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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388

생물인류학과 고병리학을 기억해 주길 필자가 한국의 발굴현장을 쫒아다니며 작업한 것이 대략 올해로 20년 정도 되고, 이제 알려드린 바와 같이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인데, 고병리학 연구가 결코 고고학의 변두리 어디쯤 위치하는 잉여의 그 무엇이 아니라 고고학계 내에서 본격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는 주제임을 필자는 아래 두 작업에서 편집을 통해 보여드리고자 했다. 考古学ジャーナル 2021年8月号 古病理学研究と考古学 都市化の古病理学 (季刊考古学・別冊44) 이는 일본에서 출판된 것들이지만, 필자가 의학이나 영문 학술지에 출판했던 다른 어떤 논문들보다 왜 생물인류학과 고병리학을 우리나라 고고학에서 포괄하여 나가야 하는 주제인지 우리나라 관련학계에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웃 나라가 이리 생각한다 해서 우리도 따라서 그래야 할 .. 2023. 12. 25.
필자가 보는 5-6세기 독립체 마한론이 가진 함의 김단장께서 자세히 써 주셨기 때문에 간단히 필자의 생각만 보충한다. 1. 필자가 이해하는 바 마한론, 특히 5-6세기의 독립적 정치체 마한론은 현지의 발굴결과 독자성이 보인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 이유는 남아 있는 문헌과 기왕에 현지에서 보고된 내용 중에 반드시 해명하지 않는 부분이 독립적 정치체 마한을 주장한다면 따라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중요한 것은 문제가 되는 부분은 "5-6세기"의 독립적 정치체 마한의 부분이다. 당연히 시대가 올라가면 독립적 정치체 마한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태가 5-6세기까지도 과연 유지되었겠는가 하는게 문제겠다. 5-6세기까지 마한을 독립적 정치체로 묘사한 문헌 기록은 앞서 김단장꼐서 지적한 것처럼 일본의 임나일본부.. 2023. 12. 25.
한반도에도 진령회하선이 연장되어 있었다 중국사에 있고 지금도 있다는 진령회하선. 한반도에도 있었다고 본다. 빨간색이 지금의 진령 회하선이다. 이 선을 동쪽으로 확장시켜 보면 거기가 도작과 잡곡의 경계였으리라 본다. 한반도에 진령 회하선을 설정할 수 있을까? 2023. 12. 24.
도작사회로만 보아온 한국사 현대 한국사 (고고학 포함)의 연구는 일본학계의 영향이 매우 짙다. 필자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으니 식민사관 운운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라, 일본은 농경이 도입 된 초기, 잡곡에 기반한 농경사회가 없었다. 한국사는 다르다. 대략 청천강-원산만 이남은 도작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 이북의 부여, 고구려, 옥저 등은 완연한 잡곡기반의 농경사회였던 듯 하다. 한국사회가 농경사회의 발전을 단순히 도작사회의 입장에서만 살피는 것은 일본 학계의 시각 때문이라고 본다. 일본 측에서 자국 농경사회의 원류로 도작사회론을 짜고 그 시각에 따라 한국상고사를 보기 때문에 한국사 전체를 우리는 마찬가지로 도작사회의 시각에서 보고 있지만 실제로 한국상고사의 북쪽 절반은 엄연한 잡곡기반의 농경사회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 2023. 12. 24.
고구려인이 쌀밥을 먹었는지도 해명이 안된 지금 고구려인과 부여인이 쌀밥을 먹었을까 잡곡을 먹었을까 잡곡을 먹었다면 무슨 곡식을 먹었을까 이것을 해명하는 것이 고구려가 전성기에 어디까지 진출했느니, 고구려 철기군이 몇 만이라느니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물론 밝혀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자료가 많지 않을 테니. 하지만 최소한 이 문제를 계속 묻고 찾고, 답하고자 하는 노력은 해야 한다. 신라가 통일 후 대동강 원산만 선 이북으로 올라가지 않은 것은 다름 아니라 그 이북지역과 이남지역의 밥상의 차이. 여기에서 왔다고 본다.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으랴. *** Editor's Note *** 신 교수께서 제기한 의문의 일단은 호로고루성 같은 데서 고구려가 소비한 잡곡들 고고학적 실물이 있으니 이런 걸로 우선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다. 2023. 12. 24.
잡곡 농경의 구조 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사에서 부여와 고구려는 잡곡농경에 기반하고 있다. 삼한과 고조선-낙랑으로 상징되는 도작 농경권과는 사회의 경제적 기반 자체가 달랐다는 이야기이다. 부여와 고구려 문명의 지역에는 무논은 없었을 것이다. 온통 밭이었을 텐데 여기에는 무슨 곡식을 심고 있었을까? 삼국지에는 부여의 경우 오곡에 걸맞다고 되어 있는데 같은 삼국지 한전에 오곡과 쌀을 따로 기술해 놓은 것을 보면 이 오곡은 잡곡이다. 삼국지의 오곡은 어떤 곡식일까? 일단 수수, 기장, 콩, 보리는 확실히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좁쌀은 의외로 선진문헌의 오곡에 안나오는데, 이 부분은 고찰이 필요하다. 多山陵·廣澤, 於東夷之域最平敞. 土地宜五穀, 不生五果.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 其土地肥美, 背山向海, 宜五穀, 善田種. (삼국.. 2023.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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