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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소식] 2024년 발표 논문 제목의 Word Cloud 2024년도 저물어 간다. 올해 발표한 논문 제목으로 만든 Word Cloud 다. 작년은 아래와 같았다. 연구 주제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Word Cloud에 많이 반영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아직도 Dry Lab으로의 이동양상은 뚜렷하지 않다. 시간이 더 걸리지 않을까 한다. 2024. 12. 15.
팔레르모에서 보는 암울한 이탈리아 이태리 남북 대립은 결국 밀라노 토리노 중심 북부 공업지대와 남부 촌구석 대립이라이건 답이 없어 남부에 속하는 로마도 거지다.그 경계선이 어디서 형성되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피렌체 정도가 아닌가 하거니와나폴리는 한 번 보면 왜 김민재가 1년 만에 튀었는지를 절감하거니와그 남부 중에서도 남부 시칠리아는 더해서 여긴 허허벌판이라 천지가 농토인데 왜 놀리는지 모르겠다.그 주도 팔레르모에 들어와 도심 이곳저곳을 걸어보니 90년대 이전 중국, 70년대 이전 한국과 아주 흡사해서 여기만 보면 이태리가 왜 G7인지를 이해할 수 없다.그래서 정겹다?우리가 잃어버린 그 시절이 여기 있어서?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겠지만 여긴 g7이 아닌 것만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변함없다.인구 60만선이라는데 수도권 웬간한 딱 그 도시 .. 2024. 12. 15.
팔레르모를 향하여 팔레르모는 시칠리아 주도라아무래도 시칠리 모든 부문 중심일 수 밖에 없으니 이 섬에 발길 들른 이상 안 돌아볼 수 없어 짬을 보다 일요일인 오늘 카타니아서 그것을 향하는 버스를 탔다.두 시간 반이 걸린다는데 그렇다면 아홉시 반쯤 도착하리라 본다.나는 여느 유럽 도시건 두오모가 있는 지점을 표식으로 삼는데 거기가 중심인 까닭이라 팔레르모 역시 그 중심으로 돌아볼까 한다.간밤 모기로 잠을 설쳤으니 거실을 어슬렁하는 한 놈은 때려잡았으나 침실을 암약하는 놈은 종적을 찾을 길 없다.아마도 시칠리 대표 박물관은 팔레르모에 있을 것으로 보는데 두어 시간은 박물관서 삐대야 할 듯하다.시칠리는 불규칙한 섬이라 그 사방을 움직이기 용이한 지점을 찾기가 어렵다.나는 동쪽 해변 카타니아를 지점을 찍었으나 이 경우 팔레르모를.. 2024. 12. 15.
한국사의 세 번째 키워드: Self-Governance 이건 한국어로 번역이 참 애매하다. 한국사에는 Self-Governance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한데, 이건 자주성이라 그냥 번역하기도 애매하고, 미묘한 뉘앙스가 있다. 써 본다면, 한국사는 한 번도 제국을 칭해 본 적이 없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패권국가를 지향한 적이 없다. 물론 고구려나 고려 초기에 그것과 비스무리한 뭔가를 지향한 흔적은 있지만 그런 시대에도 중국쪽 헤게모니 국가에 대해서는 사대를 했기 때문에 완전한 패권국가이자 외부의 통제를 벗어난 국가의 위상을 누린 시기가 참 드물다 할 것이다. 그럼 그것으로 끝이냐-. 한국사는 그렇다면 일제시대 식민사학자들 이야기 대로 종속성이 특징이냐, 그것은 물론 아니고.저 Self-Governance에 대한 희구는 무척 강했다 할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2024. 12. 15.
평지돌출 경주 정혜사 석탑, 그리고 석굴암 경주 정혜사지 13층 석탑(아래)을 더이상 이형의 탑이라고 하지 말자. 인도 그리고 힌두와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역시 경주다. 발리에 힌두 메루 사원, 메루 탑(pelinggih meru)은 발리 사찰의 주요 성지로 요런 게 있다.(앞)***경주시 학예직 조창현 선생 글이라 전재한다.그의 말마따나 정혜사지 13층 석탑은 여로모로 평지돌출이라 그 기원과 관련해 적지 않은 고민이 있다.도대체가 엇비슷한 사례가 한반도는 물론이려니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쉽사리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물론 독창일 수도 있다. 저 시대 누군가는 나는 다른 방식을 시도해 보겠다 해서 저런 방식을 채택했을 수는 있다.다만 시야를 좀 더 넓혀야 하고 그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온다면야 저런 주장도 가능하다.저 분을 평지돌출이라 하나.. 2024. 12. 15.
한국사의 키워드 두 개가 합쳐지면 벌어지는 일들 이전에 잡문 삼아 쓴 글에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사의 키워드 1은 가난, 2는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두 개를 들었다. 이 두 개가 실제로 합쳐져 역사에서 작동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적 분야의 강화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여말선초. 북로남왜로 상징할 만한 외란이 남북에서 밀어닥칠 때,이런 환경에서 "송곳 꽂을 만한 땅도 없다"라는 말은 농민들이 농사 지을 땅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 외란을 방어하려면 재원이 필요한데 이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다는 뜻이 되겠다. 그러면 나올 수 있는 해결책은 사전혁파와 공전강화 밖에 없다. 그것이 필자가 보는 바 과전법체제다. 고려초기 전시과체제를 보자. 왜 전시과체제가 나왔을까? 라말여초를 풍미하던 공전의 붕괴를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 2024.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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