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족보 이야기233 조선시대 호적의 노비: 왜 적어두었을까?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양반 호의 경우 양반과 그 처가 주호와 주호의 처로 적히고 그 아래에는 자기 아들 딸 이름은 빼먹어도노비 이름은 노비라 표시하고 거의 반드시 아래에 적어둔 것을 본다. 이 호적 기록을 보면, 의문이 생긴다. 노비는 어차피 군역이든 뭐든 부과 대상이 되지 않으니 국가의 입장에서는 호적에 그 이름 적어둘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비의 이름은 왜 적어두었을까? 바로 양반이 자신 소유의 노비를 추쇄하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노비는 호적에 적어두나 안적으나 마찬가지지만도망갔을 때를 대비해서 이름을 자기 밑에 적어두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도망노비가 발생했을 때 추쇄하여 소유권을 주장하기 쉬웠을 것이다. 관에서 만든 호적처럼 권위있는 자료란 조선시대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2025. 12. 21. 레닌과 양반 고을 레닌은 그 혁명가로서의 호불호를 떠나냉정하게 세계사 흐름을 판단하는 학자로서 평가한다고 해도 최일급 인물에 해당한다. 레닌의 천재성 중에 그의 제국주의론이 있는데 일언이폐지하고 한마디로 이야기를 하자면 제국주의가 무너질 때는 가장 약한 고리인 식민지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좌파의 역사발전에 대한 인식을 뒤집어 놓은 것으로현상에 대한 관찰에서 입론까지 이르는 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요는 역시-. 가장 강고한 구체제 중심지의 붕괴는 가장 늦고, 이러한 구체제에서 먼 지역일수록 그 붕괴는 빠르다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이는 꼭 레닌이 예언한 자본주의-제국주의 붕괴에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일본의 경우에도 메이지 유신기, 260년간 이어져 오던 에도 막부가 무너질 당시그 시작은.. 2025. 12. 21. 조선이라는 나라의 꼬라지 우리는 20세기 초 식민지가 되어버린 불행한 경험 때문에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 면죄부를 너무 쉽게 주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의 근현대사가 제대로 앞뒤라도 맞는 스토리를 갖추려면조선에 대한 평가부터 설득력 있게 하는 게 첫 단추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조선후기사 이후 해방이후사 60년 이후 역사에 이르기까지역사에 기술된 내용과 실제 벌어진 현실이 죄다, 하나도 맞지 않는 것은처음부터 역사에 쓸 내용을 결론부터 내려놓고팩트를 찾고 뒤져 끼워 맞춰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팩트 기반 역사가 아니라 명분의 역사, 당위성의 역사가 쓰여졌고이를 지키려다 보니 어거지가 난무하고이 논리를 흔드는 그 어떤 논리도 모두 반민족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데 이르렀다고 본다. 가슴에 손을 얹고 1850년 당시 조선시대 호.. 2025. 12. 21. 빚진 것 하나도 없는데 막부를 위해 순사한 히지가타 도시조土方歳三(1835~1869. 5. 11) 土方歳三 히지가타 도시조앞에서 썼지만 이 사람 행적을 보기로 한다. 이 사람은 요즘 하도 일본 애니메이션과 사극 등에 자주 나와 폼나는 사무라이로 알려져 있지만출신을 보면 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원래 집안은 농민 출신으로 그 앞에 형제 아홉이 있었는데 아기 때 죽은 형제를 빼면 여섯 번째였다고 한다. 농민 중에서는 좀 사는 집안이었다고 하는데그래봐야 농민이라 막말에 정치적으로는 출신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 하겠다. 신센구미에 들어가기 전에는 원래 옷집 점원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별 성과 없이 나중에는 약을 팔러 다니기도 했던 모양이다. 나이 스물네살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검술 수련을 시작했는데 그 도장 주인이 나중에 신센구미 국장이 되는 곤도 이사미近藤勇(1834~1868)라 그와 함.. 2025. 12. 13. 제대로 된 사무라이가 없는 신센구미新選組 요즘 일본 애니에는 신센구미新選組가 자주 나오는 바람에젊은 친구들도 신센구미는 다들 아는 것 같다. 신센구미가 막말 칼바람을 일으킨 이들로 워낙 미화가 되는 바람에 이들이 사무라이의 화신처럼 여겨지지만실제로 이들의 출신은 대부분 미천하여 사무라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출신이 많았는데, 한국에도 유명한 몇몇의 면모를 보면-. 近藤勇 곤도 이사미: 신센구미의 국장으로 농민 출신. 土方歳三 히지가타 도시조: 신센구미 부국장으로 농민 집안의 열번째 아들沖田総司 오키타 소지: 1번대 조장. 사무라이 최하층 아시가루 출신 斎藤一 사이토 하지메: 3번대 조장. 낭인 혹은 아시가루 출신. 필자는 이들이 사무라이 출신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들이 막말의 광풍 속에 그나마 가장 사무라이답게 싸웠다는 말을 .. 2025. 12. 13. 서자는 왜 문중을 떠나지 않는가 우리나라 족보에서 서자를 족보에 아무 표식도 없이 실어주기 시작한 건대체로 일제시대부터다. 19세기까지도 족보에는 서자는 이름을 올리지 않거나 아니면 올리되 서자라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19세기 초반이나 18세기 족보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도최소한 족보에서 적자인지 서자인지는 구분 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건 왕실족보라고 해도 틀리지 않아서선원계보 등을 보면 알뜰하게 서자는 서자라고 전부 마킹해 놓았다. 각설하고-. 잘 알다시피 조선시대 서자는 음으로 양으로 제약이 많아 과거 응시자체를 막거나 아니면 합법적으로 허통되어 과거를 보더라도덜컥 장원이 되어버리면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져 적자 출신에게 장원자리를 양보하는 경우도 기록에 보인다. 어쨌건 과거에 응시하게 해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로 무과가 .. 2025. 12. 13. 이전 1 2 3 4 5 6 ··· 3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