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족보 이야기333 공공성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던 임란 의병들 임란 의병에 붙은 의병이라는 말은 이 의거에 참여한 분들에 대한 예찬과는 별개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문제점이 그 안에 있다고 하겠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자신들이 먹고 사는데 관련하여 누리고 있는데 대해 국가에 반대급부로 내야 할 군역의 의무가 전혀 없었다. 예를 들어 일본을 보면, 무가의 시대, 윗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땅을 주어 먹고 살게 하면반대급부로 그는 유사시 반드시 일정 병력을 끌고 참전해야만 했다. 에도시대에도 평화가 장기가 지속되었지만, 고급무사에서 하급무사까지 유사시 뭐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군역을 전제로 그들에게 땅을 주었기 때문이다.우리는 양반이 되면 군역을 모조리 빠져버려 국가에 대해 해야 할 의무는 사대부라면 사실상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 2025. 12. 11. 양반을 이어받는 자, 민중인가 농민인가 누가 뭐래도 조선의 주인은 양반이다. 이들은 임란이후 조선의 주인 자리에서 흔들리기 시작다음 이들을 이어받을 자는 누구일까.우리나라 역사책을 읽다보면양반의 다음은 농민이며 민중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필자가 보기엔 양반의 다음은 유학모칭자다. 이들은 양반에서 굴러 떨어진 사람들일 수도 있고평민에서 아주 드물게는 천민에서 성장해 올라온 사람들일 수도 있는데, 이들이 양반을 무너뜨리고 이들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동학전쟁의 주동자는 농민도 아니고 민중도 아니고, 바로 유학모칭자들이다. 이 유학모칭자들에 대해 허균은 일찌기이들이 조선을 뒤흔들 것임을 다음과 같이 갈파한 바 있다. 필자가 조선 최고의 명문 중 하나로 생각하는 글이다. 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 民之可畏.. 2025. 12. 10. 청금록은 언제 사라졌는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는 단순히 서원에 대한 화풀이가 아니라, 동학혁명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를 구분짓는 중요한 사건의 하나다. 서원이란 그 설립 기원은 차치하고 조선후기 급속도로 확대해간 배경에는 역시 그 뒤에는 향교가 있다. 서원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이전에는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향교가 중요한 향촌의 교육기관이었는데여기에는 양반집 자제와 평민들이 함께 혼재하며 기거한 바 이들은 향교안에서도 같이 있지 않고 동재 서재로 나누어 기거하였다. 요즘 시골 항교를 가면 동재 서재가 있는데여기서 한 쪽은 양반들 자제가 기거하고 다른 쪽은 평민 항교생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들은 군역을 피해 들어온 놈들이라고 하고 양반들 자제가 튀어 나가 자기들끼리 따로 공부하기 시작한데가 바로 서원이다. 서원의 설립과 .. 2025. 12. 10. 유교에서 족보도 없는 이야기 청금록 (5) 규탄하고 걷어내야 하는 장막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뭐냐. 우리나라는 조선후기의 청금록, 소위 향안을 모호한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를 서원, 향약 등과 묶어서 조선 유학의 심화과정으로 보고 있는 듯 한데서원이나 향약은 유교에 근거라도 있지 청금록은 족보도 없는 하늘에서 떨어진 불법 장부다. 가장 비슷한 것을 들자면 당나라 이전 육조시대 귀족들이자기들끼리 장부 만들고 서로 추켜주며 귀족 행세하다가 당 태종한테 걸려 작살났던 그런 귀족행세 정도가 비슷할 텐데이런 식의 양반 씨를 기반한 폐쇄적 공동체는 송대 이후 사대부사회에서 엄중하게 비판받던 것으로,청금록 자체는 임란 이후 부상해 올라오는 신흥 "유학"들, 소위 청금록 등재자들이 이야기 하는 바, "놀고 먹는자"들에 위협을 느낀 이들이 따로 자기들끼리"진짜 양반 명부"를 만들.. 2025. 12. 10. 유교에서 족보도 없는 이야기 청금록 (4) 귀족이 없는 나라에 느닷없이 생긴 조선귀족 조선에는 귀족이 없다. 조선은 유교 국가. 그것도 송대 이후 발달한 사대부 사회에 기반한 사회이므로 국가는 양천제가 기본이며양반이라는 세습 귀족 비스무리한 것이 나왔지만 엄밀히 이야기하면 이들은 귀족이 아니다. 귀족처럼 되고 싶었겠지만 원칙상으로 귀족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가 조선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사대부 안에 별도의 양반의 씨를 규정한 청금록 따위는 당연히 불법 장부이자 반 유교적 문서에 해당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와 비슷한 황당한 사건이 바로 경술국치 당시 조선인에게 주어진 "조선 귀족"이다. 이 조선 귀족 사건은 이 자체 친일이라는 문제 외에도 조선에서 "귀족"이라는 것이 나올 수가 없는 것으로, 귀족을 준다면 도대체 누구를 세습 귀족으로 임명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겠다. 이와 가.. 2025. 12. 10. 유교에서 족보도 없는 이야기 청금록 (3) 불법 권력장부 쉽게 말해서 호적이라는 것이 국가가 만든 주민등록부라면 청금록이란 나 정도 되야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모여 따로 만든 Who is who, 명사록 정도 된다는 말이다. 당연히 호적에는 번듯이 유학, 업무, 업유라 적힌 이들도 청금록에는 못 실리는 이가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사학계는 청금록 정도 실려야 양반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필자가 보기에는 상당히 많다. 그런데 이런 시각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렇게 본다면 "오만과 편견"에서 보이는 주인공 베냇 집안은 젠트리인가 아닌가. 당연히 전통의 명가 다아시 집안에서 보자면 근본도 없는 집안이지만 100년만 지나보면 다아시나 베넷이나 결국 젠트리에서 뒤섞이지 않았겠는가. 각설하고, 이 청금록이라는 것은 단순한 신사명부가 아니라, 일종의.. 2025. 12. 9. 이전 1 ··· 14 15 16 17 18 19 20 ··· 5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