. 12. 21.
자기전에 쓰는 광개토왕비문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新]羅 以爲臣民” 여기서 신라 앞에 빠진 두글자는 저게 리듬감 있게 딝히려면 백잔 앞의 동사와 댓구를 이루는 동사 두 글자가 들어오는게 맞다. 저 자리는 "임나"라는 명사가 들어올 자리가 아님. 저기에 임나를 끼워 넣은거야 말로 황당한 소린데, 바로 앞에 "구시속민"이었던 나라도 "백잔신라"로 임나는 없다. 저기에 임나를 끼워 넣은것은 전적으로 왜가 자칭했다는 이 벼슬에 대한 미련 때문임. 自稱使持節·都督倭 百濟 新羅 任那 秦韓 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 저 두 글자에 임나가 들어와야 할 이유? 아무것도 없음. 하지만 저 빠진 두 자에 정작 나라이름 2자를 넣어서 앞에서 부터 읽어보면 얼마나 끊어 읽기가 힘든지 금방 안다. 저 두 글자는 명사.. 2022. 12. 20.
파리, 꼴랑 한 번 보고 골백 번 본 듯한 환상 미라보 다리 아래로 세느 강은 흐르고 우리 사랑도 흘러가네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 파리를 가 봤어야 세느강이 흐르는지 미시시피가 흐르는지 다리껄이 있는지 없는지? 흘러가는지 뭉칬는지 알지? *** 2014년 9월 3일에 나는 저리 뇌까렸다. 믿거나말거나 저때까지도 나는 파리는커녕 프랑스라는 나라도 밟은 적 없고 불란서는 고사하고 로마는커녕 이태리도, 아테네는커녕 그리스도 밟은 적 없다. 그런 내가 2015년 11월, 해직되고서 2년을 룰루랄라 탱자탱자하던 시절에 저들 나라 저들 도시를 난생 첨으로 돌았으니 그때 내가 생각한 저들 도시 여행시리즈 제목이 였으니 감격에 계워 그랬겠는가 억울해서 그랬겠는가? 나중엔 저 제목이 너무 직설적이라 .. 2022. 12. 20.
누에는 모든 사육동물의 미래 모습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 중에 누에는 "사육 동물"이라는 사실이 있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의식주 중 의衣를 담당한 인류사에 기여도도 만만치 않은. 원래 자연에 살아가던 나방의 한 종류였던 누에는 사람이 사육하기 시작하면서 날지도 못하게 되었고 사람 손을 빌어서야 번식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다른 사육동물인 개가 가장 오래된 사육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야생종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것을 보면, 이 정도로 사람에게 의존성이 강한 사육동물은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누에는 다른 사육동물보다 세대가 빨리 교체되어 내려가는데 그것이 이 동물의 변화를 촉진한 것 같고, 또 사육의 역사 자체가 만만치 않게 길다는 증거도 되겠다. 야생에서 생존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누에는 우리가 지금 키우는 모든 .. 2022. 12. 20.
[유성환의 AllaboutEgypt] 투탕카멘과 하워드 카터 (10) 투탕카멘의 사인 - 국왕살해의 범인은 누구인가 (2) 투탕카멘 Tutankhamun (재위 기원전 1336~1327) 사후 왕위에 오른 인물은 아이 Ay (재위 기원전 1327~1323)와 호렘헵 Horemheb (재위 기원전 1323-1295)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소년왕을 살해한 범인들일까요? 롱아일랜드 대학 Long Island University 선임연구원 밥 브라이어 Bob Brier (1943년-현재)는 투탕카멘을 시해한 범인으로 아이를 지목했습니다. 그러나 아이 역시 투탕카멘을 살해할 이유가 거의 없는 인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여러 정황 증거를 근거로 학자들은 아이를 아멘엠하트 4세/아켄아텐 Amenhotep IV/Akhenaten (재위 기원전 1352~1336) 어머니인 투야 Tuya 형제, 그리고 / 혹은 왕비 네테르타리 N.. 2022. 12. 19.
동학농민전쟁의 '농민'은 참으로 모호한 개념 당시 향촌에는 잔반, 향리, 전호, 노비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계층이 다른 지적수준을 가지고 존재했다. 이들 모두를 "농민"이라고 뭉떵그려 불러버리면 19세기 후반 상황에 대한 분석에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실제로 동학군에는 양반계급도 상당히 많이 합류 해있었고 잔반은 부지기수였다.) 개인적으로는 19세기 후반, 소위 중인, 잔반, 향리, 그리고 상층 노비, 부유한 상인 중 국제정세에 밝고 한국사회의 침로에 대해 명확한 방향의식을 지닌 이들이 왕조 멸망 이후를 준비하고 있었어야 한다고 보는데 실제로 바로 이 계층이 메이지 유신처럼 조선왕조 타도 이후 정권을 장악하고 발빠르게 국제정세에 대처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근대화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한국은 일본보다도 앙샹레짐의 타도가 이미.. 2022. 12. 19.
동학혁명 유감 이전에도 여기 글을 쓴바 있지만 필자는 소위 말하는 실학 중농학파는 근대화의 선구로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동학농민전쟁"의 주체인 "농민"이 새로운 세상을 열수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우리가 식민지화 하지 않고 일본의 메이지 유신처럼 구체제인 조선왕조가 타도되고 신정부가 출범해야 한다면 아마도 그 주체는 향리, 잔반 등 중 하층 식자들과 중인 그룹, 그리고 부상들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들은 일본사 메이지 유신의 주체인 하급무사와 부유한 죠닌 계급에 대응하는 것이라 보았다. 아마 조선왕조가 종식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면 이들이 주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앙샹레짐을 넘어뜨려야 할 역할을 해야 하는 이 사람들이 세상을 너무 몰랐다는것. 이들의 손에는 반 주술적인 믿음 대신 당.. 2022. 12. 19.
눈 내린 천년의 숲, 아산 봉곡사 이렇게 눈 내린 날, 봉곡사에 갈 거라고 미리 알았더라면 저는 이런 복장으로 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입구부터 약 15분 정도 올라가면 봉곡사라는 작은 절이 있는데요, 그 15분 올라가는 길이 소나무숲이라 풍경이 아주 예쁩니다. 겨울이라 눈까지 솔가지 사이로 소복히 쌓여 설경이 정말 멋졌습니다. 설경을 보며 천천히 올라가니, 소복소복 쌓인 눈들 사이로 절이 보입니다. 가볍게 산책하며 조용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아산 봉곡사에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봉곡사 충남 아산시 송악면 도송로632번길 138 봉곡사 : 네이버 블로그리뷰 364 m.place.naver.com 2022. 12. 18.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법금法禁의 해체와 국민의 탄생 인류 문화사는 국민國民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 추상명사이자 집합명사인 국민이 주권자로 설정된(혹은 상상된) 국가를 국민국가nation state라 한다.이 국민,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국민국가가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서구에선 논란이 적지 않은 줄로 안다. 한데 이 국민과 국민국가의 분기점이 명확히 갈라지는 곳으로 동아시아 문화권 만한 데가 없다.동아시아 전근대 법률 혹은 그에 버금 가는 각종 예제를 본 적이 있는가? 그 어디에도 개인을 말하지 않았으며 그 어디에도 그들의 권리를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전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계급의 일부였고 공동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언제나 집합명사였고 언제나 추상명사였다.그런 계급 그런 공동체의 규범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강박과 윽박만이 존.. 2022. 12. 18.
2023년 88차 미국고고학회 예비 프로그램 내년 미국고고학회 예비 프로그램입니다. 아직 초록은 없는데 프로그램도 볼만 합니다. 한번씩들 보시길. *** 편집자注 *** 이 행사를 주관하는 데가 미국고고학회 Society for American Archaeology (SAA) 라 그에 대해서는 아래 홈페이지를 참조하라. 이거 보고 한국고고학회 홈피를 보지는 마라. 짜증 나니깐 https://www.saa.org/ Home The SAA is an international organization dedicated to the research, interpretation, and protection of the archaeological heritage of the Americas. www.saa.org 참고로 이 SAA 발 최신 뉴스 중 하나로 SA.. 2022. 12. 18.
가야는 신라-백제보다 후진 사회인가? 가야가 멸망의 순간까지 신라-백제와 같은 중앙 집권국가의 체제를 지향하지 않았던 것은 그 사회가 이 두 나라보다 후진 사회였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고전 그리스는 어떤가? 폴리스로 나뉘어 통합되지 않은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나 페르시아보다 후진 사회인가? 가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사회를 지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세상의 사회가 발전할 때 한 가지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인류사회 발전에 보편적 경로란 없다. 그런 것은 존재할 리가 없음을 인더스 문명 유적을 보고 절감했다. 왕도 없고 지배자도 없는데 이렇게 거대한 유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보고 내가 지닌 상식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가를 느꼈다. 도대체 폴리스하고 가야 소국들 차이가 뭐란 말인가? 폴리스가 페르시아 전쟁 때 마라톤에서 패했다면 그.. 2022.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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