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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등지(福登智) 같은 진흥왕 시대 금석문들인 황초령비와 마운령비에 보이는 복동지(福冬知) 혹은 복동지(福冬智) 대아간(大阿干)과 발음과 표기로 보아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렇다면 561년 건립한 창녕비에서는 사척간(沙尺干)이자 군주(軍主)로 나오니 7년이 지나 황초령비와 마운령비가 건립될 당시에는 대아간(대아찬)으로 승진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진평왕 부인 김씨 마야부인(摩耶夫人) 아버지인 갈문왕 복승(福勝)과도 활동연대가 대략 겹치는 것으로 보아 동일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561년, 진흥왕22) :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이때 (수행한 이로)…사방군주(四方軍主)로는 비자벌군주(比子伐軍主) 사탁(沙喙)의 등▨▨지(登▨▨智) 사척간(沙尺干)과 한성군.. 2018. 3. 3.
죽부지(竹夫智)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561년, 진흥왕22) :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이때 (수행한 이로)…사방군주(四方軍主)로는 비자벌군주(比子伐軍主) 사탁(沙喙)의 등▨▨지(登▨▨智) 사척간(沙尺干)과 한성군주(漢城軍主) 탁(喙)의 죽부지(竹夫智) 사척간(沙尺干)과 비리성군주(碑利城軍主) 탁(喙)의 복등지(福登智) 사척간(沙尺干)과 감문군주(甘文軍主) 사탁(沙喙)의 심맥부지(心麥夫智) 급척간(及尺干)이다. 2018. 3. 3.
말득지(末得智)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561년, 진흥왕22) :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이때 (수행한 이는)…한지▨▨(漢只▨▨)의 굴진지(屈珎智) 대일벌간(大一伐干)과 ▨탁(▨喙)의 ▨▨지 (▨▨智) 일벌간(一伐干),…탁(喙)의 봉안지(鳳安智) ▨▨▨이며, ▨▨등(▨▨等)으로는 탁(喙)의 거칠부지(居七夫智) 일척간(一尺干)과 …사탁(沙喙)의 감력지(甘力智) ▨▨간(▨▨干)이며, ▨대등(▨大等)으로는 탁(喙)의 말득지(末得智) ▨척간(▨尺干)과 사탁(沙喙)의 칠총지(七聰智) 급척간(及尺干)이다. 2018. 3. 3.
감력지(甘力智)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561년, 진흥왕22) :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이때 (수행한 이는)…한지▨▨(漢只▨▨)의 굴진지(屈珎智) 대일벌간(大一伐干)과 ▨탁(▨喙)의 ▨▨지 (▨▨智) 일벌간(一伐干),…탁(喙)의 봉안지(鳳安智) ▨▨▨이며, ▨▨등(▨▨等)은 탁(喙)의 거칠부지(居七夫智) 일척간(一尺干)과 …사탁(沙喙)의 감력지(甘力智) ▨▨간(▨▨干)이다. 2018. 3. 3.
거칠부지(居七夫智) 진흥왕 시대 중신(重臣). 마운령비에는 ‘居朼夫智’로 보이고, 『삼국사기(三國史記)』권44 거칠부전(居柒夫傳)에는 ‘居柒夫’ 혹은 ‘荒宗’으로 표기됐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561년, 진흥왕22) :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이때 (수행한 이는)…한지▨▨(漢只▨▨)의 굴진지(屈珎智) 대일벌간(大一伐干)과 ▨탁(▨喙)의 ▨▨지 (▨▨智) 일벌간(一伐干),…탁(喙)의 봉안지(鳳安智) ▨▨▨이며, ▨▨등(▨▨等)은 탁(喙)의 거칠부지(居七夫智) 일척간(一尺干)과 …사탁(沙喙)의 칠총지(七聰智) 급척간(及尺干)이다. 거칠부 2018. 3. 3.
봉안지(鳳安智)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561년, 진흥왕22) :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이때 (수행한 이는)…한지▨▨(漢只▨▨)의 굴진지(屈珎智) 대일벌간(大一伐干)이고, ▨탁(▨喙)의 ▨▨지 (▨▨智) 일벌간(一伐干)이고,…탁(喙)의 봉안지(鳳安智) ▨▨▨이고, …사탁(沙喙)의 칠총지(七聰智) 급척간(及尺干)이다. 2018. 3. 3.
도하지(刀下智)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561년, 진흥왕22) :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이때 (수행한 이는)…한지▨▨(漢只▨▨)의 굴진지(屈珎智) 대일벌간(大一伐干)이고, ▨탁(▨喙)의 ▨▨지 (▨▨智) 일벌간(一伐干)이고,…사탁(沙喙)의 도하지(刀下智) 급척간(及尺干)이고, …사탁(沙喙)의 칠총지(七聰智) 급척간(及尺干)이다. 2018. 3. 3.
소술지(所述智)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561년, 진흥왕22) :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이때 (수행한 이는)…한지▨▨(漢只▨▨)의 굴진지(屈珎智) 대일벌간(大一伐干)이고, ▨탁(▨喙)의 ▨▨지 (▨▨智) 일벌간(一伐干)이고,…탁(喙)의 소술지(所述智) 사척간(沙尺干)이고, …사탁(沙喙)의 칠총지(七聰智) 급척간(及尺干)이다. 2018. 3. 3.
이망지(尒亡智) 창녕비에 등장하는 진흥왕시대 신라 관료. 당시 사척간으로 진흥왕을 수행해 창녕 지방에 갔다. 기타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561년, 진흥왕22) :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이때 (수행한 이는)…한지▨▨(漢只▨▨)의 굴진지(屈珎智) 대일벌간(大一伐干)이고, ▨탁(▨喙)의 ▨▨지 (▨▨智) 일벌간(一伐干)이고,…탁(喙)의 이망지(尒亡智) 사척(沙尺)이고, …사탁(沙喙)의 칠총지(七聰智) 급척간(及尺干)이다. 2018. 3. 3.
홀리지(忽利智) 창녕비에만 등장하는 진흥왕 시대 신라 관료지만 기타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561년, 진흥왕22) :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이때 (수행한 이로는)…한지▨▨(漢只▨▨)의 굴진지(屈珎智) 대일벌간(大一伐干)과 ▨탁(▨喙)의 ▨▨지 (▨▨智) 일벌간(一伐干)과…사탁(沙喙)의 홀리지(忽利智) 일▨▨(一▨▨),…사탁(沙喙)의 칠총지(七聰智) 급척간(及尺干)이 있다. 2018. 3. 3.
벌부지(伐夫智)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561년, 진흥왕22) :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이때 (수행한 이는)…한지▨▨(漢只▨▨)의 굴진지(屈珎智) 대일벌간(大一伐干)이고, ▨탁(▨喙)의 ▨▨지 (▨▨智) 일벌간(一伐干)이고,…사탁(沙喙)의 벌부지(伐夫智) 일길간(一吉干)이고,…사탁(沙喙)의 칠총지(七聰智) 급척간(及尺干)이다. 2018. 3. 3.
도설지(都設智) 단양 적성비에는 ‘추문촌 당주 도설지 급간지(鄒文村幢主 道設智 及干支)'라는 문맥으로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9 경상도 고령현조가 인용한 최치원의 승려 전기물인 『석이정전(釋利貞傳)』에는 대가야 마지막 왕 도설지가 등장한다. 활동 연대로 보아 동일 인물로 보아야 할 듯 싶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561년, 진흥왕22) :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이때 (수행한 이는)…한지▨▨(漢只▨▨)의 굴진지(屈珎智) 대일벌간(大一伐干)이고, ▨탁(▨喙)의 ▨▨지 (▨▨智) 일벌간(一伐干)이고,…사탁(沙喙)의 도설지(都設智) 사척간(沙尺干)이고,…사탁(沙喙)의 칠총지(七聰智) 급척간(及尺干)이다. (보완 요) 2018. 3. 3.
소리부지(小里夫智)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561년, 진흥왕22) :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이때 (수행한 이는)…한지▨▨(漢只▨▨)의 굴진지(屈珎智) 대일벌간(大一伐干)이고, ▨탁(▨喙)의 ▨▨지 (▨▨智) 일벌간(一伐干)이고,…탁(喙)의 소리부지(小里夫智) ▨▨간(▨▨干)이고,…사탁(沙喙)의 칠총지(七聰智) 급척간(及尺干)이다. 2018. 3. 3.
칠총지(七聰智)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561년, 진흥왕22) :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이때 (수행한 이는)…한지▨▨(漢只▨▨)의 굴진지(屈珎智) 대일벌간(大一伐干)이고, ▨탁(▨喙)의 ▨▨지 (▨▨智) 일벌간(一伐干)이고,…사탁(沙喙)의 무력지(武力智) 잡간(迊干)이고,…사탁(沙喙)의 칠총지(七聰智) 급척간(及尺干)이다. 2018. 3. 3.
무력지((另力智) '另'이라는 글자는 《설문해자》에는 보이지 않고, 《강희자전》에서는 《오음집운(五音集韻)》을 인용해 "랑(郞)과 정(定)의 반절이다. 음(音)은 령(令)이다. 나뉘어 산다, 쪼개서 연다는 뜻이다. 생각건대 另자 아래는 힘 력(力)자라, 아래에 칼 도(刀)자와는 다르다. 아래 보이는 쓰는 '叧'자 주석을 보라(切郞定切,音令。分居也,割開也。◎按另字下从力,與刀異。詳下叧字註。)고 했다. 만약 저 글자가 '叧'이라면, 같은 《강희자전》에서는 《집운(集韻)》을 인용해 '古와 瓦의 반절이다. 음은 과(寡)이다。《옥편(玉篇)》에서 이르기를 '사람 고기를 갈라서 그 뼈는 둔다'는 뜻이다'고 했다。《집운(集韻)》에서는 冎, 剮와 같다고 했다"(古瓦切,音寡。《玉篇》剔人肉,置其骨。《集韻》與冎剮同。)고 한다. 이를 따른다면 저.. 2018. 3. 3.
굴진지(屈珎智) 창녕 진흥왕 척경비에 보이는 인물이다. 그 앞 부분 두 글자가 지워져 저 표기가 풀네임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굴진지가 이름이라면 삼국사기 거칠부전(居柒夫傳)에 보이는 대각찬(大角湌) 구진(仇珍)과 음이 비슷한 데다가 관위도 같다는 점에서 동일인물로 간주하는 견해가 많다. 거칠부전에 의하면 구진은 진흥왕 12년(551년), 신라가 백제와 연합해 한강유역 고구려를 칠 때 신라군 수뇌진 8장군 중 한 명이다.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561년, 진흥왕22) : 신사년(辛巳年) 2월 1일에 세웠다.…이때 (수행한 이는)…한지▨▨(漢只▨▨) 굴진지(屈珎智) 대일벌간(大一伐干)이고, ▨탁(▨喙)의 ▨▨지 (▨▨智) 일벌간(一伐干)이고,…사탁(沙喙)의 칠총지(七聰智) 급척간(及尺干)이다. cf.. 2018. 3. 3.
관직과 관위, 중앙과 지방의 길항(拮抗) 삼국사기 제38권 잡지 제7(三國史記 卷第三十八 雜志 第七) 직관 상(職官上) 서두에서는 신라 직관 체계 흐름을 다음과 같이 개술한다. 신라는 벼슬 호칭이 시대에 따라 바뀌어 그 이름이 같지는 않다. 이에는 중국과 동이 명칭이 뒤섞였으니[唐夷相雜], 예컨대 시중(侍中)이나 낭중(郞中)과 같은 것은 모두 중국[唐]의 벼슬로 그 의미를 고찰할 수 있지만, 이벌찬(伊伐飡)이나 이찬(伊飡)과 같은 것은 모두 동이의 말로써 그렇게 이름하게 된 연유를 알 수가 없다. 처음 이들 벼슬을 두었을 때는 틀림없이 관직마다 일정하게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 위계에 따라 정한 인원이 있었을 것이니, 그렇게 함으로써 그 높음과 낮음을 변별하고 그 능력의 크고 낮음에 따라 대우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문헌.. 2018. 3. 3.
Gyeongju and Silla Three-storied Stone Stupa and Tombs at Seo-ak-dong Area, Gyeongju, Gyeongsangbukdo ProvinceThe Budhist stupa is believed erected during the Unified Silla dynasty period (668~935 A. D.), the tombs had been established since the 6th century for the ruling class of the Silla Kingdom. 慶州西岳洞三層石與西岳洞古墳群 / 경주 서악동삼층석탑과 서악동고분군 2018. 3. 3.
Bulguksa Temple Bulguksa Temple, Gyeongju, Gyeongsangbukdo Province, Korea 慶州佛國寺 / 경주 불국사 Inscribed on the World Heritage list along with Seokguram Grotto in 1995 2018. 3. 3.
모도(牟都)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동성왕본기 : 23년(501) 겨울 10월에 왕이 사비(泗)의 동쪽 벌판에서 사냥했다. 11월에 웅천(熊川)의 북쪽 벌판에서 사냥했고, 또 사비 서쪽 벌판에서 사냥하다가 큰 눈에 막혀 마포촌(馬浦村)에서 묵었다. 이보다 앞서 왕이 백가(苩加)에게 가림성을 지키게 했으나 백가(苩加)는 가지 않으려고 병을 핑계 삼아 사양하고자 했으나 왕이 허락치 않으니 이 때문에 왕을 원망하다가 이 때 사람을 시켜 왕을 칼로 찔렀다. 12월에 이르러 훙하니 시호(諡號)를 동성왕(東城王)이라 했다. ☞동성왕(東城王) 2018. 3. 2.
모대왕(牟大王)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동성왕본기 : 22년(500) 봄에 임류각(臨流閣)을 궁궐 동쪽에 세웠는데 높이가 다섯 장(丈)이었으며, 또 못을 파고 진기한 새를 길렀다. 간언하는 신하[諫官]들이 반대하며 상소(上訴)하였으나 응답을 하지 않았고[不報], 또 간언하는 자가 있을까 하여 궁궐 문을 닫아버렸다. 논한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로우며,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리나 품행에는 이롭다. 이로 말미암아 옛날의 현명한 임금은 자기를 겸허하게 하여 정사를 물었고, 얼굴을 부드럽게 하여 간언을 받아들이면서도 오히려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감히 간쟁할 수 있는 북[敢諫之鼓]을 달고, 비방하는 나무[誹謗之木]를 세우기를 마지 않았다. 지금 모대왕(牟大王)은 간하는 글이 올라와도 살펴보지 .. 2018.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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