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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233

유교에서 족보도 없는 이야기 청금록 (3) 불법 권력장부 쉽게 말해서 호적이라는 것이 국가가 만든 주민등록부라면 청금록이란 나 정도 되야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모여 따로 만든 Who is who, 명사록 정도 된다는 말이다. 당연히 호적에는 번듯이 유학, 업무, 업유라 적힌 이들도 청금록에는 못 실리는 이가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사학계는 청금록 정도 실려야 양반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필자가 보기에는 상당히 많다. 그런데 이런 시각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렇게 본다면 "오만과 편견"에서 보이는 주인공 베냇 집안은 젠트리인가 아닌가. 당연히 전통의 명가 다아시 집안에서 보자면 근본도 없는 집안이지만 100년만 지나보면 다아시나 베넷이나 결국 젠트리에서 뒤섞이지 않았겠는가. 각설하고, 이 청금록이라는 것은 단순한 신사명부가 아니라, 일종의.. 2025. 12. 9.
유교에서 족보도 없는 이야기 청금록 (2) 유학모칭자들이 두려운 기성 양반들 물론 청금록靑衿錄이라 하면 향적, 유적, 향안 등 다양한 이름으로 기록에 나오는데 그 기원을 따지자면 최소한 조선시대 전기까지도 올라가며원래는 향촌 사회의 유생의 장부로 단순한 성격의 기록물이었던 것이 조선후기가 되면서 각종 권위와 이권이 섞이면서 성격에 큰 변화플 겪은 것으로 안다. 이 청금록은 호적에 유학이라 기재되어 있더라도정작 청금록에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집안이 많다. 그 동네에서 전통적인 양반의 씨, 유학을 호적에 붙이는 정도로는 들어갈 수 없고, 그래도 우리 정도는 되야 양반이라는 사람들끼리 모여 향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에 들어오면 향촌사회에서 이전에도 썼지만 소위 "놀고먹는자들"이 줄줄이 발생하기 시작하는데임란 이전까지만 해도 극히 소수이던 양반들이 17세기 이후부.. 2025. 12. 9.
유교에서 족보도 없는 이야기 청금록 (1) 구별을 위한 표식 우리나라 족보보다는 사료적 가치는 당연히 호적이 한참 위다. 족보는 믿을 수가 없다. 완전히 구라인 것도 있겠지만일정 정도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경우에도 교묘하게 자기 위주의 서술을 해 놓아서 이 사람들이 당시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족보로는 전혀 알 수 없다. 당연히 제3자인 당시의 관청에 의해 유지된 공식 기록인 3년마다 작성한 식년 호적의 기록이 1급 사료다. 호적이 남아 있다면 족보는 발 붙일 자리가 없다는 것은 그 뜻이다. 호적이 없으면 족보의 문제점을 살필 방법은 20세기 이전 출판된 족보 밖에는 방법이 없는데 이것도 16, 17 세기 족보면 모를까19세기 말이 되면 이미 현대 대동보 골격이 다 갖추어져서 족보끼리의 대조만으로는 위조 여부를 판별하기 극히 어렵다. 이야기가 처음부터 옆으로 샜는데.. 2025. 12. 9.
호적 이야기를 하면 돌아오는 반응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조선시대 호적 이야기까지 할 때가 있는데, 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듣는 분들 반응이 대개 일정하다. 처음에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 모두 흥미로와한다. 조선시대 족보에 가짜가 많다. 조선시대에는 노비가 그렇게 많았다더라, 이 정도 이야기는 요즘도 사람들이 다 아는지라, 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처음에는 매우 흥미로와 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좀 더 진행하여 어떻게 조선시대 사람들이 족보를 위조하는지, 어떻게 가짜 족보에 올린 자기 조상들을 대대로 벼슬 받은 양반으로 둔갑시키는지그 방법을 호적 이야기를 섞어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반응이 영 불편해지며, 이야기가 18세기 초반까지도 우리나라 당시 노비의 숫자가 그때까지도 무려 전체 인구 절반이 넘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면, 백프로 .. 2025. 12. 3.
자본주의 맹아론, 그 궁금한 점 한 가지 17-18세기 자본주의 맹아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조선시대 호적을 봤을까 안 봤을까. 그 시대 호적이 그 모양인 걸 알면서도 그 시대에 자본주의 맹아가 있었다고 주장한 걸까아니면 호적 따위는 보지도 않고 자본주의 맹아가 있었다고 이야기한 걸까. 호적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노비 이름 행렬을 보면 첫 번째 반응은 충격 두 번째 반응은 배신감이다. 노비가 이렇게 많은 나라에 자본주의 맹아? 그런 생각이 든 후에 첫 번째 생각은, 이걸 알고도 자본주의 맹아를 말했나 하는 의문. 몰랐다면 그나마 모르겠지만, 알고도 그랬다면 문제 아닌가? 그 다음부터는 필자의 경우,17-18세기 자본주의 맹아론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면 아예 이야기를 섞지를 않는 습관이 생겼다. 2025. 12. 2.
미세사와 일기 사학이라고 하지만, 미세사와 일기를 들여다 보는 사학이 대단하다고들 하지만, 다른 것 있겠는가?조선시대 김부장 이야기 들어주는 것, 그것이 미세사이고 일기 사학이 아니겠는가. 조선시대 일기. 조선시대 일차 사료인 당시 관료들의 보고서. 읽다보면 내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와 구한말의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이야기였던가 알게된다. 내가 보기엔 구한말의 역사를 민중의 역사이자농민항쟁의 역사라고 주장했던 사람들,대부분 조선시대 일기나 일차 사료 통독하여 읽지도 않았다. 대충 그렇거니 생각하고 일차사료 이리저리 꿰맞춰 이야기 했을 거라 생각하는 바, 왜 그런가 하면, 그걸 통독했다면 결론이 그리 나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 [편집자주] *** 한때 저쪽 서구 역사학 영향 아래 미시사라는 역사학이 유행하고, 그걸 흉내.. 2025.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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