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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상교리 고려 석실묘 驪州上橋里高麗石室墓 여주 상교리 고려 석실묘(驪州 上橋里 高麗 石室墓) 지정번호 : 경기도기념물 제198호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산46-1 고달사지가 위치한 고달 부락 뒷산에 위지한 이 고분은 상감청자 조각을 비롯한 몇 가지 발굴한 유물을 통해 고려 말기에 만들었다고 추정되며, 그 모양이 특이해 고려시대 묘지 연구에 기이한 사례를 제공한다. 발굴하기 전에는 현실玄室 위쪽 기단부는 완전히 흙에 묻힌 상태였고, 기단 2층과 석실石室 입구 부분에서는 돌만 노출된 상태였다고 한다. 발굴은 1983년 11월 ~ 12월 한양대박물관 발굴단이 실시했다. 그 결과 아래쪽 석실은 평면 원형이며 무덤길인 연도羨道가 달려있고, 위쪽은 방형方形인 2층 기단으로 밝혀져 그 구조상 특성을 살려 상방하원上方下圓 석실묘石室墓란 명칭이.. 2020. 3. 7.
[중국탑] 신통사 사문탑 神通寺四門塔 神通寺 四門塔 중국에서 최초로 건립된 석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위치 : Licheng District, Jinan, Jinan, Shandong) 석재를 장방형으로 가공하여 쌓아 올린 형식이라는 점에서 꽤 오랫동안 경주 분황사 석탑 등 우리나라 모전석탑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경향은 두 석탑 간 양식적 연관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사문탑에 사용된 석재의 크기는 170cm × 43cm, 124cm × 57cm, 87cm × 30cm로 분황사 석탑에 사용된 석재와는 차이가 크다. 이를 보면 사문탑의 축조 방식은 벽돌모양으로 가공한 석재를 쌓는 ‘벽돌쌓기’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사실, 나도 직접 보기 전까지 이 크기의 차이를 별로 실감하지 못했는데 막.. 2020. 3. 7.
바리깡이 쥐어뜯은 청춘 [순간포착] '바리캉' 사라진 학교에 불어온 자유의 바람송고시간 2020-03-07 08:001982·1983년 시작된 중고생 두발·교복 자율화고3 때인가 2때인가 암튼 소풍갔을 적이다. 어모 혹은 감문 쪽 아니었나 하는데 저때는 마이클 잭슨 시대라, Billie Jean이 moon walk로 선풍하던 시대였다. 두발 자율화 시대라 대체로 머리카락은 귀밑까지 내려오는 장발의 시대였다. 이채로운 점은 1명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교련복을 걸쳤다는 사실이다. 저 무렵은 이미 교복 자율화 시대였고 저 소풍 때도 교련복을 걸쳐야 한다는 규율을 없었다고 기억하지만, 어이한 셈인지 모조리 교련복 차림이다. 왜 교련복이었을까? 이 물은 왜 직장인이 양복을 주로 걸치는가 하는 의문과 연동한다. 왜 양복인가? 편하기 때문이.. 2020. 3. 7.
미공개 근무일지-그런 날 2020.3.6(금) 아침 출근하는데, 날이 정말 좋았다. 그대로 퇴근하고 싶었다. 2020. 3. 7.
코로나 뚫고 성큼성큼하는 연등 거의 매일 한번은 지나는 조계사. 어제 각중한 만남에 어랏? 하고 말았으니 조계사가 연등으로 덮히고 있었다. 캘린더를 뒤진다. 사월초파일이 그레고리우스력으로 언제던가? 4월 30일이다 올핸 좀 빠르다. 조만간 윤달이 있겠다 싶다. 늘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고 보니 부처님오신날 코앞이라 이미 절간은 그 준비에 들어간 모양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어느 때보다 뒤숭한 싯타르타 생일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때까진 이 난국이 좀 수그러들지 않겠냐 기대하지만 모를 일이다. 그래도 이 우중충함에 울긋불긋 알록달록한 공중을 보니 그런대로 기분은 좀 풀리다. 2020. 3. 7.
《징비록懲毖錄》은 당파주의 서술이라 값어치가 있다 내 서재에 보유한 《징비록懲毖錄》 역본 혹은 역주본은 다섯 종 정도에 이를 것이다. 축약본 어린이용까지 합치면 기하급수다. 개중에 나는 이재호 선생 역본을 선호한다. 이유는 첫째, 《징비록》을 《징비록》 그대로, 다시 말해 당파주의적 시각 그대로 읽고자 하는 흐름의 대표이기 때문이요 둘째, 번역의 안전성이라는 측면에서 이재호 선생 이상 가는 사람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이 역본엔 원문을 첨부했으니, 석연찮은 대목은 나대로 다른 생각을 하게끔 하니 이 또한 요긴하다. 왜 《징비록》을 《징비록》의 시각대로 읽을 필요가 있는가? 그래야만 《징비록》이 제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징비록》은 류성룡柳成龍(1542~1607)이 순전히 애끓는 애국충정과 과거를 반성하고자 쓴 글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본인.. 2020.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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