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족보 이야기331

빚진 것 하나도 없는데 막부를 위해 순사한 히지가타 도시조土方歳三(1835~1869. 5. 11) 土方歳三 히지가타 도시조앞에서 썼지만 이 사람 행적을 보기로 한다. 이 사람은 요즘 하도 일본 애니메이션과 사극 등에 자주 나와 폼나는 사무라이로 알려져 있지만출신을 보면 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원래 집안은 농민 출신으로 그 앞에 형제 아홉이 있었는데 아기 때 죽은 형제를 빼면 여섯 번째였다고 한다. 농민 중에서는 좀 사는 집안이었다고 하는데그래봐야 농민이라 막말에 정치적으로는 출신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 하겠다. 신센구미에 들어가기 전에는 원래 옷집 점원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별 성과 없이 나중에는 약을 팔러 다니기도 했던 모양이다. 나이 스물네살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검술 수련을 시작했는데 그 도장 주인이 나중에 신센구미 국장이 되는 곤도 이사미近藤勇(1834~1868)라 그와 함.. 2025. 12. 13.
제대로 된 사무라이가 없는 신센구미新選組 요즘 일본 애니에는 신센구미新選組가 자주 나오는 바람에젊은 친구들도 신센구미는 다들 아는 것 같다. 신센구미가 막말 칼바람을 일으킨 이들로 워낙 미화가 되는 바람에 이들이 사무라이의 화신처럼 여겨지지만실제로 이들의 출신은 대부분 미천하여 사무라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출신이 많았는데, 한국에도 유명한 몇몇의 면모를 보면-. 近藤勇 곤도 이사미: 신센구미의 국장으로 농민 출신. 土方歳三 히지가타 도시조: 신센구미 부국장으로 농민 집안의 열번째 아들沖田総司 오키타 소지: 1번대 조장. 사무라이 최하층 아시가루 출신 斎藤一 사이토 하지메: 3번대 조장. 낭인 혹은 아시가루 출신. 필자는 이들이 사무라이 출신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들이 막말의 광풍 속에 그나마 가장 사무라이답게 싸웠다는 말을 .. 2025. 12. 13.
서자는 왜 문중을 떠나지 않는가 우리나라 족보에서 서자를 족보에 아무 표식도 없이 실어주기 시작한 건대체로 일제시대부터다. 19세기까지도 족보에는 서자는 이름을 올리지 않거나 아니면 올리되 서자라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19세기 초반이나 18세기 족보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도최소한 족보에서 적자인지 서자인지는 구분 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건 왕실족보라고 해도 틀리지 않아서선원계보 등을 보면 알뜰하게 서자는 서자라고 전부 마킹해 놓았다. 각설하고-. 잘 알다시피 조선시대 서자는 음으로 양으로 제약이 많아 과거 응시자체를 막거나 아니면 합법적으로 허통되어 과거를 보더라도덜컥 장원이 되어버리면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져 적자 출신에게 장원자리를 양보하는 경우도 기록에 보인다. 어쨌건 과거에 응시하게 해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로 무과가 .. 2025. 12. 13.
마지막 싸움을 위해 선비를 키운다는 말의 허구 송나라는 멸망이 장렬했다. 남송의 마지막은 지금도 가장 위대한 왕조의 멸망으로 기억될 정도이다. 송나라가 망할 때의 사대부들의 헌신에 대해 송은 삼백년 역사동안 나라를 기울여 사대부를 양성했는데 그 멸망의 순간에 그들의 헌신으로 보답받았다는 평을 받을 정도이다. 그런데 왕조의 멸망 과정에서 이렇게 잘 키운 사대부의 보답은 항상 받느냐, 가까이는 조선이 멸망할 때 대대손손 왕조로부터 갖은 혜택을 받던 사직신이라 할 가문에서는 왕조와 함께 죽는 사람 몇 나오지도 않았고 정작 왕조에서는 아무것도 받지 못한 이들이 줄줄이 죽었다. 이건 뭐 조선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일본도 마찬가지로, 도쿠가와 막부가 서면서 막부는 최후의 날 벌어질 전쟁을 대비해 전국 각지의 제후의 분봉을 정밀하게 시행하여 반란의 가능성이 있는 .. 2025. 12. 12.
공공성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던 임란 의병들 임란 의병에 붙은 의병이라는 말은 이 의거에 참여한 분들에 대한 예찬과는 별개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문제점이 그 안에 있다고 하겠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자신들이 먹고 사는데 관련하여 누리고 있는데 대해 국가에 반대급부로 내야 할 군역의 의무가 전혀 없었다. 예를 들어 일본을 보면, 무가의 시대, 윗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땅을 주어 먹고 살게 하면반대급부로 그는 유사시 반드시 일정 병력을 끌고 참전해야만 했다. 에도시대에도 평화가 장기가 지속되었지만, 고급무사에서 하급무사까지 유사시 뭐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군역을 전제로 그들에게 땅을 주었기 때문이다.우리는 양반이 되면 군역을 모조리 빠져버려 국가에 대해 해야 할 의무는 사대부라면 사실상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 2025. 12. 11.
양반을 이어받는 자, 민중인가 농민인가 누가 뭐래도 조선의 주인은 양반이다. 이들은 임란이후 조선의 주인 자리에서 흔들리기 시작다음 이들을 이어받을 자는 누구일까.우리나라 역사책을 읽다보면양반의 다음은 농민이며 민중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필자가 보기엔 양반의 다음은 유학모칭자다. 이들은 양반에서 굴러 떨어진 사람들일 수도 있고평민에서 아주 드물게는 천민에서 성장해 올라온 사람들일 수도 있는데, 이들이 양반을 무너뜨리고 이들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동학전쟁의 주동자는 농민도 아니고 민중도 아니고, 바로 유학모칭자들이다. 이 유학모칭자들에 대해 허균은 일찌기이들이 조선을 뒤흔들 것임을 다음과 같이 갈파한 바 있다. 필자가 조선 최고의 명문 중 하나로 생각하는 글이다. 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 民之可畏.. 2025. 12. 1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