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족보 이야기331 한국 유교의 핵심은 시중時中에 있었는가 오늘 설이나 추석 때만 되면 기사화하는 차례간편화에 대한 기사를 보고 조금 생각을 더 써 본다. 기사에 나와 있는 바 유교문화원의 담당자 분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하신 바, 특히 '홍동백서'(紅東白西)나 '조율이시'(棗栗梨枾) 같은 격식은 문헌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센터는 설명한다. 전통 예서 어디에도 과일의 종류나 위치를 엄격히 규정한 바는 없으며, 유교의 핵심은 시대와 상황에 맞게 마땅함을 찾는 '시중'(時中)에 있다는 것이다.필자가 아는 바 우리나라 유교의 핵심이 "시대와 상황에 맞게 마땅함을 찾는 시중"에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제 우리가 "시중"을 찾았다는 것인가? "시왕지례"를 따라가면 안된다고 하여 조선시대 후기 내내 예학을 팠고, 그래서 누가 더 "고례"에 가까왔는가를 가지고 ".. 2026. 2. 11. 일년에 한 가지씩 줄어드는 차례상 음식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5899839?rc=N&ntype=RANKING "설 차례상에 전 안 부쳐도 됩니다…떡국 중심 4∼6가지면 충분"한국유교문화진흥원, 차례상 간소화 강조…"가족의 화목이 중요" "노동력 많이 드는 전, 권장되지 않아…홍동백서·조율이시 근거無" 차례상에 올릴 전을 산더미처럼 부치는 것은 지금도 명절을n.news.naver.com 떡국 중심의 4-6가지? 필자가 보기엔 아직 많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차례상 음식 줄이건 뭐를 하건 간에 앞으로 몇십 년 내로 차례상 잔치상 전부 없어진다. 2026. 2. 11. 족보의 신뢰도는 어떻게 검증하는가 (1) 연구 목적으로 이용할 때 족보의 신뢰도는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필자의 경험으로 아래에 약간 써본다. 1. 아주 예외적인 몇몇 종족을 빼면, 우리나라 고려시대의 세계는 확인하기 힘든다. 조선시대에 크게 번성한 종족도 고려시대에는 단선계보를 가지고 있는 정도에 불과한 경우가 많고, 그 사람들도 공식기록에서 확인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에 이름이 나오면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고려사에 나오는 사람이 족보에서 전혀 안보이는 경우도 무척 많다 (오히려 나오는 경우보다 더 많은 듯)이는 조선시대에 번성한 씨족들이 고려시대에 번성한 씨족과는 다른 계통의 혈족 (같은 동성이라 해도)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만큼 무신란 이전과 이후의 우리나라 지배계층에는 급변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026. 2. 11. 인구 구조의 연구에 어떤 자료가 채택되어야 할까 필자의 견해로는우리나라 족보를 조선시대 인구구조의 연구에 이용한다고 할 때, 20세기 이후의 족보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필자 생각에는 늦어도 19세기 이전 (1800년 이전)의 것이 이용되어야 하며, 몇 개의 족보가 선택되어 상호 대조를 통해 확인된 정보만 이용해야 한다. 18세기에는 필자의 견해로는 영남지역은 기호지역과 혼맥이 거의 형성이 되지 않아 이 시기 족보는 아마 영남 지역과 기호지역은 따로 분석해야 할 것이라 본다. 19세기 이후의 족보를 이용하는 것은 오염된 데이터를 쓰는 것이나 다름 없어 연구의 흐름을 신뢰성을 낮추게 된다. 족보를 인구 구조 연구에 이용하는 작업은 족보를 많이 넣는다고 성공적이 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2026. 2. 11. 문중사학에 휘둘려서 안 되는 조선후기사 필자가 누차 여기에 경화사족이라는 것이 조선후기 일정 시점에 대두된 것이 아니고 고려시대 이후 단 한번도 경화사족이라는 것이 우위를 놓친 적이 없고, 재지사족은 아주 일시적으로 빛을 본 적이 있지만사족으로서의 영향력이 현재 크게 과장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여기 썼다. 조선후기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 문중이 보는 주관적 시각이 알게 모르게 조선후기사를 바라보는데 크게 영향을 주고 있으니, 어느 특정 가문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을 비하인드 스토리인양 들고 나와 객관적 사학으로 포장하는 경우도 본다. 적어도 사학이라면 문중사학에 휘둘려서는 안 될 것이다. 사학이 의지할 곳은 문헌 밖에는 없다. 문중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의존해서는 안되며특히 야사류는 야사일뿐 이것을 가지고 지남을 삼아서는 안된다. 문중의 입장에서 .. 2026. 2. 10. 어느 태종 자손 집안의 사정 앞에 쓴 글 조선 국성의 경우 왕의 자손 4대는 서자도 보호받아 그 자손이 금고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관련해서 좀 더 써 본다. 태종의 아들 중 한 분-. 이 집안도 태종의 자손 4대는 서자가 보호받아 그 자손이 금고되지 않았다. 그리고 5대째부터 서자는 비로소 금고되기 시작한다. 이 집안에서 태종의 4대째가 되었을 때남성 자손은 모두 22분 있었다. 이 안에서 그 위로 3대 안에 서자 조상이 없는 경우는딱 두 분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조선시대에 왕의 자손 4대는 서자 자손을 금고하지 않는 원칙이 있으니 이 남성 자손 22분은모두 사족으로 독립하여 나갔지, 만약 일반 사족들처럼 서얼의 자손은 모두 금고를 시켰다면, 사족으로 독립하여 번성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22분 중에 딱 2분 있었다는 .. 2026. 2. 9. 이전 1 2 3 4 5 6 7 8 ··· 5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