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호적과 족보 이야기422 서자 박제가의 한 (3) 서자가 봉사손이 된 율곡의 경우 조선시대에 적자 아들이 없고 서자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 가장 정상적인 방식은 적자를 양자로 데려와 후사를 잇는 것이다. 이때 재산은 어떻게 될까? 물론 양자로 들어온 적자가 주로 상속하며 서자는 많이 받지 못한다. 박제가 집안도 필자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으니 확신할 수 없지만, 박제가 역시 비슷했을 것이다. 이때 아버지가 골육의 정으로 서자에게 물려준다면 어찌 될까? 적자를 양자로 데려오지 않고 말이다. 그런 경우가 있을까 싶지만, 있다. 조선시대에 나온 족보를 보면, 서자만 두었는데 양자를 들이지 않는 경우가 보인다. 이런 경우에는 서자까지만 올라 있고 그 후에는 오리무중이다. 분명히 그 서자에게서도 자손이 있었겠지만, 족보 차원에서 알아서 빼버린 것이다. 차라리 적자로 양자를 들였다면 .. 2026. 5. 12. 서자 박제가의 한(2) 적자가 없는 아버지 박제가에 대해서는이 양반이 서자임에도 불구하고 최고 수준의 양육과 교육을 받았다는 점이 특이하게 느껴진다. 그의 부친은 박제가에게 아낌없이 베푼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박제가가 똑똑했기 때문에, 라고 설명하는 것 같고, 물론 그는 매우 똑똑한 수재였음을 틀림없겠지만, 이것이 전부였을까? 여기서 앞에서 본 만가보를 다시 보자.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된다. 박제가의 아버지 박평의 뒤를 이은 분은 양자였던 것이다. 박제가에게는 적자 형이 한 분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분은 박제가의 아버지 박평이 생부였던 분이 아니고, 다른 친척에게서 양자로 대를 이은 분이었다. 이는 조선시대 명망있는 가문에서 흔히 있던 일로, 예를 들어 어떤 이의 자손이 적자는 없고 서자만 있었다면, 서자에게 대를 잇게 .. 2026. 5. 12. 서자 박제가의 한 (1) 문과 5대를 연속 배출한 최고의 명문가 박제가는 서자다. 위키만 찾아봐도 다 나오는 정보이니 새삼 말할 것은 없다. 그런데 박제가 집안은 위세가 대단했다. 문과 급제가 한 명만 나와도 근방 종족들은 모두 양반 행세를 하며 사는 법인데, 밀양박씨 박제가 집안은 그 위로 5대가 문과 급제자였다. 따라서 박제가의 직계는 만가보萬家譜에 실려 있다. 이 정도 가계는 조선시대 전체를 통털어도 흔하지 않다. 위 그림을 보면 박심, 박수문, 박순의 3대 문과 급제자가 보일 것이다. 이 박순의 둘째 아들이 박태동으로 역시 문과 급제자다. 그리고 그 박순의 아들 박태동, 그 아들 박평이 모두 문과 급제자이니 박심부터 따져서 5대가 문과급제자였던 셈이다. 그리고 대대로 수도 한성부에서 살고 있었으니필자가 이야기한 바 기전 지역에 살던 조선시대 최상급 사족이.. 2026. 5. 12. 한국 고도성장의 시작은 영조대 이후 우리나라는 어째서 지질이도 못 사는 나라가 21세기 초엽 갑자기 선진국이 되어 버렸을까.이 놀라운 사실을 설명하다 보니 그 기점을 1960년으로 잡는 사람, 대한민국 건국 이후로 잡는 사람, 그리고 심지어는 일제시대부터로 잡는 사람들까지 있는 판이다. 필자가 보기엔 이렇다. 한국 고도성장의 시작은 조선후기 영조 이후이다. 영조가 다스린 반세기가 지나가면 조선이라는 사회가 경천동지라 할 정도로 바뀐다. 호적을 보면 이 변화가 생생하게 나타난다. 18세기 초까지도 마을마다 즐비하던 노비사역하는 호구가 일제히 해체되기 시작하며영조의 통치가 끝나는 시점이 되면 노비 수백 명을 거느린 양반 호구 대신 소위 말하는 소농 가구가 엄청나게 늘어나며, 동네마다 유학호를 참칭하는 모칭양반들이 급증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2026. 5. 12. 조선시대 적자와 서자의 비율은 1 대 1 조선시대 적자와 서자의 비율은 족보나 호적으로는 알 수 없다. 우선 호적에는 적자니 서자니 이런 말 안 써 놓는다. 반면에 직역을 보면 대략은 알 수 있다. 서자에게 부여된 직역층이 있고, 또 제대로 된 양반과는 달리 서자는 직역이 굉장히 불안정하다는 특징이 있다. 어떤 때는 유학호를 버젓이 달지만, 어떤 때는 업무, 업유라는 직역을 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군관, 어떤 때는 그 와이프도 씨가 아니라 소사가 되어 평민과 다름 없이 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서얼이다. 호적 말고 우리나라 족보를 보면, 거기에는 서자의 경우 서자라고 표시를 해 놓은 족보들이 있다. 하지만 그 숫자가 매우 적다. 서자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서자를 서자라고 알뜰하게 다 적어 놓은 족보가 있다. .. 2026. 5. 12. 서자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보이는 조선후기 예전에 필자도 조선후기의 자본주의 맹아론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임란 이후 화폐경제도 돌고, 광작운동, 경영형 부농, 뭔가 근대의 새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호적을 공부하게 되고, 일기를 하나둘씩 읽어 나가면서 우리나라 자본주의 맹아론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폐가 돌기 시작하고 시골에 장시가 생기기 시작한다는 17세기-. 양반 한 집에 노비를 수백 명씩 거느린 집이 동네마다 가득했다. 일기를 보니 화폐? 시장? 그런 게 어딨나. 양반 주인님은 매일 일기에 선물 누가 뭘 가져왔나 적기 바빴다. 자기도 그만큼 돌려줘야 할 터이므로. 호적과 일기를 보면 볼수록 우리나라 자본주의 맹아론을 주장하던 이들은 일차사료를 제대로 안 봤거나, 아니면 다 알지만.. 2026. 5. 12. 이전 1 ··· 6 7 8 9 10 11 12 ··· 7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