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389 흠.... 前述のように、同社刊行の『思潮』(1917年 - 1919年)の廃刊後、1921年10月に刊行を開始した月刊誌である[1]。岩波書店によると、本誌は伝統的に哲学、歴史学、社会諸科学の成果を提供してきており、同ウェブサイトでは「分野を超えて問題を根源的に考え抜こうとする人びとにとって、最良の知のフォーラム」[2]と紹介されている。 동 잡지의 1956년 1월호. 그리고...... 다만 판형은 한국의 사상계가 약간 큰것 같기도 하다. 2022. 3. 11. 제주도 오미자가 참 맛있더구만 기묘명현의 한 사람으로 훗날 사림의 추앙을 받았던 충암冲庵 김정(金淨, 1486-1521)은 지금의 동문시장 근처에 살았다. 제주 유배살이에 그런대로 잘 적응을 했던 모양인지, 그의 문집 곳곳에는 제주 사람들과 소통한 흔적이 남겨져 있다. 그때도 동문시장이 있었다면 아마 시장을 드나들며 국밥 한 그릇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애초 충암 본인이 트인 성격의 소유자인데다가, 주변 환경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던 모양이다. 제주의 이모저모를 기록한 도 그런 호기심의 소산이라고 해야겠다. 관심이 없었으면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을테니까 말이다. 그 중엔 이런 내용이 있다. 제주의 토산물을 얘기하는 대목이다. "오직 토산물로는 표고버섯이 가장 많고, 오미자五味子도 많이 나는데, 씨가 아주 검고 커서 마치 잘 익은 머.. 2022. 3. 9. 다시 보는 경주 벚꽃/ 불국사 목련 사진은 재작년 3월 끝자락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경주에 있었고, 우연히 벚꽃길을 걸었죠. 올해 별도로 꽃 구경하러 가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이렇게 사진으로 다시 보며 위안을 삼으렵니다. 정말 오랜만에 불국사에도 갔었죠. 목련과 함께 탑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리가 있다고 하기에 따라가 저도 사진 몇 장 찍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보니, 분위기가 색다릅니다. 목련이 이렇게 예뻤던가요? 하얀 꽃잎이 까만 기와와 대조되어 더욱 귀품있게 느껴집니다. 어떤 사람은 목련 꽃잎이 너무 빨리 떨어져서, 또 떨어진 모습이 약간은 추하게 느껴져 보기 싫다 하지만 꽃잎들이 소복히 쌓여 있으니 또 나름 분위기 있습니다. 알새우칩을 깔아 놓은 것 같기도 하고요. ㅎㅎ 올해는 회사 앞 도로변에 핀 봄꽃으로 조용히 봄을 맞이 하려 .. 2022. 3. 8. 울진 불영사 계곡 蔚珍佛影寺溪谷 Buryeongsa Valley, Uljin 몇년 전 꼭 이맘 때 나는 훌쩍 영주 봉화 울진을 달렸으니 봉화를 넘어 울진 죽변항으로 가는 길목 고갯길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는 이곳 불영사계곡이라는 데를 잠깐 감상했다. 기암절벽 타고서 자리 잡을 만한 데는 모조리 소나무 차지였으니, 지대가 높아서인지 그런 대로 소나무가 활개를 쳤다. 그 소나무를 일러 붉은 비늘이 돋는다 해서 적송赤松이라 하고, 또 혹자 민간 목수 일부는 금강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금강송이 이름 때문인지 진짜로 금강에 맞먹는 위력을 지닌 것처럼 통용하기도 하지만, 소나무 중에서 목재로 인기가 높은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될 성 싶다. 적송 혹은 금강송이라면 으레 상상하는 그 군락지는 딴 데 있어 그곳을 미쳐 둘러보진 못했다. 언제나 나중을 기약하며, 더구나 울진은 대한민국 땅임에랴 언.. 2022. 3. 8. 심향 박승무, 눈을 내려 세상을 달래다 심향 박승무(1893-1980)라는 화가가 있다. 한국화 근대 6대가의 하나로 꼽히는 인물로, 특히 눈 내린 겨울 산수화에 능했다. 짙고 옅은 먹에 아주 약간의 채색만 더했던 그의 설경이 어찌나 인기있었던지, 설경 주문만 들어온 까닭에 사다 놓았던 물감을 채 다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작가로서는 손해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설경을 보면 왜 그렇게 인기있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의 겨울은 따뜻하다. 겨울 그림이 따스하다니 의아할지 모르지만, 바람이 불어 스산한 풍경이 아니라 눈 개어 평온해진 정경이기에 가능하다. 하늘은 잔뜩 흐리지만, 눈을 이고 진 산이며 마을은 어둡지 않다. 자박자박 눈길을 걸어오는 등 굽은 노인은 꼭 색 있는 옷을 입으신다. 지루한 설백색에 한 점 포인트가 .. 2022. 3. 7. 추사秋史와 일본도日本刀 섬이라는 지형상, 제주에는 바다에 나갔다가 표류하여 외국에까지 흘러가는 이가 적지 않았다. 아예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겠지만,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동아시아 각국은 표류민에 상당히 관대해, 먹을 것을 내어주고 잘 대접한 뒤 고이 돌려보내주곤 했다. 우리의 추사 김정희(1786-1856) 선생이 제주에 머무를 때도 그런 과정을 거쳐 일본에서 돌아온 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추사의 제자 박혜백朴蕙百이 어쩌다 그런 사람을 만났는데,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몰라도 그가 사무라이들이나 갖고 다니는 일본도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수를 썼는지 그가 그 칼을 얻어와서 스승 추사에게 보여드렸다. 붓의 대가 추사와 '니뽄도'라니 이렇게 안 어울릴 수가 있나 싶지만, 사실 추사는 일본 칼이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 2022. 3. 7. 이전 1 ··· 2368 2369 2370 2371 2372 2373 2374 ··· 389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