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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말레이 난파선 풀라우 멜라카서 발견 예비 조사 결과 사가 나무로 만들어 말레시이아 풀라우 멜라카Pulau Melaka에서 고대 난파선 한 척이 발견됐다. 압 라우프 유소Ab Rauf Yusoh 멜라카 주지사는 이번 발견이 최근 몇 년간 멜라카Melaka 역사 도시에서 발견된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길이가 50~70m로 추정되는 이 목조 선박이 이 지역 역사적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이 고고학적 발굴 사업은 유물의 진위 확인 및 보존을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진행되고 있습니다."그는 10월 30일, "보존 및 연구 후 멜라카 박물관 중 한 곳에 전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말레시아에서는 이번 발견이 말라카의 풍부한 역사를 새롭게 조명할 뿐만 아니라 독특한 문화 관광 명소 개발의 발판을 마.. 2025. 11. 4.
딱 진사까지만 하라는 양반 집안 조선시대 양반들 이야기 중에 우리 집안은 딱 진사까지만 그러니까 소과만 하고 대과는 하지 마라 라고 유언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본다. 그리고 예외없이 이런 이야기 뒤에는 명예욕을 초월하고 은둔하며 학문 수양에 힘쓰는 사대부라는 코스프레를 본다. 그게 아니고, 진사만 해도 먹고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어 그렇다. 우리나라 향촌사회 호적을 보면진사 아니라 무과만 해도 위아래 몇 대가 먹고 산다. 문과 방목 아니라 저건 과거도 아니라며 천대받은 무과방목에만 들어가도 그렇다. 그러니 소과라 해도 진사 입격하면 당연히 양반이다. 대과 급제자라도 상대가 대대로 진사라면 쉽게 못본다.몇 대 진사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향촌 사회의 힘이 호적에 보면 그렇게 무섭다. 이런 집은 대개 18세기까지는 노비를 백 명 이상 거느리.. 2025. 11. 4.
원통형 인장, 서명은 지금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원통 인장이 고대와 현대의 삶에 대해 말해주는 것들 by 세르다르 얄친Serdar Yalçin, The Conversation 가장 초기 형태의 서명은 고대 이라크에서 원통 인장 형태에서 유래한다.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 지역에 산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문자, 도시 계획, 국가 등 인류 역사상 수많은 최초의 발명품을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졌다.이러한 발명품 중 원통 인장은 아마도 가장 독특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유물로서의 인장높이 5cm, 지름 2.5cm를 넘지 않는 이 작은 유물 수천 점이 오늘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유물들은 기원전 3천년대 후반부터 기원 전까지 고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끊임없이 이어진 예술적 전통을 증명한다.본질적으로 원통 인장은 문서에 서명하는 중요한 .. 2025. 11. 4.
목이 긴 기린은 왜 다리 또한 그리 길까? 동물 시뮬레이션이 드러낸 놀라운 답 by Roger S. Seymour, Edward Snelling / The Conversation 기린 목이 왜 그렇게 긴지 궁금한 적이 있다면, 답은 분명해 보인다. 아프리카의 키 큰 아카시아 나무 꼭대기에 있는 즙이 많은 잎을 뜯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린만이 그 잎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반면, 작은 포유류들은 땅 근처에서 서로 경쟁해야 한다.이러한 독점적인 먹이 공급원 덕분에 기린은 일 년 내내 번식하고 키가 작은 종보다 가뭄에서 더 잘 살아남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긴 목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기린 심장은 머리까지 몇 미터 높이까지 피를 펌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압력을 생성해야 하기 때문이다.성인 기린의 혈압은 일반적으로 200mmHg가 넘는다. 이.. 2025. 11. 4.
[격세지감] 신라 찬송주의자가 이리 많을 줄이야 어느 신라 사대주의자의 고백 신라를 이리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줄 미쳐 몰랐네.평소엔 신라 관련 논급만 하면 민족을 팔아먹었네, 땅덩어리가 좁아졌네 갖은 욕설을 다 퍼붓는 사람 일색이었다. 한데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한테 그 금관 모조품 하나 선물했다 하고 나서 열혈 신라주의자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나는 명색이 신라사 전공 말단이라 신라사 관련 글이라고는 논문이건 책이건 기사건 칭찬 한 번 받은 적 없다. 그러다가 금관 대충대충 만들었다 했더니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찬란한 신라를 헐뜯는다 매리한다. 언제 이리 신라 사랑이 넘쳐났지? 내가 잘못 알았나? 그 주옥 같은 신라 사랑 가득한 논문 책 기사에 우레 같은 박수 보내주시지 그땐 이런 분들이 어디 계셨나?그땐 신라주의자라 해서 욕 어지간히 쳐먹.. 2025. 11. 4.
조선시대 - 청백리는 없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청백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청백리가 되어서는 사대부로서 대를 이을 수가 없다는 말이 옳겠다. 조선시대는 어느 정도 재산이 없다면, 토지와 노비가 없다면 사대부로서 대를 이어 존속이 가능한 사회가 아니었다. 노비 수백 명을 거느린 양반은 퇴계나 몇몇 양반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집안에 수백 명 노비를 거느리지 않은 집안은대를 따라 내려가면 거의 잔반화해 버리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내가 청백리를 하는 건 좋은데 우리 아들 손자대로 가면 양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청백리 운운은 전부 거짓말이다. 가난한 청백리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집안은 몇 대 못가 망하고 양반에서 탈락한다. 양반으로 수백 년을 이어.. 2025.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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