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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현판과 잘쓴 글씨 일반화는 그렇지만, 잘쓴 글씨 맞나? 싶은 글씨들이 있다. 아무리 봐도 좌우 정렬도 안 된 글씨를 극찬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 것은 동아시아에서도 한국이 두드러지는 것 같은데, 필자는 솔직히 서예는 잘 모르지만, 중국과 일본에서 상찬하는 글씨를 보면 이거 어째 글씨가 저러냐 갸윳한 적은 별로 없다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상찬하는 글씨, 현판을 보면 가로세로도 안 맞고 글씨 크기도 안 맞고, 아무리 명필이라도 가로세로 글씨 크기는 맞춰야 하는거 아님? 서예에 도통하면 고졸해진다고 한다면 할 말 없다. 2023. 6. 17.
아파트가 퇴출한 평면 지향 ㅁ자형 한옥 건축 종로구 안국동과 가회동 경계를 이루는 윤보선가尹潽善家 전면 한옥채들이다. 첫 사진 뒤쪽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헌법재판소라 저 언저리가 연암 박지원 손자 박규수가 살던 집이다. 현재 보는 건물들이야 지붕 담장 쏵 개비했지만 저 면모가 조선후기 그 면모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보아 대과가 없다. 윤보선가야 말할 것도 없다. 이 일대는 창덕궁과 경복궁에 낀 지점이고 무엇보다 북악 언저리라 언덕배기라 홍수에 따른 침수 우려가 거의 없는 지역이며 무엇보다 겨울이면 매서운 바람 휘몰아치는 광화문 일대와는 달랐으니 그런 까닭에 날고 긴다는 사람들만 사는 부촌이었다. 저거 발굴해 보나마나 저 골목길 건물 구조 마당 등등 고스란히 지금 모습이 조선시대, 특히 조선후기 그대로다. 조선시대 날고긴다는 사람들이 산 기와집은 예외없.. 2023. 6. 17.
현판으로는 꽝인 추사 글씨 첫째 추사체는 현판이나 편액 글씨로는 꽝이다. 둘째 七十一果病中作이 71세 과천 노인이 병중에 쓰다 인가? 추사가 말년에 사는 곳 과천을 빌려 스스로를 果라 했다는데 글쎄 좀 미심쩍다. 첨엔 累病이라 읽었는데 모르겠다. 죽기 직전 저걸 썼다는데 오늘내일 하는 뇐네가 殿板 글자 大筆을 갈길 힘이 있었는가? 낙관엔 완당阮堂이라 썼는데 진짜 김정희 낙관인가? 강남 봉은사서 剡溪 초하다. 2023. 6. 17.
기록으로만 남은 삼일고가도로 삼일(3.1)고가도로 완성, 1969 The Opening of Sami|(3.1) Elevated Motorway 삼일(3.1)고가도로 개통식, 1969 The Opening Ceremony of Sami|(3. 1) Elevated Motorway 고가도로 교량의 구조 Structure of Motorway Bridge Piers 高架路析梁的结构 高架道路橋梁の構造 청계고가도로는 콘크리트 거데(girder) 대신 거더와 상판 모두 철강을 주재료로 사용했다. 이는 한국에서 최초로 건설되는 형태의 다리였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 기술을 도입하고, 일본에서 수입한 철강으로 상판을 만들었다. The Cheonggye Elevated Motorway was constructed using steel girders .. 2023. 6. 17.
너무 잘난 형을 둔 흠순欽純 (5) 미스터리 국정자문위원 렴장廉長 김유신-흠순 형제가 한창 주가를 날리던 시대, 신라에서 돈과 권력으로 정계를 주무른 이로 렴장廉長이란 사람이 있다. 하지만 염장은 미스터리다. 그건 다른 무엇보다 꼴랑 한 군데 고개를 내밀고는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꼴랑 한 번 고개를 들이민 사람이 대단했을 것임을 우리는 어찌 아는가? 이를 위해 위선 우리는 그 꼴랑 한 번하는 장면을 음미해야 한다.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 진덕왕眞德王 이라는 제하 이야기에 보이는 대목이다. “(진덕여)왕이 즉위한 시대에 알천공閼川公·림종공林宗公·술종공述宗公·호림공虎林公(자장慈藏의 아버지다)·렴장공廉長公·유신공庾信公이 있었다. 이들은 남산南山 우지암亏知巖에 모여 나랏일을 의논했다.” 간단히 말해 왕은 꿔다논 보릿자루였고, 실제는 이들 여섯 분이서 나라일을.. 2023. 6. 17.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 (5) 만성한묘滿城漢墓, 산을 뚫어 만든 저승의 지하궁전(2) 산악 정상 암반을 뚫은 지하궁전 두 무덤은 비슷한 시대에 만들었으며, 더구나 부부를 매장했으니 대체로 비슷한 구조였다. 간단히 말해 산 정상 암반을 가로로 뚫고 들어가 死者들이 생전에 常居한 생활공간을 그대로 흉내 내 묘실을 만든 지하궁전이라 할 수 있다. 북한군이 휴전선 근처에 팠다는 땅굴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내부는 암벽 동굴 특유의 을씨년스러움이 더하다.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이를 ‘애묘崖墓’, 즉 암반 절벽을 파고 들어가 만든 무덤의 일종으로 간주하지만, 이들 무덤이 조성되던 비슷한 시기에 주로 지금의 중국 사천성 일대에 유행하는 전형적인 崖墓와는 격을 현격히 달리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후대 불교 도입과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유행하는 석굴石窟에 가까우니, 적절한 비교 사례가 될지 자신.. 202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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