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167 기구한 인생을 산 최언위 네 아들, 국제 이산가족 작금 방영 중인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고려 조정 신료 중에 최항崔沆(?~1024)이라는 이가 있어 꽤 비중 있는 역할로 나온다. 그가 바로 최언위 손자다. 그의 아버지가 최광원崔光遠인데 최언위 셋째 아들로 그의 아들 중에서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 생전에 관직이 비서소감秘書少監까지 이르렀다. 맏아들 최광윤崔光胤은 아버지처럼 일찍이 아버지와 비슷한 코스를 걸어 빈공진사賓貢進士로 후진後晉936년~946)에 가서 유학했지만 인생이 꼬이고 말았다. 후진을 침략한 거란에게 사로잡혀 거기서 벼슬살이를 한 것이다. 귀성龜城이란 데로 사신으로 갔다가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려는 것을 알고 글을 써서 번인蕃에게 부탁하여 알렸다 했으니 이 일로 고려가 군사 30만을 뽑아 광군光軍을 조직하게 된다. 둘째 최행귀崔行歸는 북쪽.. 2024. 2. 4. "신라를 악의적으로 헐뜯고자 한 위작" 1989년의 화랑세기 가짜론 임창순 "화랑들의 활동이나 화랑도의 성격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신라 왕족과 귀족들의 군음 혼음 관계를 중점적으로 서술한 이 필사본의 내용은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인용한 것과도 크게 다를 뿐더러 사람의 성격 묘사 등이 마치 문학작품에서처럼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점으로 보아 후대의 사람이 신라사회를 헐뜯기 위해 쓴 악의에 찬 위작으로 보인다" "자체와 사용되고 있는 용어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당시의 것들이라 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고 더구나 이것들이 일본의 사료들에 나타나고 있는 특징들과 많이 닮아 있어 위작이라도 우리나라 사람이 행한 것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필사본의 출처가 불명확한 점도 위작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 "이 사료가 진품일 경우 신라시대의 역사가 완전.. 2024. 2. 4. 다양한 입춘첩 입춘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만 쓰는 줄 아는데, 이 문구로 굳어진 건 오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전에는 시를 지어서 붙이는데, 1구와 2구는 대문 밖 좌우에 3구와 4구는 대문 안쪽 좌우에 붙였다고 한다. 미암 유희춘은 그의 일기에 지은 문구와 붙인 위치를 정확히 써 두었다. 어떤 이는 주련을 입춘마다 바꾸기도 했더라. 전근대시대 문집에 남은 수많은 입춘첩이 그것들이다. 권근(權近, 1352~1409)이 세상을 떠나던 해인 1409년 1월 12일 입춘에 지은 입춘첩은 이 궁벽한 곳에 딱 맞기에 인용한다. 〈입춘 첩자(立春帖子)〉-기축년 1월 12일- 북두성 자루 처음으로 돌아와 北斗星初轉 동풍에 봄기운이 이미 새롭네 東風氣已新 하늘은 후하고 박함이 없어서 天心無厚薄 촌구석에도 푸른.. 2024. 2. 4. 성당시대 지배층 여성 설유순薛柔顺 석관 벽화묘 서안서 출현 서안西安 당唐 설유순薛柔顺 석관벽화묘石棺壁画墓는 서안시西安市 행복림대幸福林带 동쪽, 북령장락동로北邻长乐东路에 위치하며 2023년 섬서성고고연구원陕西省考古研究院이 신성구新城区 장락동로长乐东路区 개발구역을 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이 무덤은 무덤 안쪽으로 비스듬히 파고 들어가는 출입시설인 사파묘도斜坡墓道를 갖추고 묘실 지붕에 3개 뚫음이 있는 삼천정三天井에 묘실은 하나인 단실单室이며 재료로는 벽돌로 쌓은 전실묘砖室墓에 속한다. 이미 도굴 피해를 봐서 석문石门과 묘실墓室 천장은 파괴됐고 묘실 내 유물로 대부분 도굴당해 겨우 소량 도기陶器 조각들만 건졌을 뿐이다. 묘도 양쪽에는 두 개 벽감壁龛이 있으며, 그 내부에는 닭、개、낙타 등 동물용动物俑 70여 건을 그나마 건졌다. 묘실 서쪽에서 석관 1구가 발견.. 2024. 2. 4. 낙양 북망산에서 출현한 위진魏晋시대 고위 관료 가족 공동묘지 https://haokan.baidu.com/v?pd=wisenatural&vid=8905354517960629528 낙양洛阳 맹진구孟津区 송장촌送庄村 동남쪽 지구에서 3개 묘장墓葬을 남북 방향으로 안치하고서는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차례로 만든 위진시대 가족 공동묘지가 발굴됐다고 낙양시고고연구원洛阳市考古研究院이 최근 발표했다. 이들 무덤은 모두 시신을 묻는 공간인 묘실墓室은 북쪽에 두고 그 반대편 남쪽에다가 묘실 안쪽으로 통하는 출입구인 묘도墓道를 설치했다. 이번 발굴 책임자인 연구원 부연구원副研究员 유빈刘斌에 의하면 낙양에서 발견된 위진시대 묘장은 매우 드문 상황에서 고위 관료를 역임한 가족 공동묘지가 처음으로 낙양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조사단은 이들 무덤에 대해 각각 M1、M2、M3라는 구별 명칭을 .. 2024. 2. 4. 나말여초 문단 거물 최언위와 그의 네 아들(1) 나말여초 문단을 호령한 인물로 최치원崔致遠(857~?), 그리고 견훤을 섬긴 최승우崔承祐(?~?)와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이 같은 경주최씨로 그보다는 열한 살 어린 최언위崔彦撝(868~944)다. 치원과 언위 둘은 당나라 유학파로 그에서 급제한 인생 행로가 아주 비슷한데, 또 세트로 움직이기도 했으니, 다만, 최치원은 나말에 해인사로 은거한 뒤에는 행적이 묘연한 데 견주어, 최언위는 달라서 오래산 까닭도 있지마는 고려가 건국한 다음에는 아예 주거지를 경주에서 개경으로 옮기고, 고려 조정에서 문한을 담당한다. 고려사 열전이 정리한 그의 행적을 보면 초명初名이 신지愼之라 했으니, 이는 삼가고 삼갈지니라 하는 뜻에서 취한 이름이라, 다만 그 바꾼 이름 언위彦撝는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내가 아직 추적하.. 2024. 2. 4. 이전 1 ··· 1490 1491 1492 1493 1494 1495 1496 ··· 386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