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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세 마리가 끄는 유럽 청동기시대 수레 혹은 전차? 두플랴야 전차 Dupljaja Chariot 라 이름하는 유물이라카르파티아 분지에서 출토한 기원전 1600~1200년 무렵 유럽 청동기시대 유산이라 한다. 저를 보면 화려한 복장을 한 여성 혹은 여신이 청둥오리(라틴어 아나스 플라티린초스Anas platyrhynchos)로 알려진 야생 오리들이 끄는 삼륜 전차를 타고 있다. 실제 타조 말고는 저런 마차를 끌 새는 없었을 테니, 현실 세계의 그것을 묘사한 듯하지는 않고, 무엇인가 상상하는 세계를 그리려 했을 것이다. 동아시아 문화를 보면 오리 같은 새가 신선 세계에서 사람을 태우고 나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하니, 그런 맥락과 연결할 수도 있을 성 싶다. 비록 새가 수레를 끄는 장면을 형상화했지만, 저걸 보면 저 시대 소나 말이 끄는 마차가 당시 유럽.. 2025. 2. 17.
후나 부족이 간다라에 남긴 은 그릇, 그 비밀은? The Hephthalite silver bowl discovered in the Swat region of Gandhara, Pakistan, dating from 460 to 479 CE, and now in the British Museum.이 헤프탈라이트Hephthalite 은제銀製 사발은 파키스탄 간다라Gandhara의 스와트Swat 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현재 브리티시 뮤지엄에 있다.제작 시점은 서기 460년부터 479년까지다.이미지는 서로 다른 두 후나 부족Huna tribes을 나타내며, 키다리테스Kidarites와 알콘족Alchons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 기간을 암시한다. 이 그릇의 연대는 키다라태스 족 통치가 끝나고 인도 북서부의 알콘 족이 통치하기 시작한 서기 460~479년으로 거슬.. 2025. 2. 17.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전투가 남긴 로마 사각 방패 1930년대에 고고학도들이 현대 시리아에 있는 고대 로마 도시 두라-에우로포스에서 뜻밖의 발견을 했다.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유일한 손상되지 않은 로마 군단의 방패다.이 발견은 나무와 가죽으로 만든 방패가 시간이 지나도 거의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에 로마 군사 생활에 대한 전례 없는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스쿠툼scutum으로 알려진 이 커다란 직사각형 방패는 로마 방어의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전투에서 유명한 테스투도testudo 대형을 형성하는 데 사용되었다.이 방패를 그토록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보존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한 상황이다. 서기 3세기에 사산 왕조가 포위 공격을 가하는 동안 로마 수비수들은 성벽을 강화하기 위해 방패를 포함한 장비들을 묻었다.빠른 매몰과 건조한 사막 기후가 조합함으로써 방.. 2025. 2. 17.
로마가 상기한 그리스, 너 자신을 알라 이건 꽤 알려진 서기 1세기 무렵 로마시대 모자이크화로로마 테르미니역 광장 건너편 레푸플리카 광장과 인접한 그 Terms of Diocletian 국립 로마박물관 모자이크실 비름빡에 박혔으니 본래 출토 지점은 로마 Via Appia의 Convento di San Gregorio, 그레고리 성당이라 한다.저것이 현재 걸린 건축물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가 25미터에 달하는데 저 분은 대략 바닥 기준 5미터 정도 높이에 박아놨지 않았나 싶다.저 문자는 그리스어라 Γνῶθι σαυτόν“Know yourself” 너 자신을 알라 이런 뜻이라 한다.저 말을 우리 세대는 소크라테스 말인가로 배웠는데 내 기억 착란일 수도 있는데 암튼 그리스 기반 철학문구? 혹은 경구라 생각하면 되겠다.이전에 한 번 소개한 적 있다.. 2025. 2. 17.
경악스런 신석기 습지 통나무 포장도로 무슨 농경 유적 아닌가 하겠지만 꼭 엇나갔다 할 수는 없는 것이 놀랍게도 신석기시대 포장도로인 까닭이다.그때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나올 수는 없으니 또 저곳은 물이 나는 습지라 나무를 깔아 포장재로 썼다.네덜란드 드렌테Drenthe 주 에먼Emmen 이라는 도시 인근 뉴도르드레흐트Nieuw-Dordrecht 라는 마을에서 1980년대에 집중적으로 발굴된 신석기시대 나무 습지 도로[wooden peat road].이 발굴은 이미 아래 글에서 우리가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했다.네덜란드 습지가 토해낸 신석기 나무고속도로저 사진은 당시 소개하지 못했는데 지금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랑 비교해도 손색 없다.당시는 논문 중심으로 정리했으니 요약 삼아 한층 일목요연하게 추린다.네덜란드 Nieuw-Dordrecht 근처 신석기.. 2025. 2. 17.
직필直筆의 끝은 처참한 인간본성 흔히 언론을 향해 직필하라는 요청이 빗발친다. 진실을 알고 싶다 아우성이다. 이조차 요새는 당파성이 아주 강해서 그 의미는 내가 보건대 심각히 변질해서 내가 보고 싶고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라는 강요 윽박에 다름 아니지만, 그런 당파성이 상대적으로 옅을 때도 그네가 말하는 진실 혹은 팩트는 있을 수 없다. 직필 혹은 철저한 팩트 기술이 가능할 거라 보는가? 전제 자체가 틀려먹은 형용모순인 까닭에 영원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오직 내가 보고 싶은 그림만 있을 뿐이며 그 그림은 진실이 아니라 일루션이다. 물론 저 자체 의미를 내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저에 주린 시대가 있었으니 그런 시대는 아예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은폐되는 일이 비일비지재했다.심지어 그런 일이 초래한 원인은 물론.. 2025. 2. 17.
신라시대 공무원 규모 19세기 조선후기를 살다간 이유원李裕元[1814~1888]이 정리한 수필집 임하필기林下筆記 제12권에는 신라 관원官員의 숫자를 논한 글이 있으니 헌덕왕憲德王 3년(811)에 임금이 비로소 평의전平議殿에 나와서 정사를 들었다. 이때 나라의 관원들이 매달 여섯 번씩 참여하였는데, 문반文班이 710원員이고 무반武班이 540원이었다. 여섯 번 절을 한 다음 춤을 추면서 물러가다가 마루가 끝나는 계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걸어서 나갔다. 나라 사람들도 지위가 낮은 자가 높은 자를 보면 역시 이와 같이 하였다. 新羅官數 憲德王三年。始御平議殿。聽政。國官月六參。文班七百十員。武班五百四十員。六拜。舞蹈而退。至堂級。乃步。國人卑者見尊者。亦如之。 저것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언뜻 찾지 못했다. 삼국사기 헌덕왕본기에서는 그 재위 3.. 2025. 2. 17.
마라토너로 순치된 조선인, 그 슬픈 자화상 도로가 없고 그런 까닭에 이용할 마뜩한 교통편도 없어 오로지 발품을 팔아야 하는 전근대 조선인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몸으로 때우기였으니, 이런 민족이 살아남고자 버둥치기 위해서는 죽어나사나 걷거나 달려야 했다. 이른바 줄행랑이 주특기일 수밖에 없으니 조선시대에 마라톤이 있었다면, 요새 에티오피아 같은 아프리카에서 독식하는 마라톤은 조선인이 독식했으리라 본다. 19세기를 살다간 박물학자 이규경李圭景(1788~1863)이 찬술한 방대한 분류식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보면 이 이야기가 내가 하는 이야기가 거의 그대로 보인다. 그 경사편經史篇5 논사류論史類2 풍속風俗을 보면 아예 소제목 자체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달리는 데 대한 변증설[東人善走辨證說] 이라는 짧은 글 한 편이 있으니 .. 2025. 2. 17.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보유) 성현이 본 사금갑 지금까지 우리는 사금갑 이야기는 판본이 여러 개임을 봤다. 더욱 간단히 말하면 삼국유사가 유일본이 아님을 확인했다. 사금갑 이야기는 버전이 여러 개였다. 그 일환으로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이 말한 사금갑 이야기가 독특함을 이야기했다. 그에서는 왕비와 그의 내연남 내전 분수승이 복주된 이유가 반란, 곧 소지왕을 시해하려 했기 때문임을 지적했다. 한데 내가 빠뜨린 또 하나의 사금갑 이야기가 있다. 그 이전 세대 사가정 서거정 뒤를 이어 성종~연산군 연간 조선 전기 문단의 총수로 군림한 성현成俔(1439~1504) 또한 사금갑 이야기를 남겼으니, 어떤 점에서 그가 말한 사금갑은 다른 사금갑 이야기와 만나며 갈라지는가? 그의 불후한 수필집 용재총화慵齋叢話 권 제2에 보이는 한 토막이다. 신라왕[소지왕.. 2025. 2. 17.
사초史草는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사초는 간단히 말해 실록을 편찬하는 원재료다. 그런 사초가 초래하는 각종 스캔들은 나라를 말아먹기도 하니, 근자 가장 대표 케이스가 박근혜 시절 청와대 수석을 지낸 안종범 업무수첩이다. 알려지기로 전 57권에 달한다는 이 수첩은 청와대 재직시절 대통령 지시 사항 등을 메모한 것이다. 또 이런 사초류로 이번 계엄 탄핵 정국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인사들 메모가 등장하니, 진실성 여부는 차치하고 이것이 바로 사초다. 이 사초는 공문서 성격을 지니기도 하지만, 안종범 수첩이 극명하게 보여주듯이 사적인 비망록 성격이 강해서, 조선시대에도 이걸 개인이 보관했다. 물론 공식으로 제출하는 문건은 따로 있었지만, 이건 세탁을 거친 검열문건이었다. 조선시대 이 사초로 나라를 흔든 사건으로 흔히 김일손에서 초래한 김종직 사건.. 2025. 2. 17.
에콰도르 임산부 토막 시신이 엘니뇨 희생제물? 아래 기사에 의거한다. Remains of dismembered pregnant woman in Ecuador may have been sacrificed to thwart El Niño by Dario Radley February 2, 2025https://archaeologymag.com/2025/02/remains-of-dismembered-pregnant-woman-in-ecuador/ 에콰도르에서 토막 난 임산부 유해가 엘니뇨El Niño를 막기 위해 희생되었을 수도 있다는 연구성과가 제출됐다. 에콰도르 고고학자들은 한 매장지에서 천년 전쯤에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젊은 임산부 유해 1구를 발굴했다.에콰도르 해안 Buen Suceso에 있는 이 매장지는 만테뇨Manteño 시대(CE 650-1.. 2025. 2. 16.
남효온이 증언하는 어우동 스캔들 한 토막 할매가 된 지금도 곱디고움을 자랑하는 여배우 이보희는 이른바 리즈 시절 어우동이었다. 이제 어우동 이보희를 기억하는 세대도 서산 노을 저편으로 기울어져 가는 형국이라 이 어우동은 그 조선시대 사족, 그러니깐 어엿한 사대부 가문 여식으로 익히 알려졌듯이실존인물이며 당대를 섹스 스캔들로 밀어넣어 그에 걸려 패가망신한 이가 한둘이 아니다.   조선 전기를 살다간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1454~1492)이 성종년간에 엮은 이런저런 야담집 추강냉화秋江冷話에는 어우동과 관련한 논급이 있다.어우동은 생몰년이 1440~1480년으로 확인되니 남효온한테는 막내고모뻘이었다.  경자년에 사족士族의 딸 어우동於宇同이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와 간통한 선비가 그 수를 셀 수 없이 많았다. 그 말이 생원 이승언李承彦에게 미쳐 그.. 2025. 2. 16.
풍수설을 돈독히 믿은 한산이씨, 그리고 그 사위 한음 이덕형 조선 중기를 살다간 인물로 이덕형李德泂이란 이가 있다. 예조판서와 판의금부사, 우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字가 원백遠伯이요, 호가 죽천竹泉이라, 그의 중국 사신행 견문록 죽천행록竹泉行錄이 2001년 세상에 공개되기도 했다.1566년, 명종 21년에 태어나 1645년, 인조 23년에 사망했다. 저 시대 이덕형이라 하면 자칫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이덕형과 혼동한다. 우리가 잘 아는 이덕형은 한자를 李德馨이라 써서, 李德泂이라는 죽천과는 다른 사람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덕형은 字를 명보明甫라 하며, 한음漢陰은 호다. 죽천 이덕형 보다는 다섯 해 먼저인 1561년, 명종 16년에 태어나 각종 고관대작은 다 해 먹었으니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을 역임하고선 1613년, 광해군 5년에 사망한다. 따라서 죽천 .. 2025. 2. 16.
벼락출세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두 가지 요새 점집 혹은 점쟁이로 말이 많으나,주변을 보면 벼락출세한 사람들, 혹은 이런저런 간난을 딛고서 갑부 재벌이 되었거나 혹은 권력 정점에 선 사람들이 그러고 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 두 가지가 있으니1. 제사 정비 2. 점보기 가 그것이다. 보통 가문 내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1의 경우가 심각하게 대두하는데, 족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 성공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대대적인 집안 제사 정비다. 그리고 보통 이런 집에서는 가부장 권위가 거의 절대로 군림하는데, 그 안방 마님은 이때부터 평소 입지도 않던 한복 차림으로 주방을 들락거리면서 며느리들을 단속하기 시작하며 바깥양반은 자식들을 단도리치게 되니, 매일 새벽 시간을 정해 아침 식사시간을 강제하게 된다. 이른바 유교적 가부장제가 확립하기 시작하는 것.. 2025. 2. 16.
조선시대 육조 중 주지육림 꽃보직은 예조 꽃 보직 기준은 그때나 지금이나 간단해서하는 일은 없고 누리는 권리는 많은 자리다.흔히 기자를 일러 "기사만 쓰지 않으면 이보다 더 좋은 직업 없다" 하거니와 이를 참조하면 좋다. 조선시대 중앙정부 조직은 위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세 정승이 있고 그 아래 육조가 배치되었으니 세 정승 중에서도 영의정은 말이 좋아 일인지하 만인지상이지 꿔다본 보릿자루였다. 좌의정과 우의정이 육조 중 세 부서를 농가서 먹었으나, 이것도 실상 일 터지면 육조 판서는 임금과 직거래 하고, 또 그 판서라는 사람들도 다 한 가닥씩 왕과 연줄이 있어 정승 눈치도 안 봤다. 그렇다면 이호예병형공 6조 중 꽃 보직 부서는 어디였을까?조선 중기 때 문신 박동량朴東亮(1569~1635)이라는 사람이 엮은 야담 플러스 사화집인 기재잡기寄齋雜.. 2025. 2. 16.
실시간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작동한 한양과 북경 계속 인용하는 조선 중기 윤국형尹國馨(1543∼1611) 찬 갑진만록甲辰漫錄에 보이는 일화 한 토막이다. 조금 길지만, 내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는 위선 전문을 훑어야 한다. 한국고전번역원 번역 서비스를 조금 손질한다. ○ 임인년 한여름에 내가 황강黃崗으로 부모님을 뵈러 갔을 적에 성영成泳 영공令公이 북경北京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만나 이야기하던 중에 그가 말하기를, “조정(명 나라 조정)에 있을 적에 새로 간행한 조선시선朝鮮詩選을 보았는데, 바로 오명제吳明濟가 편찬한 것이었소. 그 안에는 영공께서 오명제와 작별하며 지은 율시 한 수가 있었소.”라고 했다. 가만 생각하니 내가 무술년 서울에 있을 때 어느 (명나라 파병) 장군 막하幕下인지는 모르나, 오명제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문장에 능한.. 2025. 2. 16.
라스코 동굴과 그 벽화 그 유명한 라스코 동굴 Lascaux Cave과 그 벽화다.이 동굴 벽화는 볼수록 부럽고, 볼수록 경이스럽기만 하다.구석기시대에 저런 회화작품을, 것도 동굴 비름빡도 아니요 천장에다 남기다니? 같은 구석기라는데 대체 왜 이리 다른가?나는 이 문제도 구석기학도들이 천착해야고 본다.저짝은 왜 저리 이른바 예술품에 목을 매다시피 했는데 이쪽은 왜 이 모양인가?인도네시아에서도 구석기 벽화나왔다매?더 오래됐다매?한데 한반도는 대체 왜 이 모양인가?각설하고 라스코 동굴은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구석기 유적으로, 도르도뉴Dordogne 지역 몽티냑Montignac 마을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선사시대 동굴 예술의 가장 유명한 사례를 보고한다.거의 600점에 달하는 그림(대부분 동물 그림)이 동굴 벽 내부를 놀라운 구.. 2025. 2. 16.
신이 된 소들 소 Cattle 는 일부 종교와 신화에서 존재감이 두드러진다.이처럼 전 세계의 수많은 민족은 한때 황소를 신성한 것으로 기렸고 지금도 그렇게 간주하는 문화권이 많다.수메르 종교 Sumerian religion 에서 마르둑 Marduk 은 "우투 Utu 의 황소"다. 힌두교에서 시바 Shiva 신이 타고 다니는 동물이 황소 난디 Nandi 다.신성한 황소는 황소자리 Taurus 에서 살아남았다.메소포타미아에서처럼 달이든 인도에서처럼 태양이든 황소는 뉴에이지 New Age 문화에서 현대적 언급뿐만 아니라 다양한 다른 문화적, 종교적 화신 incarnations의 주제다.오록스 Aurochs 라는 지금은 멸종한 소는 프랑스 라스코 Lascaux 와 리베르농 Livernon 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많은 구석기 .. 2025. 2. 16.
학문은, 전문가는 So what에 답해야 한다 앞서 신동훈 교수께서 상식에 겸허해야 하는 전문가를 말하면서 "사실 전문가에게 가장 무서운 질문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나오지는 않는다"고 갈파했거니와 비슷한 맥락, 혹은 같은 맥락에서 나는 이른바 전문가 집단을 향해, 내가 말하는 이 집단은 주로 고고학에 집중했거니와 그들을 향해 저 대답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주구장창했다. 비단 고고학만이 아니라, 학문 전 분야를 막론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한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저 방구석, 카페 구석, 연구실 구석에서 이것이 내 연구라고 독자를 향해 발신하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보건대, 도대체 이걸 이것이 왜 연구인가 하는 반론을 제기하는 글이 천지라이는 간단히 말해 저 평범하지만, 어쩌면 가장 묵직한 물음, 곧 So what을 답변하지 못하기 때.. 2025. 2. 16.
눈 온 뒤 파주 장릉 Jangreung, tomb of King Injo and his wife of the Joseon dynasty(1392~1910) 파주 장릉이다.  어찌한 인연이었는지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천지사방 싸돌아다니던 그 무렵이라11년 전 오늘인 2013년 2월 16일, 나는 저곳을 찾았다. 직전 제법 많은 눈이 온 듯 수북한 상태다. 이젠 그런 열정도 많이 사그라들고 말았다. 아니다 정확히는 더한 새로움을 찾아나섰다 하는 편이 나을 법하다. 2025. 2. 16.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 동남쪽을 나는 새? 후한 말기 문단을 주름잡은 채옹蔡邕(133~192)한테는 채염 蔡琰이라는 딸이 있었으니, 그가 겪은 간난은 참말로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으니 이 이야기는 훗날 혹 다른 기회를 엿보기로 하고, 이 딸 역시 아버지에 견줄 만한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으니 그가 지었다고는 하나, 그 작자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논란이 많은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라는 유명한 시가 있으니, 본래 이 시는 제목이 없지마는 그 첫 구를 따라서 이리 이름한다. 그 첫 대목은 이렇다.   孔雀東南飛       五里一徘徊 5리마다 한번씩 서성이네   十三能織素 열셋에 비단짤 줄 알았고十四學裁衣 열넷엔 옷 만들기 배웠네 내가 늘 의심하는 대목은 저 첫 구절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라 이는 공작孔雀이라는 동남쪽을 날아간다[飛]는 뜻이거니와문제는 이에서 말하는.. 2025.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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