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942 서형산성西兄山城, 삼국사기 교감 일례一例 신라 진평왕본기 15년(593) 가을 7월 대목은 텍스트 누락이 있음에 틀림없다. 이에 이르기를 명활성明活城을 고쳐 쌓았는데 둘레가 3천 보고, 서형산성西兄山城은 둘레가 2천 보다. [十五年 秋七月 改築明活城 周三千步 西兄山城 周二千步] 고 했거니와, 느닷없이 서형산성 규격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改築明活城西兄山城·明活城"인데 "西兄山城·明活城" 부분이 탈락했음이 분명하다. 같은 말들이 반복되니 판각하는 과정에서 각수刻手가 짜증 나서 뺀 듯하다. 이렇게 되면 다음과 같이 된다. 나는 이것이 정상 문장 본래 문장이라 본다. 명활성과 서형산성을 고쳐 쌓았는데 명활성은 둘레가 3천 보고, 서형산성은 둘레가 2천 보다. 十五年 秋七月 改築明活城·西兄山城, 明活城 周三千步 西兄山城 周二千步 (2016. 12. .. 2023. 5. 16. [Discover Korea] Chipmunk in Forest A chipmunk is playing in the shade in the forest of Daegwallyeong in Gangneung, Gangwon Province, on the 15th, when the early heat wave came. Photos by Yoo Hyung-jae [Yoo Hyung-jae, who took these pictures, is a photo reporter at Yonhap News Agency who specializes in the ecological field.] (END) 2023. 5. 16. 조선의 美 간단히 쓰자면,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조선의 미는 일본미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목하 한국에서 박물관을 가면 차지하는 자기에 대한 찬상은 사실 일본미에서 출발한 것이다. 한국의 자기에 대한 미의 발견은 그릇 하나를 놓고 성을 주고 받을 정도라던 일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단절성이 일본에는 없다. 물론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근대적 모습으로 포장하기 위한 인스피레이션을 서양의 학자들에게서 받은 것은 틀림없는데, 이 친구들은 자기들의 전통에서 자기 미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성공한 미를 조선에 연장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만약 좋은 칼이 많이 났다면 해방 후 한국은 일본도처럼 칼에서도 미를 찾았을 것이다. 조선후기에 판화가 많이 찍혀 나왔다면 우키요에처럼 그 안에서 미를 찾자고.. 2023. 5. 16. 류종열柳宗悅, 양심적 일본인과 오리엔탈리스트, 그 극단으로서의 야나기 무네요시 2005.05.05 05:55:01 엠바고 1차 : 2005.05.05 05:55:01 야나기 무네요시 불교미학 4부작 완역 돌입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대한민국 정부는 1984년 9월에 이 사람에게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문화훈장을 수여한 이가 한두 명에 그치겠는가? 하지만 이 사람만은 이채롭다할 만했다.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 그 한자 표기는 류종열(柳宗悅). 한국사람이나 중국인이 아닌가 착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엄연히 그는 일본인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본인에게 왜 한국정부는 훈장까지 수여했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한국을 사랑하고 이해한 소위 '양심 있는 일본인'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야나기는 이런 명성을 얻.. 2023. 5. 16. 한국지식인 사회 고질 뜬구름 질타주의 원조는 입신양명의 다른 이름인 의리학과 미언대의微言大義 중국이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만신창이가 될 적에도 그 한켠에서는 죽어라고 이른바 고적古籍 정리에 종사한 사람이 끊이지 않았으니, 동시대 단재가 총칼을 들어야 한다 부르짖을 때 저들은 골방에 쳐박혀 회남자淮南子를 교석校釋하고, 대대례기大戴禮記를 주석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떼거리요 천지빼까리였다. 그리고 바다 건너 저 倭 땅에서도 임태보林泰輔 같은 이는 죽어라고 당시로서는 최신 문자자료인 갑골문을 죽어라 파고 들었고, 롱천자언瀧川資言, 일명 롱천구태랑瀧川龜太郎(1865~1946) 같은 이는 죽어라 史記 정리에 혼신을 쏟아 사기회주고증史記会注考証이라는 불굴의 업적을 쌓았다. 그런 사람이 떼거리요 천지빼까리였다. 이 땅에서 저런 일에 종사한 이는 한 놈도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저 탱자탱자 훈수주의 고수.. 2023. 5. 16. 스미스소니언: 아프리카박물관에 받은 충격 내가 처음 미국 스미소니안에 있는 아프리카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거기 모아 놓은 아프리카 미술을 보고 지적 충격을 받았다. 비합리성, 비의도성, 원초적 미. 아프리카 미술은 위대하다 생각했다. 요즘 생각해 보면 내가 당시 아프리카 미술을 보고 받은 느낌이 야나기 무네요시 柳宗悅[1889~1961]가 조선 미술을 보고 쓴 시각과 아주 비슷했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야나기의 조선미술에 대한 발견에 한국인이 앞으로도 계속 만족하고 맞장구를 칠것인가는 한국인들 스스로가 선택할 몫이다. 한국인의 미의식에 잠재해 있다는 그 전설적인 "자연친화적 미"라는 것에 우리도 이제 조금 솔직해 질 때가 되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미에 대한 평가는 양날의 칼이다. 약이자 독이다. 2023. 5. 15. 이전 1 ··· 2135 2136 2137 2138 2139 2140 2141 ··· 399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