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족보 이야기333 차례상 제사상과 함께 침몰하는 한국 유교 한국유교=제사상한국유교=차례상이다. 도대체 사서 어디에 제사상 차례상 가지고 이야기가 나온다는 건지, 한국유교는 제사상 차례상 타령을 걷어버려야 비로소 살길이 열린다. 제사상 차례상을 걷어버려야 비로소 공자 맹자 그 양반들이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이야기에 비로소 귀가 열릴 것이다. 기독교도 무교회주의자가 있는데, 유교라고 해서 무제사상주의, 무차례상주의가 나오면 안될 이유가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한국유교가 추석, 설날 때 해야 할 말은 제사상 음식 몇 가지 올리고 전 부치지 말라는 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일년에 한 번 같이 모여 식사하게 될 사람들에게가족의 뜻, 형제우애의 뜻, 부모, 자식간의 사랑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즐거운 설날이 되기를 빈다는 메시지가 필요한 것이다. 도대체 제사상 .. 2026. 2. 12. 창의성은 학제간을 넘나드는 독서에서 나온다는 다치바나의 말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가 이렇게 이야기 했다. 창의성은 학제간을 넘나드는 독서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논문을 쓰는 첫 발은 독서이고, 그 독서가 학제간 독서일수록 창의력을 자극한다. 학제간 독서는 필연적으로 자기 전공분야만 파서는 얻기 어려운넓은 시야를 연구자에게 준다. 연구자는 쓰고 쓰고 또 써야 하지만그러기 위해 읽고 읽고 또 읽어야한다. 2026. 2. 11. 한국 유교의 핵심은 시중時中에 있었는가 오늘 설이나 추석 때만 되면 기사화하는 차례간편화에 대한 기사를 보고 조금 생각을 더 써 본다. 기사에 나와 있는 바 유교문화원의 담당자 분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하신 바, 특히 '홍동백서'(紅東白西)나 '조율이시'(棗栗梨枾) 같은 격식은 문헌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센터는 설명한다. 전통 예서 어디에도 과일의 종류나 위치를 엄격히 규정한 바는 없으며, 유교의 핵심은 시대와 상황에 맞게 마땅함을 찾는 '시중'(時中)에 있다는 것이다.필자가 아는 바 우리나라 유교의 핵심이 "시대와 상황에 맞게 마땅함을 찾는 시중"에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제 우리가 "시중"을 찾았다는 것인가? "시왕지례"를 따라가면 안된다고 하여 조선시대 후기 내내 예학을 팠고, 그래서 누가 더 "고례"에 가까왔는가를 가지고 ".. 2026. 2. 11. 일년에 한 가지씩 줄어드는 차례상 음식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5899839?rc=N&ntype=RANKING "설 차례상에 전 안 부쳐도 됩니다…떡국 중심 4∼6가지면 충분"한국유교문화진흥원, 차례상 간소화 강조…"가족의 화목이 중요" "노동력 많이 드는 전, 권장되지 않아…홍동백서·조율이시 근거無" 차례상에 올릴 전을 산더미처럼 부치는 것은 지금도 명절을n.news.naver.com 떡국 중심의 4-6가지? 필자가 보기엔 아직 많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차례상 음식 줄이건 뭐를 하건 간에 앞으로 몇십 년 내로 차례상 잔치상 전부 없어진다. 2026. 2. 11. 족보의 신뢰도는 어떻게 검증하는가 (1) 연구 목적으로 이용할 때 족보의 신뢰도는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필자의 경험으로 아래에 약간 써본다. 1. 아주 예외적인 몇몇 종족을 빼면, 우리나라 고려시대의 세계는 확인하기 힘든다. 조선시대에 크게 번성한 종족도 고려시대에는 단선계보를 가지고 있는 정도에 불과한 경우가 많고, 그 사람들도 공식기록에서 확인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에 이름이 나오면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고려사에 나오는 사람이 족보에서 전혀 안보이는 경우도 무척 많다 (오히려 나오는 경우보다 더 많은 듯)이는 조선시대에 번성한 씨족들이 고려시대에 번성한 씨족과는 다른 계통의 혈족 (같은 동성이라 해도)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만큼 무신란 이전과 이후의 우리나라 지배계층에는 급변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026. 2. 11. 인구 구조의 연구에 어떤 자료가 채택되어야 할까 필자의 견해로는우리나라 족보를 조선시대 인구구조의 연구에 이용한다고 할 때, 20세기 이후의 족보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필자 생각에는 늦어도 19세기 이전 (1800년 이전)의 것이 이용되어야 하며, 몇 개의 족보가 선택되어 상호 대조를 통해 확인된 정보만 이용해야 한다. 18세기에는 필자의 견해로는 영남지역은 기호지역과 혼맥이 거의 형성이 되지 않아 이 시기 족보는 아마 영남 지역과 기호지역은 따로 분석해야 할 것이라 본다. 19세기 이후의 족보를 이용하는 것은 오염된 데이터를 쓰는 것이나 다름 없어 연구의 흐름을 신뢰성을 낮추게 된다. 족보를 인구 구조 연구에 이용하는 작업은 족보를 많이 넣는다고 성공적이 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2026. 2. 11. 이전 1 2 3 4 5 6 7 8 ··· 5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