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족보 이야기331 18세기 탕평론과 경화사족 18세기 들어서는 소위 지방 사족들이 거의 등용되지 않아 이 시점이 되면 흔히 말하는 영남 소외론이 나오는 시기인데 사실을 보면 영남만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지방 사족들은 죄다 개털이 되던 시기가 바로 18세기 이후라 꼭 영남소외 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하겠다. 18세기를 주름잡은 소위 탕평론이게 무슨 경상도 남인하고 기호지역 서인이 잘 지내보라 그 소리가 아니다. 어차피 18세기 들어오면 지방은 죄다 개털이라 각 당파에서도 소위 정치를 주름잡는 씨족들은 죄다 서울 근교 소위 10리 안에 거주하며지방사족과는 뚜렷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지라이때가 되면 그것이 서인이건 남인이건 간에 서울 근교에 사는 사족들이 바로 경화사족, 그리고 이들 경화사족끼리 싸우지 말고 한 번 잘 해보라는 것이 탕평이지 다름 아니다.. 2025. 7. 26. 족보가 말하는 경화사족 족보라는 것이 허구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지만잘 살펴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책이다. 한 집안 대동보를 살펴보면조선후기로 들어가면 소위 말하는 경화사족이 뚜렷이 나타난다. 벼슬이 안 끊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청요직을 넘나드는 이들은 같은 문중이라도 대개 서울 아니면 그 근교 경화사족들이고 지방으로 내려가면 지역을 막론하고 간신히 먹고 사는 사람들 천지에 벼슬도 청요직을 가리지 않고말단 벼슬이라도 허겁지겁 취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런 상황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점 심해져소위 말하는 수도권 사족들의 권력 독점 현상이 두드러진다. 흔히 조선시대 당쟁 하면 무슨 지역들끼리 싸운 것으로 이해 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것이 아니고 사실 사색당파라 해도 조선 후기 들어오면 번듯한 사람들은 당색을 막론하고 죄다 수도권에 .. 2025. 7. 26. 자본가적 차지농은 절대로 나오지 못할 17세기 우리나라 17-18세기에 소위 광작운동, 자본가적 차지농이 조선에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텐데 조선시대 17세기 호적을 보면 자본가적 차지농은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다. 백보 양보해서 노비가 급격히 사라지는 18세기 후반이나 되야 한 번 비슷한 모습을 꿈꿔 볼 만한데 필자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호적 상황을 보면 17세기에도 지주-전호제가 과연 얼마나 있었을지도 의심스럽고대부분이 노비 사역에 의해 농업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당시 호적이 이렇게 시퍼렇게 눈을 뜨고 살아 있고일기에서는 화폐경제는 고사하고 장에 나가 물물 교환이 대부분임을 웅변하고 있는데 도대체 우리나라에 광작운동화폐경제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본 기존의 연구는도대체 어떤 부분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진 것인가? 2025. 7. 24. 한국근대사를 만화로 만드는 문중들 필자는 단언컨데우리나라 호적과 족보의 파악을 통해18-19세기 신분 상승과 변동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우리나라 근현대사는 영영 소설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조금만 팩트에 입각한 이야기를 하면 소위 말하는 문중이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나 우리 집안을 어찌 보고 이런 망발 운운하면그게 역사학이겠는가 소설이겠는가 만화이겠는가. 학계에서 결과가 나왔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문중이 불문에 붙이겠다는명예로운 침묵의 약조가 필요하다. 학문적 검토에 따라 나온 이야기까지 죄다 간섭하고 항의하면그게 역사학인가? 소설이요 K 드라마가 될 뿐이다. 예전에 영국에서 리처드 3세 뼈가 나왔을 때 이 리처드 3세 뼈가 정말 그 사람인지 알기위해왕실 사람들 DNA를 검사한 적이 있는데이 검사 결과 왕족 중 한 갈래가 .. 2025. 7. 24. 족보와 한 짝으로 봐야 할 호적 족보의 태반이 위작이고 호적의 대부분이 이미 사라져 버린 우리나라에서 이런 고찰이 가능한 경우가 많지는 않으리라 보지만, 족보는 남아 있는 조선시대 호적과 함께 보면상당히 재미있는 결과를 얻는다. 조선시대 호적이라고 해서 그 기록이 완전할 수 없는 건 잘 알려져 있고누락도 많고 오기, 오류도 많지만 그 나름의 정보의 디테일 면에서 족보가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 있으며 특히 제 3자의 손을 거쳐 기록된다는 점에서 족보보다 훨씬 객관적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족보에 조상이 양반으로 적히더라도남아 있는 호적에서 유학으로 직역이 적히지 않았다면 그 족보는 적절히 개작이 된 것일 게다. 반대로 호적은 또 완벽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필자가 보기엔 남아 있는 호적에 올라있지 않은 사람도 많고 호적은 그.. 2025. 7. 23. 절대로 만만치 않은 외거노비 조선후기 인구 다수를 차지하던 사람들외거노비. 흔히 생각하기에 외거노비 하면 노예 비슷하게 사역되고 두들겨 맞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살았을 것 같지만전혀 그렇지 않다. 16세기에 이미 외거노비들은 집에 붙어 있다가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완전히 자기 맘대로이며심부름을 시켜 놓으면 알아서 떼먹기 심지어는 자기 논 밭도 가지고 있어 매매도 맘대로 하는 등 말이 좋아 외거노비이지 통제가 잘 안되는 존재였다는 것이 일기를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이들이 기존 사회가 해체되면서 일부는 지주로 상승하고 그 재력을 바탕으로 양반을 모칭하고 유학이 되어 나라에서 돈받고 뿌리는 공명첩 하나 사서 자기 이름 적어 놓으면양반으로 완벽히 탈바꿈하는 것이다. 19세기 중후반 양반 중에는 이런 노비 출신 양반상당히 있었을 것이라.. 2025. 7. 22. 이전 1 ··· 35 36 37 38 39 40 41 ··· 5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