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호적과 족보 이야기422 생원보다는 역시 진사 조선후기 들어오면 사마시, 소과 입격자들도서울은 진사가 더 많고, 향촌에는 생원이 더 많은 현상이 뚜렷해진다. 따라서 문중별 통계를 보면, 서울에 살지 않고 향촌에 세거한 종족일수록 생원이 더 많다. 이는 생원을 선호한 것이 아니라, 부득이한 것으로진사가 더 쉬웠다면 아마 향촌에서도 진사 입격을 시도했을 것이다. 진사가 이처럼 생원보다는 더 선호되었기 때문에 흔히 향촌에서 우리집안은 삼대 진사요, 사대 진사요 이렇게 소개하지 삼대 생원이요 이렇게 소개하는 경우는 없다. 향촌에서 몇대 진사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경우 대개 진사와 생원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진사와 생원은 사마시에서 같은 수를 뽑았음에도 향촌 사족의 족보에는 생원이 확실히 더 많다. 물론 진사건 생원이건 간에 대과 보는 데는 차이가 없.. 2026. 5. 26. 족보에 적어 놓은 게 많다고 사족은 아니다 앞에도 썼지만 족보에 뭐를 잔뜩 적어 놨다고 해서 그 집이 사족인 것은 아니다. 무슨무슨 벼슬했다고 잔뜩 적어놔 봐야 그 벼슬이 무슨 납속 공명첩인지 뭔지도 알 바 아니고, 또 아예 날조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족보가 재미있는 것이, 17세기 족보에 안 나오는 정보가 18세기 족보에 나오고, 19세기에 20세기를 거치며 족보의 정보가 점점 충실해지는 것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나중에 추가된 정보는 전부 다 뻥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필자의 경험상, 족보에 몇 줄 적혀 있지도 않지만 정작 호적에는 버젓한 사족인 경우도 있었고, 족보에 허황되게 많이 적어는 놨는데, 초기 족보에는 없는 집안이 후대 족보에 끼어든 경우도 있었다. 결론은 제3의 사료에 의해 검증되거나 그게 아니면 호적에 의해 확실히 확.. 2026. 5. 26. 뭐가 구질구질하게 잔뜩 채운 족보는? 초기 족보들은 보면 정보가 소략하고 매우 간단하다. 예를 들어 문화유씨 가정보, 안동권씨 성화보나대다수 17세기 초기 족보들을 보면 등장인물들 설명이 극히 소략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기 족보라면 당연히 들어갈 생년 졸년은 물론, 배위도 생략된 경우가 있고, 더욱이 벼슬 이름도 제대로 안 적은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소략한 족보가 묘한 포스를 풍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족보 중에 문과도 문, 무과도 무, 이런식으로 줄여 쓰고 왠만한 벼슬 같은 건 다 건너뛰거나 생략해버리는 족보들이 있는데이런 족보들은 수록된 이들이 대부분 격이 높은 사족들로실린 이들이 다들 잘나다 보니 급제자 한 명만 나와도 인근 친척들까지 영향을 받는 문과 급제자도 그냥 덜렁 "문" 짜 하나 써주고 끝이다. 물론 진사는 .. 2026. 5. 26. 비참을 폭로한 알렉스 헤일리와 가족사 vs. 자랑을 분식한 한국의 족보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족사 (family history)와 계보학(genealogy)은 많이 다르다. 특히 한국에서 그렇다. 우리는 족보라는 것을 집집마다 있기에 그 집안 역사는 다 안다고 생각한다. 족보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족보를 들춰 보면 이것처럼 복잡한 텍스트는 없다. 인간의 욕망과 허영이 만든 허구가 진실과 반쯤 반죽되어 구워진 것이 한국의 족보다. 소위 "공식적인 기록"도 마찬가지다. 집안의 역사를 풍부하게 있다고 하는 집안조차 면밀히 살펴보면 과장과 분식투성이다. 우리나라의 족보라는 것이 집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얼마나 우리 집안이 대단한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쓴 것이 대부분이므로, 그 안에서 가족사의 진솔한.. 2026. 5. 25. 부정父情을 떨치지 못한 흔적들 조선시대에 서자 차별이야 그렇다고 해도, 천출의 노비와 사이에 아이가 나온 경우이를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하게 하고 노비로 삼아 버린 것은 인륜의 측면에서도 못할 짓이라 하겠다. 희생으로 삼기 위해 끌고가는 소를 보고도 측은지심이 일어나는 것을 인지단이라고 한 공맹의 신도라는 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잔혹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는 그것을 수백년간 굴렸을지 의문이다. 간단한 시물레이션 만으로도 만약 조선시대에 천출과 사이에 나온 자식을 양반까지는 아니라 서자, 아니 평민으로만 만들어놨어도우리나라 노비의 숫자는 그렇게 급증하지 않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율곡은 적자가 없는 상태에서 서자를 봉사손으로 하여 물려주었는데이는 당대에도 사족들 사이에 욕을 많이 먹었다. 대동야승 등 당대의 기록들을 보면 율곡이 서자로 대를.. 2026. 5. 24. 화폐가 전혀 돌지 않는 부북일기 1644년 학계의 초기 자본주의 맹아론은 대부분 실록 등 기초자료에 의해 의거해 있으며특히 17세기의 사실에 대해서는 견강부회가 많다. 광작, 지주전호제, 화폐의 유통 등 자본주의 맹아론의 성공적 입론과 관련하여반드시 관철되어야 할 사항들이 대부분 모호한 언설에 기초하여 성립되어 있다. 이러한 주장은 그 후 일기나 호적 등 자료가 속속 추가 되면서 당시의 팩트와 맞지 않는 경향이 도처에 노출되었음에도여전히 지금까지 타성에 따라 그대로 이야기 되는 경우를 본다. 17세기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과 18세기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19세기에 있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임에도 17-19세기를 묶어서 설명하며 대충 얼렁뚱땅 이야기 하고 치운다. 따라서 읽는 독자는 17세기에 이미 그런 변화가 우리나라에 있었다고 생각.. 2026. 5. 24. 이전 1 2 3 4 5 6 ··· 7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