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족보 이야기333

문중사학에 휘둘려서 안 되는 조선후기사 필자가 누차 여기에 경화사족이라는 것이 조선후기 일정 시점에 대두된 것이 아니고 고려시대 이후 단 한번도 경화사족이라는 것이 우위를 놓친 적이 없고, 재지사족은 아주 일시적으로 빛을 본 적이 있지만사족으로서의 영향력이 현재 크게 과장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여기 썼다. 조선후기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 문중이 보는 주관적 시각이 알게 모르게 조선후기사를 바라보는데 크게 영향을 주고 있으니, 어느 특정 가문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을 비하인드 스토리인양 들고 나와 객관적 사학으로 포장하는 경우도 본다. 적어도 사학이라면 문중사학에 휘둘려서는 안 될 것이다. 사학이 의지할 곳은 문헌 밖에는 없다. 문중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의존해서는 안되며특히 야사류는 야사일뿐 이것을 가지고 지남을 삼아서는 안된다. 문중의 입장에서 .. 2026. 2. 10.
어느 태종 자손 집안의 사정 앞에 쓴 글 조선 국성의 경우 왕의 자손 4대는 서자도 보호받아 그 자손이 금고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관련해서 좀 더 써 본다. 태종의 아들 중 한 분-. 이 집안도 태종의 자손 4대는 서자가 보호받아 그 자손이 금고되지 않았다. 그리고 5대째부터 서자는 비로소 금고되기 시작한다. 이 집안에서 태종의 4대째가 되었을 때남성 자손은 모두 22분 있었다. 이 안에서 그 위로 3대 안에 서자 조상이 없는 경우는딱 두 분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조선시대에 왕의 자손 4대는 서자 자손을 금고하지 않는 원칙이 있으니 이 남성 자손 22분은모두 사족으로 독립하여 나갔지, 만약 일반 사족들처럼 서얼의 자손은 모두 금고를 시켰다면, 사족으로 독립하여 번성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22분 중에 딱 2분 있었다는 .. 2026. 2. 9.
조선시대, 왕족 보전을 위한 신의 한수 조선시대 족보를 보면, 국초에 정립된 원칙-. 왕족은 4대 동안은 서자도 금고하지 않는다는 원칙-. 이에 따라 왕의 4대손까지는 적자는 물론 서자도 금고하지 않고 대우했으며4대가 넘어서면 그 아래부터 얻은 자손에 대해서는비로소 다른 사족들과 마찬가지로 적서차별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왕의 4대손까지는 서자라고 할지라도 그 후손은 금고되지 않고 사족으로 번성하게 되었다. 이 조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는 그냥 들어서는 모른다. 왕의 서자의 서자의 서자의 후손 같으면, 다른 사족들 같으면 절대로 번성할 수 없는 집안이지만, 3대 서자를 거쳐 갔더라도 그 자손들은 전혀 금고 없이 사대부, 사족으로 번성하였다. 조선시대 국성의 집안들이 고려시대 왕씨들에 비해 후손들이 번성한 가장 큰 이유는 왕의 후손 4대까지 서.. 2026. 2. 9.
20세기 족보를 보며 하는 착각 20세기 족보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수백년에 걸친 작업을 통해 수정되고 고쳐지며 완성된 결과이다. 이 족보를 우리는 거꾸로 뒤집어 보면서, 자신의 "집안"과 "가족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족보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지파가 계속 추가되며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모르고, 족보에 실린 이들의 절대 다수는 서자 혹은 서자의 후손으로 사실상 금고된 사람들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20세기 족보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우리는 양반의 후손인데 그 후 벼슬이 끊겨져 잔반이 되었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벼슬이 끊겨서 잔반이 된 것이 아니고, 권력과 재력을 누리던 양반들에 끼지를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과거 급제도 없고 소과 입격도 없으며, 무과급제할 여력도,공명첩으로 명예직 품.. 2026. 2. 9.
조선 후기 족보의 구조 조선 후기 족보를 보면, 앞에서 썼듯이부계로 동종의 사람들을 신분 가리지 않고 다 싣는 탓에 아무리 명문 집안 족보라 해도전체 동종들 중 정말 명문 소리 들을 만한 혈족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인구가 6만 정도 되는 어떤 집안은 이 안에서 문과 급제자가 60여 명이 나왔는데 그 중 17세기에 생존한 어떤 사족의 후손들 사이에서만급제자가 40명이 넘게 몰려 있고 나머지 20명이 그 외의 다른 종족들에 적당히 분산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족들 족보가 전부 이러하니, 문과 급제자는 대개 한 문중에서도 극히 소수의 일부에 몰리기 마련이며, 이 문과 급제자가 나오는 후손을 중심으로 주변에 무과 급제자가 듬성 듬성 배치되며, 그 바깥으로 소과 입격자도 없이 명예직 품계나 받아 체면치례하는 종족이 .. 2026. 2. 9.
부계 족보 출범의 의미 앞에서도 한 번 썼지만, 우리나라 부계 족보(부계만 중심이 되는 족보라는 뜻이다. 이하 부계족보로 줄임) 출범의 의의에 대해 조금 써 본다. 우리나라는 조선전기에도 족보는 제작되었고, 남아 있는 것이 몇 개 없기는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빠른 것은 안동권씨 성화보문화유씨 가정보지만이보다 더 빠른 것도 있었다. 임란 이후에 비로소 이전과는 다른 부계족보가 출현하는데, 이 부계 족보에 대한 평가가 필자 생각으로는 좀 달리 봐야 할 부분이 있어조금 적어본다. 우리나라 임란 후 부계족보가 시작되면서비로소 신분이 낮은 이들이 동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족보에 들어갈 길이 열렸다고 보아도 좋다. 거듭 말하지만 조선전기 족보들은 모계와 사위까지 다 챙겼다는 이유로 조선 후기의 부계 족보보다 나은 평가를 .. 2026. 2. 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