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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331

조선시대, 왕족 보전을 위한 신의 한수 조선시대 족보를 보면, 국초에 정립된 원칙-. 왕족은 4대 동안은 서자도 금고하지 않는다는 원칙-. 이에 따라 왕의 4대손까지는 적자는 물론 서자도 금고하지 않고 대우했으며4대가 넘어서면 그 아래부터 얻은 자손에 대해서는비로소 다른 사족들과 마찬가지로 적서차별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왕의 4대손까지는 서자라고 할지라도 그 후손은 금고되지 않고 사족으로 번성하게 되었다. 이 조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는 그냥 들어서는 모른다. 왕의 서자의 서자의 서자의 후손 같으면, 다른 사족들 같으면 절대로 번성할 수 없는 집안이지만, 3대 서자를 거쳐 갔더라도 그 자손들은 전혀 금고 없이 사대부, 사족으로 번성하였다. 조선시대 국성의 집안들이 고려시대 왕씨들에 비해 후손들이 번성한 가장 큰 이유는 왕의 후손 4대까지 서.. 2026. 2. 9.
20세기 족보를 보며 하는 착각 20세기 족보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수백년에 걸친 작업을 통해 수정되고 고쳐지며 완성된 결과이다. 이 족보를 우리는 거꾸로 뒤집어 보면서, 자신의 "집안"과 "가족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족보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지파가 계속 추가되며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모르고, 족보에 실린 이들의 절대 다수는 서자 혹은 서자의 후손으로 사실상 금고된 사람들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20세기 족보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우리는 양반의 후손인데 그 후 벼슬이 끊겨져 잔반이 되었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벼슬이 끊겨서 잔반이 된 것이 아니고, 권력과 재력을 누리던 양반들에 끼지를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과거 급제도 없고 소과 입격도 없으며, 무과급제할 여력도,공명첩으로 명예직 품.. 2026. 2. 9.
조선 후기 족보의 구조 조선 후기 족보를 보면, 앞에서 썼듯이부계로 동종의 사람들을 신분 가리지 않고 다 싣는 탓에 아무리 명문 집안 족보라 해도전체 동종들 중 정말 명문 소리 들을 만한 혈족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인구가 6만 정도 되는 어떤 집안은 이 안에서 문과 급제자가 60여 명이 나왔는데 그 중 17세기에 생존한 어떤 사족의 후손들 사이에서만급제자가 40명이 넘게 몰려 있고 나머지 20명이 그 외의 다른 종족들에 적당히 분산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족들 족보가 전부 이러하니, 문과 급제자는 대개 한 문중에서도 극히 소수의 일부에 몰리기 마련이며, 이 문과 급제자가 나오는 후손을 중심으로 주변에 무과 급제자가 듬성 듬성 배치되며, 그 바깥으로 소과 입격자도 없이 명예직 품계나 받아 체면치례하는 종족이 .. 2026. 2. 9.
부계 족보 출범의 의미 앞에서도 한 번 썼지만, 우리나라 부계 족보(부계만 중심이 되는 족보라는 뜻이다. 이하 부계족보로 줄임) 출범의 의의에 대해 조금 써 본다. 우리나라는 조선전기에도 족보는 제작되었고, 남아 있는 것이 몇 개 없기는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빠른 것은 안동권씨 성화보문화유씨 가정보지만이보다 더 빠른 것도 있었다. 임란 이후에 비로소 이전과는 다른 부계족보가 출현하는데, 이 부계 족보에 대한 평가가 필자 생각으로는 좀 달리 봐야 할 부분이 있어조금 적어본다. 우리나라 임란 후 부계족보가 시작되면서비로소 신분이 낮은 이들이 동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족보에 들어갈 길이 열렸다고 보아도 좋다. 거듭 말하지만 조선전기 족보들은 모계와 사위까지 다 챙겼다는 이유로 조선 후기의 부계 족보보다 나은 평가를 .. 2026. 2. 9.
조선후기 노비들의 삶에 영감을 주는 "뿌리" 목하 알렉스 헤일리의 걸작 "뿌리"를 읽고 있는 바, 안정효 선생이 번역한 것으로 매우 번역이 좋다. 이 책을 보면, 미국 노예제도가 온존하던 당시 노예들 삶에서 조선후기 노비들의 삶을 이해하는 영감을 얻는다. 노예 소유주 의사에 따라 노비 가족이 해체되는 모습, 노예 소유주가 아버지가 되어버린 노예와의 관계,그리고 이들이 해방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 신분상승을 위한 욕구에 이르기까지 조선후기 노비들의 삶도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리라 본다. 특히 노예소유주가 아버지인 노예의 경우, 그 아버지인 노예주인과 아들인 혼혈 노예 사이에 흐르는 묘한 호감과 갈등, 애정과 증오 사이를 오가는 긴장감은 조선시대 얼자와 그 아버지 사이의 관계를 시사하고도 남음이 있다. 뿌리는 매우 잘된 소설이다. 이 .. 2026. 2. 7.
18세기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인 19세기 한국사에서는 19세기를 혼란의 세기, 암흑의 시대로 본다. 삼정의 문란이란 표현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삼정은 원래 문란했고, 이것이 질서 정연하게 집행된 적은 전 조선시대를 통틀어 한 번도 없다. 19세기는 오히려 18세기의 위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18세기에 격렬하게 마찰을 빚던 서얼은 19세기가 되면 상당수가 유학으로 직역이 올라와 한 집 건너 하나씩 유학이 될 정도로 유학은 발에 채일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18세기 초반만 해도 바글바글했던 노비는 19세기 중반이 되면 거의 호적에서는 없어져 좀 많이 데리고 있는 집이 50-100명 정도, 나머지 좀 해체가 빠른 마을에는 실재가 의심스러운 집집마다 노비 1명씩 적어놓은 거 빼고는 (당시에는 유학은 노비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이유.. 2026.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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