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2841 간도 이주민처럼 숨어 든 위만 위만이 연나라에서 도망쳐 그 무리와 함께 처음 숨어든 땅은한나라가 지키는 요새 바깥은 공지空地였다. 그리고 이 공지는 고조선 땅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는 고조선과 한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공지였다는 말이다. 고조선으로서는 공지에 사는 위만을 서쪽 변경을 지키는 박사로 임명했다니고조선이 볼 때 그 땅은 공지가 아니라 자기들 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 땅은 비워둔 땅이었다. 관념상 누구의 땅이건 간에 일단 비운다는 말이다. 청나라 때 유조변柳條邊 바깥 땅도 관념상으로는 청나라 땅이었지만 자기네들 땅을 비워 공지로 만든 것이다. DMZ가 오늘날 한국과 북한 사이에만 있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겠다. 위만이 건너와 살았다는 한나라 요새 바깥의 공지는 아마도 청나라 때 유조변 바깥에서 압록강 북쪽에 설정된 공.. 2025. 2. 19. 심심하면 관짝에서 불려나온 양사언 1546년(명종 1) 문과에 급제하여 대동승大同丞을 거쳐 삼등三登(평안남도 강동 지역)·함흥咸興·평창平昌·강릉江陵·회양淮陽·안변安邊·철원鐵原 등 여덟 고을 수령을 지냈다. 자연을 즐겨 회양의 군수로 있을 때는 금강산에 자주 가서 경치를 감상했다. 만폭동萬瀑洞 바위에 ‘蓬萊楓岳元化洞天(봉래풍악원화동천)’이라 글씨를 새겼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안변 군수로 있을 때는 백성을 잘 보살펴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品階를 받았고, 북쪽의 병란兵亂을 미리 예측하고 말과 식량을 많이 비축해 위급함에 대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릉智陵(이성계 증조부의 묘)에 화재가 일어나자 책임을 지고 해서海西(황해도의 다른 이름)로 귀양을 갔다. 2년 뒤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세상을 떠났다. 이상은 한민족대백과사전 양사언 관련 .. 2025. 2. 19. 국경의 변화와 전염병 근대국가는 국경에서의 체계적 검역을 특징으로 한다. 이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 침탈도 국경선에서의 검역관리라는 모습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일본도 구한말 조선에 대해 검역관리를 이유로 국권침탈을 시작했고 조선이나 중국이나 모두 개항 이후 가장 서두른 것이 바로 검역이었다. 언젠가 김 단장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근대국가의 전환은 곧 국경선 모습의 변화이기도 하다. 전근대시대 국가간 경계가 꼭 이렇다는 보장은 할 수 없겠지만 이 당시 국가간 경계는 공지를 두어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본다. 지금처럼 국경선이 국가간 영토가 맞닿는 선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 사이에는 공지를 둔다는 것이다.이런 국가간 국경선에 두는 공지의 기원은 한국사에서는 멀리 고조선시대에도 볼 수 있.. 2025. 2. 19. 축복이 된 비극, 폼페이 유적 이는 고고학자도들이 서기 79년 베수비오 산 폭발로 파괴된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를 발굴하는 한 장면이다.재앙적인 폭발로 폼페이는 화산재와 부석으로 뒤덮여 도시와 그 비극적인 마지막 순간을 보존했다.오늘날 폼페이는 고대 로마 도시의 일상을 엿보게 하는 독특한 창을 제공한다.비극이 선사한 특혜다. 저 장면에서 유의할 점은 흰색을 띠는 시신들이다.시신이 저리 보존되었을 리는 없다. 저건 인공으로 발굴하는 과정에서 고고학도들이 만든 캐스트cast다. 1863년 이탈리아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Giuseppe Fiorelli가 개발한 기술을 사용해 만든 석고 모형이다.발굴자들은 굳어진 화산재에서 저와 같은 사람이나 동물 시신, 혹은 다른 유기물질이 녹으면서 생긴 구멍을 발견하고는 그 구멍에다가 액체 상태인 석고.. 2025. 2. 18. 주자소에 삥땅쳤다는 동활자, 인사동 그거야?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1420~1488) 필원잡기筆苑雜記 제1권에는 조선 초기 활자 양상을 참말로 일목요연히 정리한 구절이 있으니 다음이 그것이다. 태종이 일찍이 주자鑄字를 만들었는데, 모양이 썩 좋지는 못하였다. 경자년에 세종이 이천李蕆에게 명하여 중국의 좋은 글자 모양으로 고쳤는데, 이전 것에 비해서 더욱 정교하였으며 이를 경자자庚子字라 한다. 갑인년에 세종이 명하여 좋은 음양자陰陽字 모양으로 다시 주조하였는데, 극히 정교하였으며 이를 갑인자甲寅字라 한다. 경자자는 작고 갑인자는 컸는데 인쇄한 서책이 매우 아름답다.세종 말년에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이 쓴 글자 모양과 강희안姜希顔이 쓴 글자 모양으로 다시 주조하였는데, 인쇄한 서책이 점차 예전만 못하여졌다. 지금에 동자銅字는 다 공장工匠들이 훔.. 2025. 2. 18. 만들다가 버린 비석, 뭘까? 차순철 선생 소개라부여 쌍북리 590번지 일원 유적 2호 초석 건물지에서 출토되었다 하며 보고자는 사택지적비와 비슷한 모습으로 추정한다는데 출처는 호남문화재연구원, 2025, 부여 쌍북리 590번지 일원 유적I 이라 한다. 보니 전형하는 중국식 규형圭形 석비라 문자를 새길 요량으로 줄만 치고 칸은 만들지 않았다. 칸을 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저 단계에서 비석 제작을 중단한 느낌이다. 규모를 보면 몇 글자가 새길 공간이 아니다. 사택지적비랑 비교할 수도 있겠으나, 아닌 듯한 느낌이다. 전반으로 보아 비면만 다듬었고 나머지는 대략 쳐 냈다. 기왕 쓸 거 같음 몇 글자라도 쓰고 버리지 쯧쯧 썼다가 지웠을까? 저것을 깔고 누운 초석 건물지 연대가 저 비석이 생성된 시기 하한선일 텐데 이건 어찌 되는지 모르겠다. 2025. 2. 18. 이전 1 ··· 738 739 740 741 742 743 744 ··· 3807 다음 반응형