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117 부상당한 아이네이아스가 치료받는 폼페이 프레스코화 부상당한 아이네이아스 폼페이 프레스코화 [Fresco of Aeneas wounded in Pompeii]서기 45-79년 폼페이 소재 시리코 가문의 네 번째 폼페이 양식 fourth Pompeian style 프레스코화 (1825년 트리클리니움 triclinium 또는 연회장 banquet hall 에서 발견).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Archaeological Museum of Naples 소장.그림은 펜치나 메스로 오른쪽 허벅지에서 적이 쏜 화살 머리를 뽑으려는 의사 야픽스 Japix 가 돌보는 아이네이아스 Aeneus 를 묘사한다.프레스코화는 아이네이드 the Aeneid의 마지막 책에서 버르길리우스 Virgil 가 이야기한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이 트로이 영웅은 유시流矢에 허벅지를 다쳐 .. 2024. 5. 7. 망한 것이 독서 때문인가? by 왕부지 by 홍상훈 강릉이 함락되자 양梁나라 원제元帝는 고금의 도서 14만 권을 불태웠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 권의 책을 읽었음에도 오늘과 같은 일이 생겼는지라, 불태워 버렸다.” 자기의 어질지 못함을 후회하지 않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책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독서의 깊은 뜻을 모르는 이의 말이다. 원제가 멸망을 자초한 것은 독서 때문이 아니지만, 그래도 독서의 잘못이 아닌 적이 없었다. 원제가 짓고 편찬한 책을 살펴보면, 변려騈儷의 문구를 찾아내고, 여러 일화나 신기한 행적을 수집하여 자기의 박문강기博聞强記를 자랑하곤 했는데, 이것은 만 권을 읽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당시 자기의 부친이자 황제는 역적 때문에 목숨이 위태롭고 종묘사직은 사분오열로 찢길 위.. 2024. 5. 7. 고구려가 수당을 격퇴한 힘 by 왕부지 by 홍상훈 고구려高句麗는 약한 나라인데, 수나라 문제가 공격했다가 승리하지 못했고, 아비를 거스른 양광이 다시 공격했으나 참패를 당했으며, 그 뒤에 당나라 태종(太宗)이 정벌하려다가 병력만 크게 잃고 말았다. 양광이 비록 무도했고, 내호아來護兒와 우문술宇文述이 승리를 장담할 만한 장수는 아니었으나 북으로 강력한 돌궐과 토욕혼吐谷渾을 무너뜨리고 남으로 바다를 건너 유구국流球國을 도륙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온 나라의 역량을 모아 고려를 공격했으니, 그 역시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를 꺾을 듯한 기세였을 것이다. 게다가 당나라 태종은 빼어난 무예를 지닌 채 전성기를 구가하는 천하를 석권하여 제도를 정비하고 군대를 일으켜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끝내 그들 모두 승리하지 못한 것은 수나라와 당나.. 2024. 5. 7. 어버이날 위대한 엄마를 추앙하며 엄마는 언제나 위대하다. 8천년 전에도. 고양이 머리 팔걸이 사이 의자 feline-headed arm-rests 에 앉은 나이 지긋한 여성을 형상화한 점토 상이라 튀르키예 그 유명한 차탈 회유크 Çatalhöyük 출토 좌상 여성 Seated Woman 이다. 8000년 전 신석기시대 구운 점토 baked-clay 누드 피규린 figurine이다. 비옥함을 가져다주는 어머니 여신 Mother goddess을 묘사한 것으로 간주한다. 물론 노욕에 물든 여성 권력자를 표현했을 수도 있다. 난 이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2024. 5. 7. 목만 빼곡히 내민 부처님 이 장면 혹 기억하는 분 더러 계시리라. 2017년 7월 무렵, 중국에서 국영 통신사인 신화사가 공개했다. 댐 건설로 수몰된 600년 전 명나라 시대 마애불이 저 무렵 물이 빠지면서 하필 머리만 노출되었을 때 포착한 장면 중 하나로 저 순간이 주는 오묘함 때문에 독자 시선을 사로잡지 않았나 기억한다. 배경은 강소성江西省 무주시抚州市 남성현南城县 홍문수고洪门水库라는 데다. 홍수 방지를 주된 목적으로 만든 댐 혹은 저수지로 생성된 호수인데 일명 취선호醉仙湖라 하거니와 1958년에 들어서면서 저런 마애불을 비롯한 주변 일대가 침수됐다. 이천黎川과 남성南城 두 현에 걸쳐 40여 평방킬로미터가 수몰지구였고 총저수량은 대략 12억 입방미터인 호수다. 그 안에는 크고작은 섬이 1천86곳에 이른다. 이런 데가 2016.. 2024. 5. 7. 과전법은 이것이 왜 부활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흔히 과전법은 고려말의 겸병과 사전, 대농장을 종식시키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진사대부들과 긴밀한 관련을 갖고 성립했다고 보지만, 과전법이 성립하는 당시 신진사대부들의 주장, 예를 들어 사전私田 혁파, 공전公田 성립, 척불론 등등의 논리는 유학에서 잊을만 하면 나오는 이야기들이라 전혀 이것을 그 배경이나 동기로 가지고 와서는 안된다. 우리가 과전법을 보고 고민해야 할 것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고려말의 사전을 어떻게 개혁했는가 하는 그 개혁정신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백년전에 관짝에 넣어 못질까지 해버린 공전제가 느닷없이 왜 다시 부활하여 사전을 몽땅 태워버리고 조선땅에 다시 성립했는가, 과전법 부활의 미스테리를 고민해야 옳다. 과전법은 연구의 포커스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 과전법은 혁명이 .. 2024. 5. 7. 이전 1 ··· 1304 1305 1306 1307 1308 1309 1310 ··· 385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