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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233

지손支孫은 번성할 수 없는 조선후기 조선후기가 되면 장자 상속이 강화의 길을 걸어 장남에게 거의 몰빵하다시피 하게 된다. 집안 족보를 보면, 조선 전기에 갈려 나온 각 파들은 저마다 번성하지만, 조선 후기가 되면 종손에 가까울수록 사는 것이 낫고지손에 지손으로 이어지면 몇 대가 못내려가 몰락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19세기가 되면지손으로 이어지는 집안들은 그 집안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알려진 집안이라도 양반이라고 부르기 미안 할 정도의 살림에 직역만 간신히 유학이라고 유지하는 사람도 나오기 시작한다. 요는, 조선후기에는 장자 상속이 강화하므로, 향촌에서 재산을 어느 정도 가지고 지위를 유지하는 데는 장손에 되도록 가까울수록 유리했다는 것이다. 굳이 서얼이 아니라 해도 지손으로 몇 대만 내려가면조만간 쪽박찰 것이 예약되어 있었다고 보면.. 2025. 9. 3.
볼리우드 영화와 노비들 볼리우드Bollywood 영화를 보면 흥미로운 것이 이 영화에는 그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리의 사람들-.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나라 인도에 가면 제일 충격적인 것이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인데발리우드 영화에서는 그 사람들은 거의 나오지 않고행복하고 정의로운 주인공 남녀만 횡행한다. 조선시대 역사가 그렇다. 정사는 물론 야사, 대동야승류의 일기를 봐도 어디까지나 사대부들의 이야기일뿐, 이 사람들끼리 서로 내가 옳네 네가 그르네 하는 것이라 우리는 정말 조선시대 그 당시 정황이 그렇다고들 착각한다. 하지만 실제 호적이 그리는 모습은 그렇지 않다. 이들이 역사에 붓방아로 남기는 글을 쓰는 와중에도 그 아래에는 이들의 수십배에 달하는 노비들이 있다. 이 노비들 이야기가 역사서에 전혀 기술이 안 되므로.. 2025. 9. 2.
일기라는 말에 이끌려 들어간 대동야승大東野乘, 막상 뚜껑을 여니 혹시 필자의 작업에 도움이 될까 하여 대동야승을 대략 보고 있는데, 권질에 비해 필자 관심사에 해당하는 내용이 많지가 않다. 아무래도 정치사가 중심인지라권질에 비해 읽고 나면 얻는 것이 많지 않다. 일기류 중에서도 정치사에 관련이 있는 것들만 묶어 놓아서 그런지 필자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 대부분이다. 디테일-. 항상 이야기 하지만 디테일이 문제다. *** 편집자주 *** 대동야승大東野乘은 글자 그대로 동국, 곧 조선의 길거리 만담집이라는 뜻이라, 편찬 연대와 저자 불상이지만 그 수록 내용을 보면 조선 개국 초 이래 인조 때까지 약 250년간에 걸친 이른바 경수필 역대 모음이라 하나하나 따로 묶은 것이 아니라 당시까지 나온 야담집 집성집이라, 말하자면 앤솔로지다.이에서 저록한 선대 야담집과 그 .. 2025. 9. 2.
19세기 중반까지도 수십 수백을 노비 사역시키는데 17세기 사료에서 자본주의 맹아를 찾는 일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18세기 말에도 우리나라 향촌에는 노비가 바글바글한다. 여기서 어떻게 농민이 분해되어 광작하는 차지농이 생긴다는 건가? 이 광작하는 차지농은 생산물을 화폐경제하의 시장에 내다 판다 이것일진대, 내다 팔 시장이 있어야 팔 것 아닌가? 광작 따로, 일기따로, 맹아 따로, 호적 따로인가? 지금처럼 19세기 중반까지도 향촌사회에서 수백명 노비를 사역시키는 풍경이 확인되는 한 내재적 발전론, 자본주의 맹아론 따위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절대로 믿을 수 없다. 당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 [편집자주] *** 저런 땅부자가 조선 곳곳에서는 있었다. 이들을 이른바 광작운동 증좌로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런.. 2025. 9. 2.
1860년대까지도 노비 수백명을 부린 어느 명문가 앞서 이야기한 바처럼 19세기 들어오면 대개의 경우 소농질서로 재편되어 한 마을에 유학이 급증하는 등계급해방의 징후가 매우 뚜렷해지는데이런 것도 동네마다 차이가 있어서 매우 높은 신분의 양반이 살던 동네에는1860년대까지도 한 호 당 노비가 100명 이상 사역하여 그런 일족의 호가 10여 가는 모여 있는 듯한데 노비의 수가 필자가 보기엔 줄잡아도 800-1000명은 되어 보인다. 이런 마을에는 대개 신분 해방도 없다. 신분 해방이라는 것도 만만한 고만고만한 양반들이나 양반호소자들이 모여사는 동네에서나 쉽게 되는 것이지제대로 된 양반들 사는 동네에서는 이것도 쉽지 않았음을 알겠다. 1860년대면 바야흐로 미국에서 노예해방 문제로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되 그 나라에서는 아무리 피부색이 다르더라도 사람은 .. 2025. 9. 2.
호적만으로 더 이상 지배자가 구분 안되는 시기-19세기 18세기 이전에는호적만으로도 양반 구분이 쉽다. 우선 양반의 직역인 유학, 그보다 하나 아래이지만 어쨋건 양반 취급 받아 군역 면제인 업유,업무, 교생 등 이런 직역을 받아 호적에 적힌 사람도 많지 않은 데다가, 이런 양반들은 모두 많게는 20-30명에서 적어도 5-6명의 노비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딱봐도 양반인걸 안다. 그런데 19세기 들어오면지금 우리네 주민등록 등본처럼 호적만 봐서는 이 사람이 도대체 양반인지 평민인지, 아니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도 분간이 쉽지 않다. 모두 비슷한 크기의 가구로 나뉘어 호주가 되어 있고, 이들 사이에는 아마도 지주-전호제로 소작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텐데그러한 관계가 적어도 호적에서는 파악이 안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18세기 이전도 노비를 20-30명 거느리고 .. 2025.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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