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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333

한국근대사는 17세기를 분명히 구분해야 언젠가 필자는 한국근대사에는 마치 일본고대사처럼 "이주갑인상론"이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었다. 18세기 중후반부터나 있었던 일을 마치 17세기부터 있었던 것처럼 소급시켜 언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17세기 이후 화폐경제, 상품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라고 기술하고는 정작 그 예로는 18세기 후반 이후, 늦게는 19세기의 사례를 들어 놓는 것이다. 물론 18세기 후반도 19세기도 17세기 이후인 것은 맞으니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필자가 보기엔 17세기에 우리나라에는 이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겠다. 한국근대사는 조선후기사를 기술할 때 이런 식으로 두리 뭉술하게 기술하면서 17세기부터 19세기를 하나로 묶어 설명하지 말고, 17세기는 18세기와 분명히 구분해서.. 2026. 2. 14.
19세기- 일어나는 서북의 사족들 대개 서북지역, 평안도 일대라고 하면, 택리지에 있는 서북지역에 대한 평가, 이 지역에는 제대로 된 사족이 없다는 시각에 입각해 이 지역을 바라보며,홍경래의 난에 대한 배경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항상 오르내리는 이 지역 사족은 심지어 노비들도 무시한다고 하는 서북차별론을 항상 거론하는데, 서북의 사족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 주장은 일부는 맞지만 틀린 부분도 많은 인식이다. 먼저 조선 전기-중기까지 서북지역 사족이 별볼일 없었다고 한다면, 이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조선후기가 되면 이 지역이 큰 변화를 일으키니, 이 지역에서 문과 급제자가 무수히 많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서북지역, 평안도 지역 문과 급제자는 평양, 안주, 정주 세 곳에서 가장 많이 나왔는데, 그 시기는 18-19세기에 집중한다... 2026. 2. 14.
족보의 신뢰도는 어떻게 검증하는가 (2) 앞 방목 이야기를 했지만 모든 사족이 과거에 붙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아무리 잘 나간 집안도 문과 등제는 매우 드물며 소과 급제자나 무과급제 그것도 없으면 음서로라도 관직을 얻어 사족으로 명맥을 유지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매우 선택된 이들만 검증 가능한 방목에 이름이 나올 가능성이 없다면 남아 있는 문서를 총동원해서 검증하는 방법이 있겠다. 우선 고려시대는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이 아니면 살필 방법이 없다. 고려시대의 조상에 대해 기술한 족보의 내용은 사실상 검증할 방법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에서신뢰도가 매우 떨어진다. 특히 고려사 등 당시 기록에 전혀 이름이 나오지 않거나 사족으로 살았을 주변 정황이 없는데도 근사한 관직을 적어 놓는경우는 높은 확률로 후대의 가필로 본다. 특히 여말선초에 입신한 집안 대.. 2026. 2. 13.
한국 족보의 정신, Spirit은 무엇인가 필자는 오래전부터 모름지기 역사란 진실을 밝히는 실증작업과 더불어 그 역사 서술 뒤를 흐르는 정신, Spirit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인도사와 관련하여 매우 잘 쓴 개설서인 Story of India에는인도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함께, 인도사를 꿰뚫고 있는 그 Spirit을 추적하는데 성공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알렉스 헤일리의 Roots를 보면 가장 마지막에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끝맺고 있다. "아버지는 저 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갔다.나는 그들이 정말로 나를 지켜보고 이끌어 준다고 믿으며,우리 집안의 역사가 담긴 이 이야기가 역사란 승자들 쪽으로 심하게 치우친 시각에서 쓰였다는 과거의 유산을 보완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내 소망에 그들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이것은 이 책.. 2026. 2. 12.
뿌리의 가장 마지막 부분 알렉스 헤일리 뿌리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는필자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필자가 어린 시절 이 뿌리라는 미드는 한국에도 크게 유행했었는데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반응 중 하나가 우리는 족보가 있어 조상을 다 알지만 조상을 모르는 미국에서도 조상찾기 열풍이 불어..운운의 기사가 신문에 많았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그 족보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렸다. 족보가 그리는 한국의 과거와 역사기록이 남기고 있는 한국의 과거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이 문제란 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족보는 제3의 사료에 의해 교차 검증되지 않은 한, 여기 적힌 정보는 모두 믿을 수 없다고 전제하고 보기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족보에 적힌 조상들-. 이 조상에 대한.. 2026. 2. 12.
뿌리- 해방 이후의 노예에게 제안한 일 남북 전쟁 이후 링컨의 노예해방으로 일거에 해방되어 버린 흑인 노예들에게 백인들은 지금 처럼 일하면서 농장일을 해준다면, 수확의 절반씩 반타작 하는 소작농으로 대접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물론 알렉스 헤일리의 조상들은 이를 거부하고 자작농이 되기 위해 서부로 마차를 몰아 이주하지만-. 하고싶은 말이 뭔가 하면, 우리나라 역시 노비 사역이 중심이었던 시대가 막을 내릴 즈음에야 노비소유주와 노비들 사이에 병작반수의 소작제가 비로소 중심적 토지생산관계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노비사역이 주류가 된 사회에서는 소작이 전개될 수 없다. 소작이 전개되지 않으면 자본가적 차지농도 나올 수 없다. 필자는 이렇게 노비사역이 막을 내리는 시대를 우리 역사에서 영-정조 시대로 보기 때문에, 영-정조 시대 이후나 되어야 지주.. 2026.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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