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5451

해루(解婁)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 41년(서기 23) 봄 정월에 우보(右輔) 을음(乙音)이 죽자 북부의 해루(解婁)를 우보로 삼았다. 해루는 본래 부여 사람으로 식견[神識]이 깊었고, 나이가 70세를 넘었으나 기력이 쇠하지 않았으므로 등용한 것이었다.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다루왕본기 : 7년(서기 34) 봄 2월에 우보 해루(解婁)가 죽으니[卒] 나이가 90세였다. 동부의 흘우(屹于)를 우보로 삼았다. 2018. 2. 23.
주근周勤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 34년(서기 16) 겨울 10월에 마한의 옛 장수 주근周勤이 우곡성牛谷城에 근거해 반란을 일으켰다. 왕이 친히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고 이를 토벌하였다. 주근이 스스로 목매어 죽자 그 시체 허리를 베고 그 처자도 아울러 죽였다. 2018. 2. 23.
소모(素牟)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 18년(서기전 1) 겨울 10월에 말갈이 갑작스레 습격하여 왔다.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칠중하(七重河)에서 맞아 싸워 추장 소모(素牟)를 사로잡아 마한에 보내고 그 나머지 적들은 모두 [산채로] 구덩이에 묻어 버렸다. 2018. 2. 23.
을음(乙音) 백제 건국시조 온조왕의 족부(族父)로, 백제 건국 공신 중 한 명이다. 건국 직후 우보(右輔)가 되어 군사 분야를 전담하다가 온조 재위 41년 사망했다.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 2년(서기전 17) : 3월에 왕이 재종숙부[族父] 을음(乙音)이 지식과 담력이 있으므로 우보(右輔)로 삼고 군사 업무를 맡겼다. …41년(서기 23) 봄 정월에 우보(右輔) 을음(乙音)이 죽자 북부의 해루(解婁)를 우보로 삼았다. 2018. 2. 23.
고문(高文)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下 : 7년(648) 9월에 노루 떼가 강을 건너 서쪽으로 달아나고 이리 떼가 서쪽으로 갔는데, 3일 동안 끊이지 않았다. 태종이 장군 설만철 등을 보내 와서 침공하게 하였는데, [그들은] 바다를 건너 압록강으로 들어와 박작성(泊灼城) 남쪽 40리 되는 곳에 이르러 군영을 쳤다. 박작성주 소부손(所夫孫)은 보병과 기병 1만여 명을 거느리고 막았으나, [설]만철이 우위장군 배행방을 보내 보병과 여러 군대를 거느리고 쳐서 이기니, 우리 군사들이 무너졌다. [배]행방 등이 군사를 내보내어 포위하였으나, 박작성은 산에 의지하여 요해처를 세우고 압록수로 굳게 막혔으므로,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우리 장수 고문(高文)은 오골(烏骨), 안지(安地) 등 여러 성.. 2018. 2. 23.
소부손(所夫孫) 삼국사기 권 제22(고구려본기 제10) 보장왕 下 : 7년(648) 9월에 노루 떼가 강을 건너 서쪽으로 달아나고 이리 떼가 서쪽으로 갔는데, 3일 동안 끊이지 않았다. 태종이 장군 설만철 등을 보내 와서 침공하게 하였는데, [그들은] 바다를 건너 압록강으로 들어와 박작성(泊灼城) 남쪽 40리 되는 곳에 이르러 군영을 쳤다. 박작성주 소부손(所夫孫)은 보병과 기병 1만여 명을 거느리고 막았으나, [설]만철이 우위장군 배행방을 보내 보병과 여러 군대를 거느리고 쳐서 이기니, 우리 군사들이 무너졌다. [배]행방 등이 군사를 내보내어 포위하였으나, 박작성은 산에 의지하여 요해처를 세우고 압록수로 굳게 막혔으므로,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우리 장수 고문(高文)은 오골(烏骨), 안지(安地) 등 여러 성.. 2018. 2. 2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