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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적찬고(經籍纂詁)》 중국 청대(淸代) 가경(嘉慶) 연간에 완원(阮元)이 편찬을 총지휘해 완성한 자전(字典)으로 총 106권이다. 당대(唐代) 이전 古書에 출현하는 文字를 휘집(彙輯)하여 훈석(訓釋)한 훈고학의 금자탑 중 하나이다. 阮元이 撰集하는 가운데 장용당(臧鏞堂)․장예당(臧禮堂) 형제를 비롯한 40여 명을 동원, 찬교(纂校)해 가경(嘉慶) 3年(1798)에 간행됐다. 이 때 완원은 독학절강학정(督學浙江學政)이었으니 지금으로 보면 절강성이라는 지방자치단체의 교육부 장관이었던 셈이다. 왕인지(王引之)와 전대흔(錢大昕), 장용당(臧鏞堂)의 序와 後序가 수록했다. 全書는 《패문옥부(佩文韻府)》가 시도한 分韻編字에 준거해 표제어를 배열하되, 《佩文韻府》에 없는 글자는 《광운(廣韻)》이라든가 《집운(集韻)》을 참조해 배치했다. .. 2018. 3. 9.
피석서(皮錫瑞. 1850~1908. PiXirui) 字를 녹문(鹿門)이라 하며 녹운(麓雲)이라고도 한다. 호남(湖南) 선화(善化) 사람이다. 서한(西漢) 초기에 《尙書》를 전했다는 유자(儒者) 복생(伏生)을 흠모하여 그 서재 이름 또한 ‘사복당’(師伏堂)이라 했으며 그런 까닭에 그를 일컬어 ‘사복선생’(師伏先生)이라 한다. 청말 광서(光緖) 5년, 30세가 된 피석서는 경학 연구를 개시했다. 복생은 금문학파에 속하며, 나아가 그가 전한 尙書 판본을 서한 당시에 통용되던 예서체로 된 텍스트라 해서 금문상서(今文尙書)라 하거니와, 이런 그를 숭모했으니, 청말에 재연된 금문-고문학파 논쟁에서 피석서는 당연 빠따로 금문경학 쪽에 서서 고문학파를 공격하게 된다. 광서(光緖) 8년 순천향시(順天鄕試)에 합격했으나 이후 3번이나 거푸 예부시(禮部試)에 도전했다가 낙방.. 2018. 3. 9.
도종의(陶宗儀)와《설부(說郛)》 원말(元末)~명초(明初)를 살다간 도종의(陶宗儀)가 편찬한 총서(叢書) 이름이다. 도합 100권 거질이며 이에 수록된 조목(條目)은 수만을 헤아린다. 진한(秦漢) 이후 송원(宋元)에 이르기까지 제가(諸家)의 작품을 초록했으니, 그 포괄 범위는 제자백가(諸子百家)․각종 필기(筆記)․시화(詩話)․문론(文論) 등을 망라한다. 역대 사가(私家)가 편집한 총서로는 비교적 크다. 그것이 포괄한 내용은 삼라만상이라 경사전기(經史傳記)․각종 잡서(雜書)․고고박물(考古博物)․산천풍토(山川風土)․충어초목(蟲魚草木)․시사평론(詩詞評論)․고문기자(古文奇字)․기문괴사(奇聞怪事)․문복성상(問蔔星象) 등이다. 양유정(楊維楨)은 그 序에서 이르기를 “배우는 자가 이 책을 얻으면 들은 바를 열게 되고 본 바를 넓히게 되는 이가 많을 .. 2018. 3. 9.
배송지裵松之 《삼국지주三國志注》 유송劉宋 문제文帝인 유의륭劉義隆이 삼국시대의 異同을 모아 진수陳壽의 《三國志》를 주석하라고 명하여 裴松之가 완성한 해설서이다. 裴松之는 傳紀를 수집해 이문異聞을 널리 모아 완성하고는 헌상했다. 이에 황제는 이를 예람叡覽하고는 “이야말로 불후不朽라고 할 만하다”고 상찬했다. 이 당시 裴松之가 올린 표문表文에는 이런 말이 있다. “진수陳壽의 책은 볼 만한 일을 嚴選했으나 간략함이 지나친 단점이 있고 누락된 곳이 여러 곳이 됩니다. 臣은 성지聖旨를 奉하여 상세함을 갖추어 철저함을 기해 기록해야 하지만 진수가 기재하지 않은 사실은 남김 없이 채록했습니다. 같은 사건에 대해 기록이 모순되면 사건의 출처가 달라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도 모두 요약해서 함께 異聞을 固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裴松之 편찬방침이라 할 수.. 2018. 3. 9.
中國 요녕성(遼寧省) 객좌현(喀左縣) 동기교장(銅器窖藏. Kazuo tongqi jiaocang) 중국에서는 무엇인가를 한꺼번에 한 장소에 매납한 곳을 교장(窖藏)이라 부르거니와, 청동기를 묻은 곳을 동기교장銅器窖藏이라 한다.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喀左縣 지역에서 出土한 靑銅器를 西周시대 初年에 그 封國 중 하나인 燕國에서 山川祭祀를 지낼 때 埋藏한 청동예기(青銅禮器)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 유적은 遼寧省 喀左縣 西南쪽 대릉하(大淩河) 兩岸 구릉지대 정상에서 발견됐다. 1941년 이후 모두 6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출토한 銅器는 연대가 西周 초기, 혹은 商末~周初에 속한다고 추정한다. 1941年 고로구촌(咕嚕溝村)에서 출토한 周初 동정銅鼎 1점은 높이 50여㎝이며 重量은 70여 ㎏으로 銘文이 있다. 1955年, 마창구馬廠溝 출토 周初 銅器 16건 중에는 鼎․․․ 盂․․卣․壺․盤과 압형준(鴨形尊) 등이.. 2018. 3. 9.
후지시마 가이지로(藤島亥治郎. 藤島亥治郞. 등도해치랑) ふじしま がいじろう. 1899. 5. 1~2002. 7. 15 일본 건축사가. 1933년 이래 1945년까지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朝鮮宝物古跡名勝天然記念物保存会) 위원으로 일하면서 식민지 조선 고건축에 대한 조사 활동을 했다. 제국 일본이 패망해 일본으로 돌아가서는 平泉遺跡調査会를 조직하고 毛越寺와 中尊寺 整備, 中山道宿場 연구 등을 진행했다. 오사카(大阪) 시텐노지(四天王寺, 사천왕사) 가람 재건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3세기를 살며 103세로 장수했다. 1899年, 岩手県 盛岡市 出生1920年, 第六高等学校 卒業1923年, 東京帝国大学 工学部 建築学科 卒業․ 조선총독부朝鮮総督府 경성공업학교京城工業学校 조교수助教授1924年, 同校 教授․ 朝鮮総督府 技師兼任1929年, 東京帝国大学 助教授1933年,.. 2018.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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